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을 수 없는 인종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많은 청소년들은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있는 공포와 증오로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벽속에 갖혀 살고 있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동심
누가 이 아이에게 꿈을…
‘한가정 한어린이 결연’… 아프리카 3국을 가다
학살과 내전의 땅 르완다
월드비전 하우징 프로젝트를 찾은 유명 가수 유승준씨가 태권도 시험을 보이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어린이들이 밖으로 나와 유씨의 구령에 맞춰 태권도 연습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유씨를 브루스 리 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성당 곳곳에 폭도들이 쏜 총탄과 수류타 파편 자국이 나있어 당시의 처참한 순간을 대변해 주고 있다.
성당 뒤쪽 정원에 마련된 기념관내 선반에는 3만5,000구의 유골들이 전시돼 있다.
후원자로 동행한 김지헌씨가 인종학살 때 부모를 잃은 ‘자넷’(13)의 증언을 착잡한 심정으로 경청하고 있다.
김지헌씨가 인종학살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위로하고 있다.
니야마타로 가던 중 길거리에서 만난 뿔소들. 마리당 100달러나 되지만 뿔소를 몰고가는 주민은 맨발이다.
한 마을에 선 장터를 찾았다. 감자와 바나나, 닭, 도마토, 옷 등이 판매된다.
르완다-김정섭·이승관 특파원
아프리카는 요즘 우기의 길목에 서있다. 3월 중순부터 많은 양의 열대우가 쏟아져 5~6월까지 목마른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빗줄기가 얼마나 굵으냐 하면 어른 손가락 만한 빗방울이 길다란 직선을 그리며 ‘후드득’ 땅바닥을 두드릴 정도다. 그렇다고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장대비를 맞아도 태연하게 걸어다니는 아프리카 사람들만의 여유인지 모르겠다.아프리카 방문객들에게는 말라리아(학질)가 가장 두렵다. 곳곳에 도사린 회색빛 물웅덩이에서 복병처럼 튀어나와 ‘앵앵’ 대며 달려드는 모기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우간다 북부 ‘구루’(Guru) 지역에서만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까지 무려 260명이 말라리아로 죽었다.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논한다는 것이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존엄은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약육강식의 대자연의 섭리를 따라 강자가 약자를 먹어 치우는 말초적 구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곳에는 인간의 생과 사는 백짓장보다도 더 가볍고 하찮은 일로 여겨진다.
학살과 내전의 땅 르완다 (1)
‘사랑의 빚 갚기-한가정 한 어린이 결연’ 캠페인 취재차 3월5일 LA 공항을 떠난 일행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잠시 쉬었다가 케냐의 나이로비를 거쳐 첫 번째 방문지인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도착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만 무려 22시간, 대기시간과 13시간의 시차까지 합쳐 50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일행은 미국 월드비전 시애틀 본부의 조나단 심 디렉터와 4년 전 아프리카를 방문했던 인연으로 길잡이로 동행한 조소라 전 한국 월드비전 직원(현재 몬트레이 베이에서 사회학 박사공부중)이 안내자로, 가수 유승준씨는 미국 한인 친선대사로, 그리고 10명의 어린이와 결연을 맺고 매달 후원하는 뉴저지주 김지헌씨, 2세 대학생 엘리스 정양이 동행했다. 취재 및 사진기자 2명과 비디오 담당 1명을 합쳐 모두 8명.
동부와 서부 아프리카의 중앙에 위치한 첫 방문지 르완다는 인종간의 갈등으로 수차례 학살이 자행됐던 곳이다. 10년 전인 1994년 4월10일부터 100일간 남한 국토보다도 작은 르완다 일대에서 무려 100만명의 인명이 무참히 참살 당했고 40년 전 벨기에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직전인 1959년에도 무자비한 인종학살의 뼈아픈 경험을 했었다.
