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 지난해 12월 말이다. 학교로 나가자마자 첫 번째 만난 그 대학 신문에서 한 기사가 흥미를 끌었다. 낸시 멍거와 찰스 멍거 부부가 대학원생들의 기숙사를 지으라고 4,350만달러를 기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돈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 한참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아야 알 수 있었다. 한 부부가 낸 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이다. 내가 한국에서 나눔 운동을 하다 보니 보이는 것이 이런 기부소식이었다.
도서관 건물에서부터 그 안의 장서에 이르기까지, 큰 대학 건물에서부터 작은 벤치에 이르기까지 기부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2004년 예산 가운데 학생들로부터 받는 등록금은 겨우 19%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각종 기부금과 기금이자 수익 등이었다. 특히 그동안 기부된 돈을 가지고 만든 영구기금은 86억달러나 되었다. 이 돈은 미국의 주식 등에 투자되어 그 수익으로 다시 대학이 운영되고 있었다.
공과대학에는 개인이나 기업이 낸 돈으로 기금을 만들고 유명한 교수를 초빙하여 기금교수로 임명하는 것이 36개나 되었다. 삼성이 그 중의 하나였다. 2002~2003년 한해동안 이 대학은 6만8,810명으로부터 4억8,600만달러를 모금하였다. 더구나 스탠포드 대학은 학부 발전을 위해 10억 달러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돈은 모두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장학사업, 최신 기자재와 소프트웨어의 구입, 유명 교수의 초빙, 그 외 학교 운영에 사용될 것임은 물론이다.
현재 스탠포드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자들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17명, 퓰리처상 수상자가 4명, 맥아더 펠로우가 23명, 전국 과학 메달(National Medal of Science) 수여자가 21명, 전국 기술상(National Medal of Technology) 수여자가 24명,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224명, 전국 공학 아케데미 회원이 133명… 그 자랑이 너무 길어 도대체 모두 인용할 길이 없다.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모시기도 어려운데 한 대학에 17명의 노벨 수상자가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렇게 실력 있는 교수들에게 충분한 급여와 명예를 보장하고 데려오니 좋은 학생들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스탠포드가 미국에서 최상위권의 좋은 대학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대학 교육의 개혁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국제적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숫자를 중심으로 한 대학 평가 보고에 따르면 세계 최우수 대학 100위 가운데 한국의 대학은 하나도 들어가지 못했다. 중국 상하이 교통대에서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 100위 권 대학의 나라별 분포를 보면 미국 61개, 영국 8개, 독일 5개, 일본, 캐나다 4개,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3개, 호주 프랑스 2개… 그리고 각 1개의 대학이 순위에 들어간 나라는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벨기에 핀란드 이탈리아 등 5개 국가이다.
천하의 영재들이 모인다는 서울대는 119위(더 타임스 기준) 혹은 153위(상하이 교통대 기준)이다. 이러한 사실을 들으면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인데 우리 나라의 최고 대학이 이 정도밖에 안되다니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학에 투자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결과는 결코 놀라운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지식과 지혜를 갈고 닦는 대학에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지원했던가. 스탠포드 대학의 동창, 학부형, 시민들이 그 엄청난 돈을 기부하고 그 젊은이들을 격려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교육, 더 나아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기부문화이다. 자신이 평생 고생해서 번 돈을 기꺼이 우리의 미래에 기부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 그것이 바로 선진국이고 선진 시민이다.
박원순
한국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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