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월드비전 공동캠페인 ‘사랑의 빚 갚기’
북한동포 허기 채워줄 씨감자 쑥쑥
월드비전 지원 과자공장도 첫 가동
‘허기진 북한 3박4일’ 현지취재
한국산 냉면·떡국 기계도 설치
지속적 관심·후원운동 펼쳐야
3천명 규모 씨감자 사업장 큰 기대
2년후엔 북한전역 보급 수확가능
김일성 생가의 여성 안내원이 방문객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묘향산 보현사의 여성 안내원이 사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직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이번에 와보니 지난번보다 나아진 것은 확실한데…” 평양 외곽을 둘러본 월드비전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다. 몇 해가 되도록 눈 씻고 찾아봐도 논에서 소 구경 못 했는데 올해는 봤다는 것이다. 간간이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소를 발견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 구호 최일선인 월드비전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도 놀랍고 반가운 소식인가 보다. 이 관계자는 한 마디를 더 했다. “그간의 노력이 싹을 틔우는 것일까.”
채소, 감자 농장 방문이 대부분인 방북 스케줄에 묘향산 관광이 포함됐다. 평양의 숙소에서 편도만 2시간 이상 걸리니 당일 코스로는 그야말로 주마간산이다.
묘향산에는 유명한 사찰 보현사는 물론 북한이 자랑하는 ‘국제친선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친선기념관에는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각국의 인사들로부터 받았다는 선물 21만여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일부만 보는 데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주영 회장의 에쿠스 승용차, LG그룹 회장의 대형 TV, 에이스 침대 사장의 가구세트 등 남한 인사들 선물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묘향산 가는 고속도로는 비교적 잘 닦여 있다.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관광지라니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다. 차창으로 보이는 강가에는 그물 낚시를 하거나 멱을 감는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북한 사람들도 나름대로 여가를 즐기며 사네요.” 기자가 무심결에 내뱉자 “집 안에 샤워시설이 없으니 목욕을 하는 것이고 생선 사먹을 처지가 못되니 자급자족하는 것”이라는 월드비전 관계자가 대답, 무안하게 했다. 또 길가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등에 보따리를 짊어지고 걷는 사람도 많았다. 이유인즉 걷다가 혹시 ‘쓸만한 것’이라도 발견하면 집어넣기 위해서라고 한다.
묘향산 보현사의 여성 안내원이 사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묘향산 방문 다음 날엔 평양 인근 삼일포 식품공장을 찾았다. 이 곳은 월드비전이 마련해준 과자, 냉면, 떡국 기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제법 규모가 컸다. 마침 방문한 날 과자 생산기계가 시범 가동에 들어갔다. 미화 6만달러가 들었다는 기계에선 밀가루 반죽을 넣자 잠시 후 동그란 크래커가 쏟아져 나왔다. 첨가물을 넣지 않았다는 설명에 궁금해 맛을 봤는데 역시 밍밍했다.
뉴욕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후원자는 “밀가루를 반죽할 때 기름을 조금 넣고 하라”는 조언을 곁들였다. 밀가루 등이 정상적으로 공급되면 여기서 만들어진 과자들을 유아원, 탁아소 등에 나눠줄 예정이다.
삼일포 냉면공장의 관리인이 미주 방문자에게 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냉면 기계. 한 쪽엔 낯익은 ‘동아밀가루’ 포대가 눈에 띈다. 기계며 재료며 모두 한국산이다. 냉면 기계는 크지 않은 편이었는데 반죽에서 냉면을 뽑는 것은 물론 포장까지 짧은 시간에 끝냈다.
특히 포장전 냉면을 주정(알콜)에 담갔는데 “주정을 거치면 세균이 90% 이상 죽고 면이 쫄깃쫄깃 해진다”는 것이 공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방문 3일째. 월드비전이 북한 식량난 개선을 위해 펼치고 있는 획기적 프로젝트, 씨감자 사업장을 찾는 날이다.
종자 별로 보관된 씨감자들.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평양 농업과학원내 씨감자 생산 사업장으로 향했다. 농과원은 남한의 농업진흥청쯤 되는 곳. 사업장은 3,000평 규모로 제법 크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씨감자 생산 온실과 조직 배양실, 육묘장, 빛쪼임장(녹화장), 저온 냉장실도 갖췄다.
농과원 관리로부터 씨감자 프로젝트 전반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다. 북한에 와서 만난 사람 중 가장 ‘하얀 피부’를 가졌던 이 관리는 씨감자에 대해 문외한들인 미주 방문팀을 위해 어려운 용어는 피하고 알기 쉽게 전달했다. 예를 들어 조직배양실은 탁아소, 육묘장은 유치원으로 비유하는 식이었다. 귀에 쏙쏙 들어왔다.
월드비전은 지난해까지 이 곳을 비롯 정주, 배천 함흥, 대홍단 등 총 5곳에 씨감자 생산기지를 만들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무균질의 씨감자를 수경재배를 통해 생산하는 것이다.
일행은 현장을 보기 위해 조직 배양실에서 육묘장으로 다시 수경재배 온실로 바쁘게 움직였다. 설명을 듣고 난 터라 이해는 한층 수월했다. 수경재배 온실에서 뿌리 하나에 30개 이상의 씨감자 알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씨감자 사업장 관찰이 끝날 즈음 농과원 관리는 “2006년에는 북한 전역에서 수확이 가능하다”는 낭보를 전했다. 그의 얼굴에는 ‘환희’의 표정이 역력했고 월드비전 관계자들의 모습에는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기쁨이 충만했다.