일행은 르완다 월드비전 본부의 디렉터 ‘아프로디스’의 안내로 학살 피해가 가장 심했던 작은 도시 니야마타를 방문지로 택했다. 니야마타는 키갈리에서 자동차 길로 1시간 남짓 걸린다. 말이 자동차 길이지 비포장 도로인 데다가 길바닥 곳곳이 파여 평균 시속 30~40킬로(이곳에서는 미터형 도량을 씀)도 채 내달리지 못한다. 비포장 도로가 많아서겠지만 대부분의 승용차들이 디젤 엔진에 4륜 구동이고 중고 일제 차란 점이 흥미롭다.
인종증오의 뿌리
후투-투시족 갈등 서방서 부추겨
작은 산들이 많아 ‘수천 개의 능선’이라고도 불리는 르완다의 인종 학살은 독일과 벨기에로 이어지는 정복자들의 인종 분리정책의 부산물이다. 전통적 농업 부족으로 인구의 84%를 차지하는 ‘후투’족과 소와 염소 등을 키우는 유목 부족인 15%의 ‘투시’족 간의 인종 갈등을 교묘하게 부추기며 종족간의 단합을 막는 통치 수단으로 이용했다(1%는 ‘투와’족).
유목족인 ‘투시족’은 소위 엘리트 종족으로 불리며 다수족인 후투족을 지배했고 로마 교황청까지 가세해 ‘투시’족을 공공연히 후원했다.
이에 반발한 후투족들이 1959년 투시족 학살에 나섰고 벨기에가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 이후 정권은 후투족으로 넘어갔고 1962년 독립 이후 주변 국가로 피신한 투시족들은 반군을 조직해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다 1993년 정권 공유를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해 전쟁이 일단락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4년 4월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이 대통령 비행기를 격추시킨 후 그 책임을 투시족에 돌리며 100만이 넘는 투시족 주민들과 온건파 후투족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최근에는 투시족 음모설도 대두). 성당이나 교회를 성지로 여기며 그 곳으로 피신했던 주민들은 오히려 피에 굶주린 학살자들의 좋은 표적이 되어 모조리 죽었다(국민 전체의 76%가 개신교도임).
비극적 인종학살은 현 대통령인 카가미 장군이 이끄는 투시족 반군이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는 7월4일, 100일만에 끝이 난다. 카가미는 학살에 가담한 15만명을 체포했고 노인과 어린이, 조력자를 제외한 7만여명은 아직도 감옥에 갇힌 채 주민들로 구성된 전범 재판에 회부되고 있다.
르완다 정부는 모든 서류에 인종 기재를 전면 금지하는 등 인종 화합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월드비전은 인종학살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었던 청소년들의 심리 치료와 인종간의 화합을 위한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며 돕고 있다.
어린이 학살 후유증 치료센터
공포와 증오로 가슴속 응어리
“부모조차 믿지 못합니다. 학살도 막을 수 없었다는 거지요.” 월드비전에서 운영하는 니야마타 ‘학살 후유증 치료센터’ 책임자인 유지니 무칸타가라는 학살에서 살아남은 또는 이를 지켜봤던 어린이들이 겪어야할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눈앞에서 부모가 죽고 형제, 이웃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한, 또 도주하며 느껴야 했던 오싹한 공포는 어린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센터에 전시된 학생들의 그림에 담겨진 가슴 아픈 장면들을 보면서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철퇴를 들고 사람들을 쫓아가는 폭도, 머리에 칼을 맞고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 주민, 불에 타는 집 뒤에 웅크리고 공포에 질려 우는 아이, 또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한 소녀가 마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장면 등등. 아비귀환의 순간들을 담아낸 어린이들의 얼룩진 동심의 세계를 누가 보상해야 될까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밀려온다.
