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어느 날 조용한 숲 속에 커다란 소동이 벌어졌다. 한 마리의 토끼가 잠을 자다가 땅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영문을 알 여유도 없이 큰 소리로 “지진이다!”라고 소리치며 도망을 쳤다. 그것을 본 다른 동물들이 이유 없이 함께 도망가고 있었다. 서로 서로 무슨 큰 일이 일어났다고 말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숲 속의 거의 모든 동물들이 한꺼번에 들판을 달리고 있는데, 동물의 왕 사자가 나타나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결국 토끼 한 마리가 경고망동을 일으켜 모든 동물들을 움직이게 한 것이었다. 어떤 기준도 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 수준에 맞춤으로 보여진 집단행동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 이라크의 종교 집회에서 어느 누군가 폭탄이 터졌다는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종교인들이었다. 종교인들이라면 하늘을 보고 마음에 담대함을 갖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종교 의식 가운데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걷잡을 수 없이 사람들이 움직여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남들이 도망가는 수준에 자신의 기준이 무너진 결과가 낳은 참상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약국은 병원보다는 상당히 친근한 곳이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약사에게 찾아가 아픈 데를 설명하고 상담을 할 때가 많이 있다. 그렇게 약사에게 설명을 하는 것은 그래도 받아 줄 만한 일이다. 그런데 몸이 조금 아프면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약의 이름을 말하며 그 약을 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이미 듣고 보고, 또 이전에 한 번 복용했더니 그 약이 효과가 있었다는 경험에 의하여 그 약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르고 그냥 내가 판단한 수준에 의한 것이다. 정확한 의사의 판단 기준을 무시한 채 내가 어느 정도 아픈 정도와 수준에 의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람 사이에도 어떤 특별한 내용도 없이 남이 좋다고 하면 그냥 좋고, 남이 싫다면 그냥 싫어할 때가 있다. 특히 지역간에 그럴 때가 가끔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의 사람인가 기준도 보지 않고, 일반적인 수준에 의해서 포괄적으로 평가를 할 때가 있다. 말을 전할 때에도 남들이 그러하더라 라고 일반적인 수준에 의해서 말하고 자기 나름대로 정한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을 때가 있다. 어느 코미디의 코너에서 “그 까이 꺼 뭐 대충”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기준 없이 사는 현대인들을 꼬집는 것을 보았다. 사실 우리가 꼼꼼하게 살고, 진지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는 때가 있다. ‘참새가 황새 쫓아가다가는 다리가 찢어진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라는 속담이 있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남들이 하는 수준에 따르지 말고, 자기의 기준을 맞추라는 말로 해석한다면 그만큼 좋은 지혜의 말도 없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언3:15-16)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1995년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콜린 파월이 나오면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출마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1995년 7월 ‘파월이라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커버 스토리로 다룬 ‘타임’지는 파월은 자신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자기의 기준을 세워 남의 수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남이 어떻게 사는지, 남이 어떤 수준으로 기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기준을 바로 잡는 것이다. 내 삶의 기준, 신앙 기준을 바로 잡는 다면 바람에 휘날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지혜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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