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지난 금요일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신문사 바로 뒤 행콕팍의 잔 버로우스 중학교, 3년을 아침마다 데려다주던 곳이 이날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갈 일 없는 곳이 돼버렸다.
졸업식은 실내 강당에서 2차례에 걸쳐 열렸다. 학생수가 워낙 많다보니 이름 알파벳이 앞쪽인 아이들은 아침 9시, 뒤쪽 아이들은 오후 1시30분에 졸업식을 하는 것이다. 아들은 아침 조였다.
졸업생 명단을 대충 살펴보니 700여명이 졸업하는데 한국아이가 무려 200여명,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식이 시작되자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무대 뒤로부터 아이들이 두명씩 나와 인사하고 자리로 들어가는 행진이 계속되었다. 아는 얼굴이 나올 때마다 친구들과 부모들이 열렬히 소리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열광하는 소리가 장내에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그런데 타인종 아이들이 나올 때는 엄청나게 컸던 환호성이 한국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수그러드는 것을 보니 한국아이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소극적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중학교 졸업반, 열서너살 된 아이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빨리 성숙한 아이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은 완전히 어른이 된 모습이었고, 아직 미처 크지 못한 아이들은 어린 티를 벗지 못하고 왜소한 모습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대개 검은 양복 정장을, 여자아이들은 드레스를 갖춰 입고 한껏 멋을 내고들 참석했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해 가는, 정리되지 않은 반성숙한 몸매의 여학생들을 보면서 나의 그맘때를 떠올려보았다. 나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이상했고 가장 못 생겼던 시기, 그 때 사진들은 오래전에 다 없애버렸을 만큼 한심했으며 내면적으로도 심한 열병을 앓던 시기였다.
중학교 3학년, 열네살, 사춘기, 인생에서 이때만큼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하며 어정쩡하고 괴상한 시기가 또 있을까? 나의 아들이 그런 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측은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검은 양복과 넥타이, 구두를 뽑아 입은 아들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졸업장을 들고 나오는 아들을 보면서 나도 어딘가를 졸업하여 아주 떠나고 싶다, 나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기 전 몇 달간 실컷 놀아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오가면서 아들이 부러워졌다. 그러나 그 젊음의 파도와 요동을 다시 겪어야한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였으니, 이래서 인생은 한번만 살게돼 있나보다.
졸업식이 끝나고 다같이 식당에 들러 냉면과 갈비로 이른 점심식사를 하는데 아들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한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왔었어”
눈이 엄청나게 동그래진 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어딜 왔다구?”
“우리 졸업식에 말야. 그 아들이 졸업했거든. 걔 이름은 웨스톤 케이지야”
“너 봤어?” “그럼, 내 친구는 가서 얘기도 하고 왔는데”
“아이구, 니가 기자엄마 아들이냐? 진작에 말해줬어야 가서 사진이라도 찍지”
얼마전 한국여자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던 할리웃 스타가 한국애들이 많은 중학교 졸업식에 나타난 장면을 찍었다면 사진기사라도 쓸 가치가 충분히 있었을텐데, 냉면 먹으면서도 못내 아쉬운 기자엄마는 계속 아들을 나무라고 있었다.
아들의 설명에 따르면 웨스톤 케이지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전 아내의 아들로서 평소 별 특별한 구석 없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졸업식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강당의 맨 뒤쪽 구석에 있었으며 양옆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정복을 입고 귀에 이어폰을 낀 등치 큰 남자들이 지키고 있었단다. 스타의 아들이 평범한 공립학교를 다녔다는 사실도 의외였고, 그렇게 사람 많은 졸업식장에 그가 나타났는데 아무 소동이 없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그나저나 나의 아들이 이렇게 기사감각이 없고 제보정신이 없다니… 빛나는 졸업장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엄마의 업무에 비협조적이었던 태도가 적이 실망스럽기도 했던 졸업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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