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특징은 ‘열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신앙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 삶에 있어서 교회의 의미는 분명 20~30년 전 이민 초기와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있어 새로운 한 주를 성실하게 시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교회는 본래 ‘예수 제자들의 모임’을 의미하지 예배당 건물을 뜻하는 건 아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저서 ‘신도의 공동생활’(Gemeinsames Leben)에서 교회란 ‘사귐으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 쓰고 있다. 예배당 역시 고딕 양식의 뾰족한 첨탑, 영롱한 빛의 스테인드 글래스를 가져야 할 아무런 필요도 없다. 오히려 신을 모셨던 집인 성당의 양식이 시대에 따라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로 변화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당이라면 응당 기능주의적인 21세기 건축의 특징을 반영해야 하는 게 아닐까. -
교회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단음의 찬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바흐의 대위법으로 이어진 경배의 하모니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로 인해 화려하게 꽃피었다. 조선 땅에 독일 코랄 형식의 찬송가 선율이 전해졌을 때 서양 악보 읽는 법을 배운 바 없던 우리 할머니들은 타령조로 소리를 꺾어가며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찬양을 바쳤었다. 교회의 부대시설 역시 시대와 장소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다.
사제들이 기거하는 수도원이 딸려있던 시절, 성당은 시대를 대표할 만한 회화와 조각 등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요, 앞서 세상을 떠난 사제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이며 성찬에 사용할 포도주를 담그는 양조장이요, 철학과 신학을 익히며 열띤 토론을 벌이던 대학이었다.
교회란 꼭 따분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제들은 꼭 범접하기 높은 단상 위에 올라서야만 할까. 평일에도 입기 불편한 정장을 교회 갈 때까지 입어야 하는 걸까.
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찬양은 꼭 오르간 반주에 맞춘 독일식 코랄이어야 할까. 갈수록 교회 간다는 것이 ‘흥미’가 사라진‘의무’로 여겨지는 시대, 이런 의문을 안고 있는 것이 당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 바란다. 교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은 예수가 스스로를 표현했던 ‘불을 지르러 온 불’처럼 거세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편안한 교회, 살아 생동하며 신명나는 교회, 빨리 예배만 후딱 보고 나오고 싶은 교회가 아니라 온 가족이 일요일 하루 종일을 지내더라도 마냥 즐거운 교회.
뉴포트비치의 매리너스 처지(Mariners’Church)와 레이크 포리스트의 새들백 처치(Saddleback Church)는 새바람을 대표하는 교회들.
이들 교회에 가보면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 치고 춤을 추며 강한 비트의 찬양을 온 몸을 들썩이는 것이 마치 락 스타의 콘서트에라도 온 것 같다. 설교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목회자도 검은 진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옆집 아저씨보다 더 편안해 보인다. 설교를 듣는 교우들은 제이 리노 쇼라도 시청하듯 연신 허리가 꺾어질 정도로 웃어 제낀다.
친교의 시간에는 앞뒤좌우에 있는 사람들과 포옹을 나누며 예수 안에서의 사랑을 표현한다. 육화되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구원의 메시지는 웃음을 머금고 찬양을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만져질 듯 가깝게 다가온다.
이들 교회의 새바람은 건물 내에 여러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서도 특징 지워진다.
어린이들을 돌봐주는 탁아시설, 친교실이야 기본. 서점과 카페, 레스토랑, 패리오는 물론이고 체육관까지 갖추고 있다. 미주의 한인 대형 교회들도 최근 이런 추세를 보이고 있다.
카페에서는 미처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온 교우들이 카페 라테와 크롸상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평화로운 아침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카페에서는 고메이 샌드위치 등 다양한 메뉴의 점심도 맛볼 수 있다. 평일에도 문을 열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어 열린 교회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굳게 하니 일요일만의 교회가 아니라 좋다.
폭넓은 신앙 서적과 찬양 음반을 갖추고 있는 서점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싫지만 의무감으로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온 가족이 주말을 보내기에 더 좋을 수 없는 장소로 변해있다. 예배를 마치고 난 후 패리오에 모여든 교우들은 싱글 맘들을 위한 모임, 시니어들의 모임 등 소그룹에 사인을 하며 다음 만남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있다. 취미 동호회도 많아 한 번 이 교회에 등록을 하고 나면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쏙 들어갈 것 같다.
이들 교회에서는 일요일의 예배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주말 매리너스 처치에서는 ‘재의 수요일’로 개봉 예정된 멜 깁슨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예고편을 상영하며 이 작품을 미리 함께 분석하며 개봉 후 함께 보러 가는 모임에 대한 안내 광고가 있었다.
지난 해 이 교회에서는 여름철의 야구 대회, 가을 추수 카니발, 노래 페스티벌, 칠리 요리 경연대회, 댄스 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함께 치르며 교우들 간의 우의를 다졌다. 올 한 해 역시 계절마다 찾아올 행사들로 몸이야 분주하겠지만 즐거움은 더욱 클 것 같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 지어다.” 시편 기자는 참 존재로 인한 영혼 가득한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현대의 비파와 소고라 할 수 있는 기타와 드럼으로 드리는 예배에 참예하고 교회 문을 나서는 일요일 오후, 천국은 먼 ‘관념’이 아니라, 우리들 가까이 성큼 다가와 있는 ‘실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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