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자 한국일보에는 고구려 연구재단 국내학자들이 1712년, 청과 조선이 국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던 자리를 답사하여 백두산 남쪽 4km 지점에서 정계비 받침들을 찾았다고 하는 신문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읽고 흘러간 역사 앞에 죄인처럼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불성실했던 조선의 신하들은 죄(罪)가 크고 벌은 가벼우니 체입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어 모두 관작(官爵)을 삭탈(削奪)해서 문 밖으로 출송(出送)시키고 싶다.
그것은 한국이, 지금 중국과 일본의 두 나라 사이에 끼여 역사의 왜곡과 땅을 차지하려는 열강들의 치열한 싸움은 이전이나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숙종의 제위 46년간이라는 긴 세월에 이루어진 일 가운데에는 (1) 북강(北疆)의 설진(設鎭) (2) 백두산(白斗山)의 정계비(定界碑) (3) 왜인(倭人)의 울릉도 출입 금지 등이 얘기되어야 할 것 같다.
먼저, 나는 백두산 정계비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한국사에 기록된 내용에는, “가 보지 않았지만 장백산 꼭대기에는 큰 연못(백두산 천지)이 있는데 물이 거기서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이 되었다. 그 연못 남쪽은 다 우리 땅이다. 전에 황제께서 물으실 때에도 이렇게 아뢴 일이 있다”
이것이 당시 조선의 신하된 자들의 대답이니 이것을 숙종의 잘못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밑에서 공연한 당리(黨利) 당론(黨論)에 더 열중했던 신하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때 요즘 한국의 정치가 당시를 재현하는 것 같아 숨이 막히고 애(哀)가 탄다.
당시 청의 총관 목극동은, 그는 청의 명을 받들어 혜산(惠山)에 이르러 토민(土民) 애순(愛順)이란 자를 안내인으로 삼았다.
북쪽으로 향하다가, 곤장우(昆長隅)에서 조선의 접반사 참판 박권, 함경감사 이선부 등이 다 나이가 많아서 험한 산을 걸어 올라갈 수 없다하여 따돌렸다.
자기들끼리 조선의 토민 애순과 역사(譯士) 김경문으로 하여금 이곳이야말로 분수령(分水嶺)이라 할만 하니 여기에 비(碑)를 세워 정계(定界)하자고 하였다.
그 이튿날 사람을 시켜 넓이 2척, 길이 3척쯤 되는 돌을 깎아서 분수령 위의 구부(龜趺)를 얹고 대청(大淸) 2자 밑에는 총관 목극동이 명을 받들고 변경을 조사하다가 여기에 이르러 살피니 서쪽은 압록강이요, 동쪽은 토문이므로 분수령 위에 돌을 세우고 기록한다.
<강희 51년 숙종 38년 서기 1712년 5월 15일>이라 새기고, 자신과 수행원들의 이름을 새겨 세우게 한 것이다. 바로 이른바 이것이 ‘백두산 정계비’이다.
훗날 조선이 토문과 압록, 두 강을 경계로 청과 경계선이 잘못 되었다고 하였으나 이미 북쪽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 이남의 영역이 확정되었던 관계로 청국에 밀려 “가 보지도 못한 채” 청국에게 옛 고구려의 영토를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땅을 표현할 때, 히브리어로 하나는 에레츠(Eretz)로서 지리적으로나 영토나 나라 혹은 지구 전체를 가리킬 때 쓰이고, 아다마(Adamah)라 할 때, 특히 진한 부식토나 황토 등을 의미하며 농사에 적합한 땅을 말한다.
그렇기에 땅은 경제적 차원 뿐만 아니라 정치적 차원을 포함하는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때 역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번 고구려 연구재단 국내 학자들이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던 그 자리를 찾아 답사한 것에 그치지 말고, 다시금 중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과 정복자로서 우리의 삶과 집단성 정체성 마련에 없어서 안될 이 땅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고유의 우리 땅을 억지를 부려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국수주의자들에게 역사 앞에서 냉정히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 앞에 조상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반성하며 우리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여 당당하게 살아나갈 것을 말해보고 싶다.
정권수/목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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