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우리 어른들은 시(詩)나 글로써 우리의 높은 정신 문화를 향유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선비정신을 그들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이나 가치로 삼았었다. 국어사전에 보면 ‘선비’를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선비정신’이라 하면 풍류정신에서 비롯된 바 자연을 벗하며 시를 읊고 높은 정신세계에서 물질을 탐하지 않으며 권세에 연연하지 않고 양심과 지조를 지키며 가난해도 체면을 알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줄 아는 속되지 않은 고고한 정신을 말한다.
‘마른 사람을 살찌울 수는 있어도 선비의 마음만은 돌릴 수가 없다’ 란 이 말은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였던 소동파가 한 말이다. 지조와 절개는 바로 선비의 상징이다. 선비는 전통시대의 낡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고리타분한 인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비는 누가 말해도 여전히 한국 지성인의 전형이며 그 선비정신은 우리들이 계승해야할 값진 우리의 정신적 유산이라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요즈음 우리는 이러한 선비나 어른 부재의 사회에 살고있다. 어른의 헛기침 소리 하나에 집안의 흐트러졌던 질서가 바로 서고 곡절 분분한 시비도 소리 없이 곧 잠잠하게 되었던 것이 과거 우리의 뼈대있는 집안의 법도였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 함은 어쩌면 요새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처신의 소산일 것이다. 물질 만능의 사회적 분위기와 출세지향적인 가치관이 팽배해 기성세대는 오로지 이해타산적인 면만 향해 달려왔다. 응당 그들이 지켜야할 정신적 가치와 덕목은 버려 버리고 허황한 욕심과 이기적인 아집을 만족시키기에만 급급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의 덕목이 있게 마련이다. 욕심과 아집은 천박하고 추한 늙은이만을 만들 뿐이다.
우리 민화 가운데 문자도(文字圖)라는 것이 있다. 효, 제, 충, 신, 예, 의, 염, 치 등의 문자를 회화적으로 표현해 8폭의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선비들이나 사대부가들은 이를 사랑방에 펼쳐놓고 항상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하는 거울로 삼았다. 그 중 염(廉)은 청렴과 절제를 의미하는 게(Crab)가 그려져 있다. 게는 세상에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아 처신한다는 출처지리(出處之理)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치(恥)는 의롭지 않은 행동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가려 행동하고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 또 만약 이러한 것들이 어긋났을 경우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반성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염치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우리 모두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간구하며 선비정신을 구가하고 갈파했던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게도 혼란하고 부패한 일은 없었으리라.
물론 모든 변화에는 필연적으로 혼란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밝고 냉철한 지혜와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깊은 안목은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참된 수단이자 열쇠이다. 이는 모두 오랜 경륜이나 식견을 바탕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그냥 순식간에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새삼 선비정신을 상기하고 염치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그만큼 선비의 가르침과 덕목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고 또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옛 우리 어른의 浩然之氣(호연지기) 시 한 수를 소개한다.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하늘을 이불로, 땅은 요(자리), 그리고 산을 베개로 삼고)/ 月燭雲屛海酒桶(월촉운병해주통·달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통이라)/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크게 취해 비몽사몽으로 벌떡 일어나 춤을 추니)/ 怯慮長衫掛崑崙(겁려장삼괘곤륜·나의 긴 소매자락 곤륜산에 걸릴까 두렵구나)
요즈음 특히 우리 사회에 이 선비 정신이 절실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호연지기 사상이 바탕이 되어 언제나 우리 인간을 무한히 편하게 하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까닭이며 이러한 사상은 사회의 악취로 찌든 우리 모두에게 시원한 통풍구나 메마른 땅에 단비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우리 마음의 한도 능히 한껏 풀어 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김영식/볼티모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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