작업장 입구에 세워놓은 대형 차트도 눈길을 끌었다. 작업원과 수확량이 막대 그래프로 표시되었는데 ‘1등 일꾼’의 이름은 빨간색의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모두들 ○○○동무를 본받아 총력을 기울이자”는 문구와 함께. 놀란 것은 1등을 차지한 여성이 따낸 감자가 자그마치 30만개가 넘는다는 것이다.
월드비전이 씨감자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은 지난 2000년 3월이다. 씨감자 만한 식량난 해소책이 없다는 것이 월드비전의 확고부동한 생각이었다.
당시 북측도 옥수수에서 감자 쪽으로 식량 증산정책을 변경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국가의 농업정책에 관해 일개 구호기관과 협정을 맺는다는 것이 북측 입장에서 썩 내키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실무합의서를 서명해야 하는데 정작 고위 관리들은 모두 사라졌다. 간신히 한 명을 찾았는데 이 관리는 3월의 쌀쌀한 날씨에도 긴장을 해선지 땀을 뻘뻘 흘리며 사인하더라.” 월드비전 관계자의 회상 이다.
이제 4년이 지난 현재 월드비전이나 북한 모두 식량 대용식으로 감자만한 것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조차 “식량문제 해결에 확고한 전망이 열렸다. 감자농사를 확대하라”고 지시했다니 말이다.
북한의 경우 매년 200만톤의 식량 부족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나 씨감자의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지면 2~3년 내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게 월드비전의 전망이다. 특히 감자는 생산 즉시 식량화할 수 있고 필수 영양소가 다 들어 있다. 여기다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주민들에게 바로 공급돼야 하는 등 분배의 투명성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씨감자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동안 북한 구호에 앞장선 많은 NGO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들 대부분이 일회성 물자지원에 매달렸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에 비해 월드비전의 씨감자 사업은 구호 차원을 넘어 기술지원을 통한 근본적 식량문제 해결에 접근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여기다 사업 진행에 대해 꼼꼼히 점검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북한 돕기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 점 때문이다. 또 남북 농업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을 교류하고 연구해 사업을 지속했다는 것도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월드비전의 북한 돕기는 이 땅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뭐니뭐니 해도 배고픔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굶주림이란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에 다름 아니란 것이다.
북한 체류 중 월드비전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지난해 방북 때 평양의 한 병원을 찾았는데 입구에 남루한 차림의 40대 아낙네가 대 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좌판을 벌이고 있더라는 것. 좌판에는 시들어 빠진 사과 3개가 오롯이 담겨져 있었는데 너무 배가 고픈 아들은 그만 그 사과에 손을 댔고 야속한 엄마는 그 아들을 사정없이 때리더란다.
“한국이나 미국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사과를 왜 팔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동행했던 인사에게 물어봤는데 “이 곳엔 세계 곳곳의 NGO 관계자들이 자주 들르지요. 그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혹시 사주지 않을까 해서 나온답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미국에 돌아온 후에도 그 모자 때문에 한참동안이나 가슴앓이를 했다고 전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이번에 동행한 노목사가 들려준 성경 잠언의 한 구절이다. 구제가 사랑을 실천하는 직접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월드비전 866-625-1950
보통강 려관 로비의 김일성·김정일 사진앞에 선 이해광 특파원.
음식나르다 즉석 공연도
북한 식당 여접대원들이 무대에 올라가 노래와 멋들어진 춤을 선사했다.
미로·끼 넘치는 식당 접대원들
예술학교 출신들
가야금에 기타까지
북한 체류 기간에 찾은 식당들의 접대원들(웨이트리스)은 대부분 상당한 미모에 끼도 철철 넘쳤다.
평양을 방문한 남측 고위급들을 즐겨간다는 ‘민족식당’의 접대원들은 예술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놀랐다. 이곳의 접대원은 에이프런을 두른 채 서빙을 하다 어느 새 무대에 올라가 가야금이며 피아노, 드럼, 기타 등을 신명나게 연주하고 노래까지 선사했다. 한복차림의 드럼, 기타 연주도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렸다. 전국 가야금 경연에서 1등을 차지했다는 접대원의 연주는 압권이었다.
이 곳에서는 손님이 원하면 라이브 연주에 맞춰 노래도 할 수 있었는데 선택할 수 있는 곡은 10여개에 불과했다. 남한의 ‘아침이슬’ ‘칠갑산’도 눈에 띄었다. 북한곡으로는 ‘심장 속에 남는 사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노래가 정치색 짙거나 노동 혹은 전투가 주제인데 반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거부감이 덜했다.
영화 주제곡이라는데 멜로디도 좋아 체류기간 내내 혼자 읊조리곤 했다.
하지만 북한 식당들의 경우 외국 방문객들에게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내국인과 다른 ‘이중 가격제’ 때문이다. 평양 ‘옥류관’의 냉면은 미화로 10달러를 웃돌았으며 고급 식당의 경우 10여명이 가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면 계산서가 400~500달러를 넘는 것이 예사다.
‘옥류관’이나 평양 고려호텔 식당 등의 경우 냉면이나 쟁반국수를 100~300g으로 나눠 판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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