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정 한어린이 결연’… 아프리카 3국을 가다
매춘 → AIDS →고아 악순환
학살과 내전의 땅 르완다 (2)
넘치는 고아들
살길 찾아 매춘 AIDS 감염 확산
월드비전이 세운 사립학교를 찾은 후원자 김지원씨가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흐믓한 표정을 짖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스쿠터와 유사한 장난감을 타고 즐거워 하는 어린이. 전부 나무로 만들었다.
기막힌 인생 역정을 살아온 프리스카 여인의 가슴아픈 과거를 들으며 시종 눈물을 흐리던 가수 유승준씨가 여인이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물통을 들고 공동 수돗가를 찾아 물을 받고 있다.
고아가 많은 르완다에서 소년소녀 가장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인종학살이 가져온 후유증의 하나가 고아 문제다. 조카들이 고아가 되면 삼촌이나 고모, 이모들이 아이들을 거두어 키워주는 것이 아프리카의 독특한 가족관이지만 먹고살기가 힘들면 한 입 더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두 명의 조카들이라면 모를까 다산이 미덕인 아프리카에서 4~5명의 조카들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길거리에 내 몰리는 어린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춘이 전부다. 월드비전은 이들 고아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주택과 음식을 제공해 주며 거리의 아이들로의 전락을 막아준다.
르완다 방문 사흘째 만난 ‘클라우디’는 23세의 소녀 가장이다. 여동생 1명등 4명의 동생들을 지난 10년 동안 키워온 ‘클라우디’는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 보인다. 1998년 월드비전의 도움을 작은 주택을 얻었던 클라우디는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동생들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했다. 2001년 니야마타 인근에 위치한 가톨릭 병원 청소부로 취직해 한달 1만9,000르완다 프랑을 받는다. 초봉은 9,000르완다 프랑(약 15달러)을 받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한 클라우디는 남들보다 돈을 더 받는다며 자랑한다.
크라우디의 부모 역시 인종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부유층이던 크라우디 가족은 인종학살이 시작되던 날 뱀이 우글대는 늪 지역의 작은 동굴로 피신을 했다. 낮에는 공포에 떨며 웅크리고 있다 밤이 되어야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는 두더지 생활을 하던 며칠 후 동굴을 발견한 폭도들이 활을 쏘아 대며 가족들을 끌어냈다.
눈에 활을 맞고 끌려나간 아버지와 이모는 현장에서 죽었고 엄마와 동생들은 그 틈을 이용해 죽기살기로 흩어져 도망친 덕분에 살 수 있었지만 엄마는 구타의 후유증으로 2년 후 죽고 말았다.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크라우디’ 형제들은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정신장애센터에 처음 참석할 때만 해도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스태프들의 조언도 받고 친구들도 만나며 말문을 열게 된 ‘크라우디’는 부모가 죽은 후 키갈리의 후투족 외삼촌 집에서 기거하며 수없이 구타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후원자 만난후 미소 되찾아
기막힌 인생역정 프리스카 여인
AIDS에 걸린 ‘프리스카’(45)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더 이상 두렵지가 않다. 월드비전에서 지어준 집으로 이사도 들어왔고 5명의 자녀 중 2명이 외국인 가정과 결연을 맺어 먹을 것과 교육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01년 월드비전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프리스카’는 밤하늘을 가려줄 곳도 없는 숲속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거지처럼 살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는커녕 먹을 것을 찾아 헤매기도 빠듯했다.
5피트7인치의 큰 키인 그녀는 몸무게가 30킬로그램 정도에 그칠 정도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바닥까지 내려가며 비참한 생활로 연명해야 했다. 처지를 비관해 자살도 생각해 봤지만 가톨릭 교리와 올망졸망 고아가 되어 버릴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프리스카’의 가난과 AIDS는 10년 전 인종학살로부터 시작된다. 수도 키갈리에서 경찰관의 아내로 번듯한 생활을 꾸려가던 그녀에게 불행이 닥쳐온 4월10일. 온건 후투족이었던 남편이 투시족인 ‘프리스카’를 죽이라는 후투족들의 압박과 설상가상으로 다리까지 부러져 도망조차 칠 수 없는 처지에 몰리자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곧이어 들이닥친 후투족 극렬분자들의 구타속에서 남편의 경찰관 동료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 동료의 집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얼굴이 조그맣고 늘씬한 서구 미인형인 ‘프리스카’는 그러나 학살 가담을 위해 경찰관 동료가 타지방으로 떠나간 사이 그의 동생으로부터 강간을 당한다. 이후 그녀는 경찰관이 돌아오기 전까지 한달 동안 투시족이라는 이유로 매일 동네사람들로부터 윤간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4년전 월드비전에서 피검사를 받아 HIV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후 딸 2명이 월드비전의 주선으로 캐나다 후원자를 만나 집도 얻고 아이들 교육도 시킬 수 있는 안정된 정착의 삶을 되찾게 됐다.
■니야마타 ‘과부촌’
지옥 같았던 과거 잊고
자활기틀 다지기
성인 10명중 1명꼴로 HIV/AIDS에 감염돼 있고 26만명의 어린이들이 이로 인해 고아가 됐다. 르완다 정부는 최근 수년 동안 방송과 지방정부의 홍보를 통해 HIV/AIDS의 심각성을 알리고 혈액검사를 독려하고 있지만 피를 뽑는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많은 아프리카의 문화적 장애 때문에 검사율이 높지 않아 정확한 감염 비율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HIV/AIDS의 만연은 전쟁과 가난에 따른 강간, 생계형 매춘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르완다의 경우도 인종 학살 당시 수없이 자행됐던 강간, 인종학살로 부모를 잃은 여자 어린이들이 매춘으로 내몰리고, 또 부모가 HIV/AIDS로 죽어 고아가 된 소녀 가장들의 생계형 매춘 등, 악순환의 연속이다.