정신장애 치료센터에는 교사, 공무원, 가정주부, 농부 등 자원봉사로 나선 주민 19명의 스태프들이 부모와 형제들을 잃어버린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린이들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없이 울기만 하고 때로는 공포스런 장면을 떠 올리며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책임자 무칸타는 현재까지 156명의 어린이들이 그룹 토론에 참여해 밝고 명랑한 어린이들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르완다 생활상
적도밑 고산지대
전국이 빈민촌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한국으로 따진다면 조그마한 읍 정도로 작다. 대사관이 즐비한 고급 동네와 빈민촌이나 다름없는 일반인 거주지역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아프리카 빈국의 전형이다. 인구 밀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아 실직률이 하늘을 찌를 듯 높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대부분 사람들이 맨발로 다닌다. 옷가지는 뜯어지고 낡아 보기에도 흉하지만 그곳에서는 흉이 되질 않는다. 실직률이 높은 데다가 물가가 워낙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발값은 현지 화폐로 3만 르완다 프랑(1달러 당 570르완다 프랑)이다. 달러로 환산한다면 5달러가 넘는데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신발을 사 신기란 쉽지 않다.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중고 물품이 소비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에서 쓰다 버린 물건을 빨고 닦아서 판매하는 소위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이 서민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고 물건 값이 싼 것은 아니다. 입었던 청바지 한 벌이 15달러나 된다.
르완다는 적도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산지역이어서 다소 서늘한 느낌마저 들고 건조하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날씨는 아니다. 일행 중 뉴저지에서 온 후원자 김지헌(45)씨가 월드비전이 세운 사립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축구를 한다며 2~3분 뛰어 다니다가 더위에 지쳐 곤혹을 치르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 내린 적도 있었다.
일교차는 거의 없어 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자도 이불이 필요 없을 정도이고 우기에 접어들어 찜통에 넣고 푹푹 찌는 날씨가 계속된다. 신기한 것은 끈적거리면서도 땀이 흐르지 않는, 마치 건식 사우나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취재팀이 묵은 ‘노보텔 키갈리 움무바노’ 호텔은 외국인 전용 숙소로 입구에는 샷건을 든 시큐리티 가드가 상주하고 있다. 르완다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부분이 내전과 종족분쟁, 국가간의 전쟁을 치러 총기나 무기류 소지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호텔뿐 아니라 주유소, 주요 건물, 샤핑몰 등 돈이 오고가는 상가에는 자동소총 또는 샷건을 들고 경비를 서는 시큐리티 가드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집단학살의 현장
성당 찾아 피신 3,500명 몰사 당해
월드비전 니야마타 지역 사무실에서 간단한 배경설명을 받은 일행은 학살의 역사를 기록한 ‘니야마타 성당’을 찾았다가 충격적인 장면으로 치를 떨었다.
맨발에 여기저기 뜯어지고 찢어진 옷을 입은 어린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들어선 그 곳은 1994년 4월 무려 3,500명의 인명이 집단 살해됐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지척의 거리에 초등학교 교사가 등을 대고 있었고 운동장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뛰어 노는,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학살 기념관이다.
관리인의 설명(대부분 영어를 함)을 들으며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코를 찌르는 낯선 냄새에 어리둥절했다. 관리인의 손끝을 따라 입구 바로 왼쪽 작은 방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북히 쌓여있는 유골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네킹일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머리를 디미는 순간 고약하게 썩는 냄새보다도 더 역하고 격한 악취에 정신을 잃은 정도였다. 농부들이 밭을 일구다가 찾아낸, 아직 다 썩지 않은 유골 350여구가 방부처리도 안된 채 겹겹이 쌓여 수개월 동안 방치된 것이다.
오는 4월10일 전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열리는 대대적인 10주년 행사 때 매장할 계획인데 그때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한숨이 나왔다.
양철로 된 천장에는 수류탄 파편이 만들어낸 수없이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고 강대상을 덮은 흰 천은 핏물이 배어 붉은 색이 되어 버렸다. 촘촘히 앉아도 200명이나 될까하는 비좁은 내부에 민병대를 피해 들어온 수 천여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수류탄과 총탄, 창과 칼, 화살촉에 찢기고 난자 당한 채 처참히 살해됐다. 그것도 성모상이 내려다보는 신성한 성당 안에서.
건물 뒤쪽에는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시신 3만5,000구의 유골들이 지하 창고 2곳에 3층 선반으로 겹겹이 쌓여 전시돼 정부의 비호아래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원혼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