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생각
▶ 곽성옥/ 메릴랜드대 음대 박사과정
“피아노를 어떻게 하면 잘 배울 수 있습니까?” 레슨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아마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잘 배울 수 있는 비결을 꼽으라면 값비싼 레슨과 좋은 피아노, 그리고 끊임없는 연습을 들 것이다. 물론 유능한 선생과 좋은 악기, 그리고 부단한 연습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은 사실이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듣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각훈련이 없이는 좋은 음악을 구분해낼 수가 없으며 따라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한국 가정을 방문해 보면 피아노를 들여놓고도 몇 년씩 조율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둔 집들이 대부분이다. 한번 손을 보러 가면 몇 년 동안의 양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조율사에게 주어진다. 중요한 사실은 손해를 입는 쪽이 조율사뿐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육체적인 피곤을 더하는 조율사의 부담은 한 순간인데 비해, 그런 피아노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손해는 헤아리기 힘들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아주 치명적이라 하겠다. 예민한 귀를 가진 어린 시절에 이렇듯 정돈되지 않고 흐트러진 음을 듣고 자라야 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틀어진 음을 듣고 자라다 보니 대학에서 전공을 하게 되어도 이미 잘못 길들여진 귀를 바로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Well tuned piano, well tuned musician”, 내가 학부모님들께 자주 답하는 문구이다. “좋은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가 훌륭한 음악인이 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손가락을 가졌다는 우리나라 음악전공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listening 이라는 사실은 듣는 훈련의 소홀함을 증명해 준다.
정돈된 음을 듣는 훈련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좋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많이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오케스트라와 성악곡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을 더 많이 듣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좋은 글을 많이 읽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에서 이 훈련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훌륭한 예술가들의 음악을 많이 접하는 것은 양질의 책을 많이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음악은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깊은 생각을 가진 문인에게 독자를 깊이 빠지게 만드는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감동적인 삶을 살아온 음악인으로부터 청취자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음악이 나온다. 같은 악보를 가지고 베토벤의 월광을 연주하더라도 연주자마다의 색깔과 미치는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저마다의 다른 삶이 각자의 음악에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악인은 감동스럽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 시절에 독방에서 피아노만 연습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음악 이외에도 많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봉사와 사랑 등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은 청취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예술적 색깔을 기르기 위한 필수적 훈련인 것이다.
쇼팽 야상곡 내림 라장조(Chopin Nocturne in D flat Major, Op. 27 no. 2)를 레슨 받을 때의 일이다. 마지막에 계속 작아져야 하는 어려운 부분을 교수님께서 직접 내게 들려 주셨다. “선생님의 건반을 다루는 솜씨가 과연 놀랍습니다” 하며 감탄하는 내게 그분은 이렇게 대답 하셨다. “이것은 건반을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내 사랑의 표현이란다.”
피아니스트는 연습이 만들고, 예술가는 삶이 만들어간다.(“Practice produces a pianist and life creates an artist.”)
곽성옥/ 메릴랜드대 음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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