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등 4명 양평서 등산가다 새벽 피랍
6~7명 괴한, 몸값 전달받은 후 풀어줘
경찰 범행 치밀… 청부납치 가능성 수사
중소기업 회장 일가족이 괴한들에게 납치돼 거액을 주고 풀려난 사건이 발생,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납치범들이 이른 새벽시간대에 등산에 나선 피해자의 행적을 미리 알고 범행을 했으며, 가족 등 4명을 한번에 납치할 수 있는 냉동탑차까지 동원해 반나절만에 거액을 받아간 점 등으로 미뤄 피해자를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있다.
납치에서 석방까지= 9일 오전 6시45분께 경기 양평군 단월면 강대월계곡 입구에서 등산 준비 중이던 건설자재회사 D공업 대표이사 회장 장모(77)씨와 장씨의 부인 및 딸, 운전기사 등 일행 4명이 흰색 1톤 냉동탑차를 타고 나타난 6,7명의 괴한에 의해 납치당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범인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각목 등 흉기를 들고 장씨 일행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위협해 흰색 플라스틱 끈으로 결박한 뒤 자신들이 타고 온 탑차와 장씨의 승용차에 인질들을 나눠 태웠다.
납치범들은 그길로 서울로 올라와 낮 12시께 장씨에게 회사로 전화를 걸게 해 현금 5억원을 준비하도록 요구했다. 오후 3시께 납치범들은 장씨를 데리고 약속 장소인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정문 앞으로 나와 이 회사 사장인 장씨의 아들과 부하 직원으로부터 서류박스 3개에 담긴 돈을 건네 받았다. 납치범들은 20여분 뒤 장씨 일행을 남산 3호터널 시내쪽 입구 부근에서 풀어준 뒤 달아났으며 장씨의 차량은 이태원에서 발견됐다.
경찰, 주변인물 수사에 주력= D공업측은 납치범들에게 돈을 건넨 후 장씨 일행으로부터 풀려났다는 연락이 없자 곧바로 112로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직후 장씨 일행이 풀려난 사실을 확인하고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집에서 새벽에 출발한 장씨 일행의 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점으로 미뤄 장씨를 잘 아는 사람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 장씨는 평소 주변 인물들에게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녔으며 이날 새벽 서울을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일단 피해자가 진술한 탑차의 차량번호를 파악해 차량과 소유주를 찾고 있으며, 장씨의 승용차에서 범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을 채취해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또 장씨 아들에게서 돈을 받아갈 때 얼굴을 노출한 범인 1명의 몽타주를 작성할 방침이다.
경찰은 장씨의 등산 일정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을 모두 용의선상에 놓고 개별적인 조사를 벌이는 한편, 장씨나 회사와 채무관계에 있었던 관련 기업 관계자들도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또 청부 폭력배들을 동원한 납치였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동일 범행 전과자들을 상대로 한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단순납치인가 청부납치인가= 이번 사건을 놓고 한탕을 노린 단순 납치와 채무 등에 얽힌 청부 납치로 시각이 엇갈린다.
우선 납치범들이 현금 5억원을 건네받고 20여분만에 장씨 일행을 풀어주었다는 점에서 `한탕’을 노린 단순 납치사건으로 볼 수 있다. 통상적인 납치·유괴범죄의 경우 금품을 요구하는 장소에 인질과 함께 나가지 않는 것은 물론, 여러 차례 접선 장소를 바꿈으로써 혹시나 있을지 모를 경찰의 추적을 따돌려온 전례로 볼 때 현장에서 범인 중 1명이 허술하게 얼굴을 노출시킨 점 등은 단순히 돈을 노린 아마추어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 심지어 아들에게도 잘 알리지 않는 장씨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단순 납치라고 보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등산 일정과 동행자 수까지 미리 파악해 탑차를 준비한 점으로 미뤄 주변 인물 개입 가능성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장씨가 채권ㆍ채무 관계가 얽힌 중견기업의 회장이라는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경찰도 계획된 청부납치에 비중을 두면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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