월드비전이 HIV/AIDS 근절을 위한 방안으로 니야마타에 건설한 ‘과부촌’(Widows’ Housing Project)을 방문했다. 아담한 뒷동산을 끼고 자리잡은 ‘과부촌’은 13채의 시멘트 주택이 2줄로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만난 이슬람교도 무티테리 마마주마(32)는 4명이 자녀들 둔 HIV 환자다.
2001년 남편이 AIDS로 죽고 셋집에서 쫓겨나 생계가 막막했으나 집과 캐나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걱정 없이 아이도 키우고 생계 걱정으로 몸을 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하지만 순진한 아이들
척박하고 부족한 르완다에서도 어린이들의 동심만은 풍성했다. 가난과 AIDS에 찌들은 한 시골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 둘째 아들(13)이 뭔가 보여주겠다며 일행을 밖으로 초청했다. 소년이 보여준 것은 ‘나무 자전거’. 자전거라기보다는 한동안 미국에서 유행했던 ‘스쿠터’에 가깝다고 봐야겠지만 바퀴도 나무고 손잡이, 다리걸이 등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흥미로운 장난감이었다.
소년은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면 마당을 몇 바퀴씩 돌며 시범을 보였고 일행들은 원시시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기한 물건에 가까운 자전거를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장난감이 있을 리 없는 깡촌과 다름없는 이곳에서 나무 자전거는 인기가 최고일 수밖에 없다. 차를 타고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 20세가 훌쩍 넘은 듯한 청년이 3배는 더 큰 나무 자전거를 타고 비탈을 내달리는 모습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놀 거리가 없는 르완다 어린이들은 축구를 제일 좋아한다.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축구공을 차며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죽공은 물론이고 고무공도 갖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천이나 둥근 나무를 검정색 플래스틱 백으로 몇겹씩 칭칭 감은 후 끈으로 얼키설키 묶어 논 ‘플래스틱 축구공’을 즐겨 찬다. 월드비전에서 이번 방문으로 위해 특별 제작한 가죽 공을 건네 받고는 빼앗길 세라 품에 안고 한없이 즐겁기만 하던 어린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월드비전의 가죽 축구공은 가는 곳마다 최고의 선물이 돼주었다. 어린이들은 다 먹고 난 빈 물병도 좋은 선물처럼 받아 챙겼다.
■물은 넘처도 식수난
수자원 개발 못해
물 긷느라 한나절
학교 빼먹기 일쑤
르완다 주민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식수 조달이다.
23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호수, 수많은 강과 하천 등 풍부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개발할 능력과 자금이 없다. 정부가 워낙 가난한 데다가 기술 또한 부족해 외국의 원조나 비싼 돈을 들여 해외 용역을 주어야 하는 실정이다 보니 식수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니야마타에서 취재팀을 환영한 프란시스 누쿠른지자 시장도 물과 음식, 그리고 인종 화합을 위한 노력이 최대의 과제라고 말 할 정도다.
길거리마다 ‘젤리캔’이라고 부르는 노란색 물통을 이고, 지고 가는 광경을 흔히 마주칠 수 있다. 멀리 있는 우물 또는 공동 수돗가에 물을 길어 가는 것이다. 니야마타의 경우 수도 키갈리에서 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상수도 공급원에 연결된 수도관을 통해 식수가 공급되는데 마을에 수돗물 터가 4군데 마련돼 있다. 이중 2곳은 메인 수도관 공사중이어서 사용이 불가능하고 나머지 2군데만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수돗가에는 관리인이 있어 20갤런들이 큰 ‘젤리캔’에 10르완다 프랑을 받으며 파이프나 가압 펌프 등에 문제가 생기면 이 돈으로 수리를 한다.
열악한 물 사정은 아이들의 교육의 기회를 앗아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식수를 길어오는 일은 어린이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과 오후에 수킬로미터 떨어진 우물이나 수돗가에 걸어가 물을 길어 오고 나면 학교갈 시간을 놓치게 되고 오후에 한차례 더 같다오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만다. 월드비전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도 물 사정 해결을 위한 우물 또는 펌프 시설 건립이다.
■시급한 과제-인종화합
인종학살의 뼈아픈 경험을 했던 르완다는 불신의 벽 해소가 제일 큰 과제다. 월드비전은 르완다 곳곳에 YMCA와 같은 청소년 클럽을 조직해 인종간의 단합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치유 모임을 조직해 운영할 재정적 능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행이 방문한 니야마타의 ‘화합의 치유와 청소년 센터’에 마침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이 20명이 청소년 모임을 이끄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1주간의 교육이 끝나면 이들은 출신지 마을로 돌아가 13~25세 청소년들을 모아 화합의 전도사 역할을 해내게 된다.
이들의 치유 방법은 이렇다. 우선 노래와 춤으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해소한다. 유난히 흥이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간단한 손뼉만으로도 신바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슬픈 듯한 2박자 노래를 부른다. 나직한 남성들의 목소리와 그보다 조금 높은 여성들의 화음, 그리고 인디언들이 금방 뛰어 나올 듯한 괴성이 묘하게 어우러져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매력을 지닌다. 이렇게 시작한 모임은 가슴속에 간직했던 혼자만의 비밀을 털어놓고 함께 부둥켜 울며 서로를 위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용서하며 인종화합의 멋진 열매를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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