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계절이 되었다. 나무는 벌거숭이 알몸이다. 그런데 바라볼수록 아름답다. 그 자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나무들에게서 말없는 교훈 따위를 느끼게 한다.
인간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인가. 우리는 흔히 어느 산 최고봉을 정복하였다. 자연의 어떤 위태로운 환경을 정복하였다는 표현을 예사로 쓰고 있다. 마치 자연과 대항하여 악전고투 끝에 개가를 올렸다는 것처럼.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정복 대상이 아니라, 순응하면서 그 섭리를 따라야 하는 보호자가 아니면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나무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모범생이다. 계절에 따라 봄이 되면 싹이 트고, 풍성한 나뭇잎으로 여름을 즐기고, 가을에는 가족 수를 줄인다. 그것도 한 번에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차츰 차츰 속살을 보이기 시작한다. 굵고 미끈한 나무 줄기에서 가지가 하늘 향해 뻗어나가고,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잔 가지들이 사랑의 동맥 정맥처럼 섬세하게 나
무를 장식하고 있다.
나무들은 제각기 뚜렷한 개성이 있다. 잣나무가 도토리나무를 부러워하지 않고, 소나무가 버드나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각기 자신의 특색을 사랑하며 삶을 즐긴다. 사철나무가 단풍나무의 고운 색깔을 탐내지 않고 그 색깔이 돋보이도록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무에 피는 꽃들도 자기 자신에 만족하며 제각기 존재 가치를 구가하고 있다.
나무들은 어느 곳에서나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바위 틈에서도 싹 트고, 메마른 땅에서도 삶을 영위한다. 자기 자신이 뿌리 내릴 곳을 찾아다니지 않고,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적응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가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자라고 있을까 하고 놀라게 하는 것이 나무들의 생명력이다.
나무들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항상 노력하고 있다. 바람 타고 꽃가루를 날리기도 하고, 맛있는 과일을 주면서 번식하는 지혜도 가지고 있다. 덩굴로 뻗으면서 삶의 터전을 넓히기도 하고, 땅 속 깊은 곳에서 마음껏 삶의 터전을 넓혀가고 있다.
나무들은 인간 생활을 도우며, 동물들의 서식처가 되고 먹거리를 제공한다. 상호 작용이라지만 우리들이 숨쉬는 산소를 주어 생존을 유지하게 한다. 가옥·가구의 주된 재료가 된다. 다양하고 풍성한 각종 열매들은 좋은 식품이며 각종 영양소의 원천이다.
나무들은 온갖 색깔로 지구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그래서 지구를 인공위성에서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초록별로 만들었다. 또 지구를 아름다운 화원으로 만들고 있다. 경관이 아름답다는 것은 나무들의 경관 조성 능력에 달렸다. 지구 전체가 사막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쓸쓸한 이야기인가.
나무들은 말없이 자기의 역사를 기록한다.
나무의 나이테를 보라. 색깔이 연하고 나비가 넓으며 무른 곳은 봄에서 여름에, 색깔이 짙고 나비가 좁으며 단단한 곳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자란 것이다. 우리는 이 나이테의 수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나무는 자기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나무들은 삶의 기본 원소를 자각하고 있다. 즉 나무가 살 수 있는 기본 이외의 물질은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가지를 하늘로 뻗칠 수 있는 따뜻한 햇볕·그리고 목 마르지 않게 마실 수 있는 수분,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무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첫째는 절제된 욕구이고, 둘째는 무엇이 기본인지 잘 알고 있으며, 세째는 이웃을 돕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나무들과 대화를 하는 동안에 그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감사하는 계절에 그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인색했던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무는 풍성할 때도 좋지만, 알몸으로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아낌없이 보여주는 겨울나무는 또 다른 의미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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