“두고온 가족과 만나는게 소원”
‘제3의 고향’을 사는 사람들. 한민족의 피를 가진 사람들이면서 한인들과 달리 이들이 살아온 삶의 역사는 ‘파란만장’이란 말 그 자체다.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의 아픔 속에서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 한국을 거쳐 미국 땅을 밟은 탈북자가 그중 하나요,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가 소련 붕괴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에 정착한 고려인(카레이스키)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갑신년 새해 아침 힘차게 쏟아 오르는 태양의 역동적인 모습만큼이나 이들에게도 뜨거운 힘과 용기가 있다.
고려인
정치 망명등 통해
대부분 미국에 정착
경제적 안정 소망
러시아어 아직 편해
“스노븜고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은 최 게나지(68) 가정은 여느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들뜬 분위기였다.
우즈베키스탄에 살 때만 해도 12월31일 밤이면 가족과 친지들이 푸짐한 음식이 가득 놓인 식탁에 모여 보드카와 샴페인을 주고 받으며 식사와 얘기 속에 아침을 맞곤 했다.
특히 새해를 알리는 자정이면 온 동네가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스노븜고더”를 외쳤고 3시간 뒤에는 모스크바가 새해를 맞는 순간 또다시 축배를 들곤 했다. 또 흥이 북돋으면 보드카와 샴페인을 섞어 만든 러시아식 폭탄주 ‘오그니 모스크브’(모스크바의 불)를 나눠 마셨다.
미국에서 맞는 새해는 고향과 다소 다른 분위기지만 그래도 재미있긴 마찬가지다. 식탁 메뉴도 한식과 우즈베키스탄, 미국식이 믹스된 것이지만 고기와 파, 감자 등을 넣어 만든 ‘샴샤’, 소금에 절인 연어, 흔히 ‘기름밥’이라고 불리는 ‘뿔로브’ 등 주요 명절음식은 그대로 식탁에 올랐다. 여기에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과 고춧가루로만 만든 김치도 이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주요 메뉴다.
한국어 또는 영어보다 러시아어가 훨씬 편하고 대부분 정치적 망명을 통해 미국에 정착한 이들의 새해 소망은 러시아 또는 우즈베키스탄에 남겨 놓은 가족들과 하루빨리 재회하는 것이고 다음이 경제적 안정이다.
최씨의 경우 둘째딸 올리아와 외아들 쉐냐 가족이 아직 현지에 남아 있고 최씨와 함께 사는 큰 딸 라라 김(45)씨도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딸 타냐(26)와 아들 니콜라이(24)가 올해는 꼭 미국에 들어와 함께 살수 있기를 매일 밤 기도한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이들의 의욕은 여느 이민자 못지 않게 강하다. 지난날 황무지로 강제 이주 당했을 때 조상들이 자갈을 옮기고 잡초를 베어내 옥토로 변모시켰던 저력을 재현하기 위해 더욱 힘찬 모습으로 새해를 맞고 있다.
라라씨는 “고려인들의 경우 언어 때문에 러시아계 유대인 사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새해에는 더욱 많은 고려인들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 한인
목숨걸고 미국땅에
체류신분이 부담
안정된 생활위해
취업 가장 큰 바램
정치와 이념을 고민하기에 앞서 눈앞에 펼쳐진 현실들이 너무 힘들어 목숨을 걸고 북한 땅을 빠져 나온 이들의 대부분은 올 갑신년이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 새해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정말 힘들었던 순간의 연속이었고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서울을 몇 개월, 몇 년을 돌아 한국에 정착했다가 여러 사정으로 다시 무작정 미국에 들어온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여명으로 추산되는 탈북자들 가운데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체류신분 때문이다. 하지만 새해 첫날만큼은 이런 부담들을 뒤로 한 채 한자리에 모여 술을 건네며 북한 사투리를 섞어 옛일을 얘기하니 모든 것이 새롭다. 여기에 가자미 식혜와 순대, 그리고 삶은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얹은 냉면, 만두가 전부지만 고향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고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
이들에게 새해는 도전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적은 돈이나마 벌 수 있는 직장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요 목표다. 그리고 하루속히 말과 문화가 너무 낯선 미국사회에 적응하는 것이다.
평양에서 조리사로 일하다 탈출한 뒤 연변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난 박명남(40)씨는 “미국생활 4개월만에 개구쟁이 외아들이 요즘 영어를 섞어 말하는 게 신기하다”면서 “와서 보니 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정말 빠듯하다는 사실을 절감해 무엇이든 자리가 있으면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향에 부모형제들을 두고 나온 미혼의 임용현(33)씨는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의 무사안위가 제일 큰 소망”이라며 “빨리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 어떻게든 부모님을 모셔올 수 있도록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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