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취재에 동행한 김지헌씨가 자신이 후원하는 간질병 환자 키잠부 콘자가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고 있다.
황폐화 된 동심 우간다
“코리안 사랑으로 행복찾아”
후원 한인-아동 첫 대면 감격
뉴저지 김지헌씨 매달 300달러로 어린이 10명 도와
반군에 부모를 잃고 홀로된 어린이들을 유승준씨가 위로하고 있다.
“집에 빨리 갈래요. 우리 마을에서 축구공을 가진 아이는 나뿐일 거예요.”
우간다 구루에서의 2박3일 취재를 마치고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로 돌아온 월드비전 아프리카 방문단과 본보 취재진은 뉴저지 김지헌씨가 2년간 후원해 온 키잠부 콘자가(10)와 그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간질을 앓고 있는 키잠부는 발작 증세를 보이며 넘어질 때마다 생긴 상처로 온몸이 성할 때가 없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팔까지 부러졌었다.
김지헌씨와 첫 대면이 서먹해서 인지 김씨가 가져온 크레용 학용품을 받아들고도 그다지 좋아하는 내색이 없던 키잠부는 월드비전의 가죽 축구공을 받고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야 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에 가겠다고 졸라댔다.
키잠부는 수도 캄팔라에서 남쪽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마사카 지역(Masaka District)의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부모와 7명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다.
월드 비전을 통해 김씨와 인연을 맺기 전까지는 병원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난 키잠부에게는 치료라는 것이 어찌 보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평생 구경한번 할 수 있을까한 수도 캄팔라의 종합병원에서 정기검사도 받을 수 있고 매달 지역 병원에서 치료도 받는다. 무엇보다도 좋을 옷을 입고 학교도 다닐 수 있고 음식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좋다. 키잠부는 이날 평생 처음으로 맛본 아이스크림에 반해 숟가락을 쪽쪽 빨며 정신 없이 먹어대 배탈이라도 날까봐서 걱정까지 했다.
김지헌씨는 10명의 어린이들과 후원을 맺고 있다. 매달 한 명당 30달러씩 한달에 300달러를 보내고 있지만 그리 부유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작곡이 전공인 김씨는 뉴욕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현재 뉴저지 신학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전형적인 중산층.
우간다의 키잠부 이외에도 남미와 동남아에 장애 어린이 9명을 후원하고 있는 김씨는 “자랑할 일이 아니라”며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월드비전 재할센터 ‘프로렌스’여인
딸아이를 반군에 빼앗긴 슬픔을 누르고 소년병 카운슬러로 일하는 프로렌스 여인
자신도 딸 잃어버린 엄마
불쌍한 소년병 봉사 7년
“딸의 생사조차 알길 없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나 있겠습니까”
월드비전 ‘소년병 재활센터’의 책임자 데니스 오루크 소장이 이곳에서 카운슬러로 자원봉사하는 ‘프로렌스’ 여인을 소개하며 건네준 말이었다.
‘프로렌스’가 자원봉사 카운슬러로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째로 접어든다.
1996년 이탈리아 수녀들이 운영하는 가톨릭 스쿨 기숙사에서 납치된 딸 앤젤라의 소식을 들을 수 없을까, 마지막 희망으로 이곳을 찾았다가 악몽 같은 기억으로 밤마다 괴로워하는 어린 병사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는 카운슬러로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프로렌스’는 아직 딸아이의 소식을 물어보지도 못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보면 딸을 찾겠다고 혈안이 된 자신이 너무나 창피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 앤젤라는 해머로 철문을 부수고 난입한 반군들에게 139명의 여학생들과 함께 납치됐다. 반군들은 기숙사 사감인 이탈리아 수녀의 끈질긴 애원으로 인물 좋은 여학생 30명만 뽑아 나머지는 풀어주고는 수단으로 끌고 같다. 이탈리아 수녀는 로마 교황청 등을 통해 국제 사회에 호소하며 이들의 석방을 다방면으로 호소했으나 반군들은 여학생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바람에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프로렌스’가 이곳 월드비전 ‘소년병 재활센터’를 찾았을 때 만해도 딸아이를 찾겠다는 모성적 본능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7일 동안 먹지 않고 기도에만 매달려도 보았고 수녀들과 함께 국제 구호단체를 미친 듯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시종 평정을 잃지 않고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던 ‘프로렌스’는 “3번 꿈을 꾸었지요. 앤젤라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으니 기도하라는 것이었다”며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10년간 숲속에서 살던 어린이들이 사회 적응을 하기란 쉽지 않아요. 사회에서도 냉소적이고요.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시체 태운다며 미친 듯이 발작하는 어린이들도 있어요. 이럴 땐 부둥켜안고 우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카운슬러를 하다보니 딸아이를 납치한 반군임이 분명한 소년병들도 만나고 또 “똑같이 생긴 여인을 사령부에서 보았다”는 충격적인 말도 듣게 된다고 한다. ‘프로렌스’는 “용서해야지요. 그들의 의지로 한 일들이 아니라 강요당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냉대받은 반군 희생자들
탈출성공 불구, 왕따·괄시
반군에게 납치됐던 소년병들은 돌아와도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 생존을 위한 야수적 본능만이 남게 된 이들은 성격이 온순할 리 없고 마을사람들도 반군이었다며 냉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년병들만이 아니다. 반군에게 납치됐다가 천운으로 살아 돌아온 여자 어린이들도 괄시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크리스틴 알렘베트(18)는 냉대 속에서도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의과대학을 목표로 입학시험 대비에 전념하는 ‘의지의 여성’이다. 크리스틴은 구루 지역 중심주에 위치한 중고 의류 판매시장(Secondary Market)에 비록 동업이기는 하지만 조그마한 옷가게도 열어 다소나마 자립의 기반도 마련했다.
반군 사령관의 8번째 아내로 1년 반 동안 숲속에서 살았던 크리스틴은 예쁜 딸(4) ‘마레티’를 키우고 있다. 반군 사령관의 아이를 임신한 크리스틴은 반군들이 고향 근처의 한 작은 마을을 습격하는 동안 3명의 감시병중 1명을 자동소총으로 쏘아 죽이고 숲길을 내달려 정부군에 투항했다.
반군들의 손을 벗어난 크리스틴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마을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한동안 고민하며 살아야 했다. 학교 친구들은 ‘폭도’의 아내라며 왕따시켰다. 올케조차 딸 ‘마레티’를 반군의 아이라며 학대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크리스틴은 한동안 머물렀던 월드비전 ‘소년병 재활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월드비전에서 가르쳐준 재봉기술로 조그만 가게도 마련해 운영하는 크리스틴은 한달 5,000 우간다 실링(2달러70센트)의 월세를 내고 5평이나 될까하는 작은 움막집에서 부모와 삼촌, 그리고 딸과 5세의 여동생과 함께 기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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