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면 양잿물도 사양 안 한다고 했던가. 내 머리가 몹시 벗겨진 것도 공짜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아내가 가끔 골려대듯이 공짜 구경이라면 무척 즐기는 편이다. 2월 중 ‘품바’를 관람한 것도 한국일보사에서 표를 보내주었기 때문인데 대체적으로 뛰어난 공연이었다고 생각된다. 장구와 북을 잘 치는 고수가 한 명이고 7대 품바 라는 김기창 씨가 무려 1인 14역을 소화해내는 구성진 각설이 타령과 독백 및 대화는 무엇을 하던지 열심히 연습하면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중간중간 짙은 성적 농담이 내 귀에는 거슬려 들렸지만 관중들 모두가 박장대소를 아끼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연기력이나 순발력이 수준급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결론이다.
더구나 필자가 어렸을 때 봄이면 각설이 타령을 하면서 찬밥일망정 구걸해 가는 거지떼를 보았던 것이 기억되기 때문에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품바의 발에 걸쳐진 발싸개를 보면서 이제는 50객 이상이 아니면 알아듣지도 못할 ‘거지 발싸개’란 표현이 생각난다. 6.25 사변 전 진천 상산국민학교를 다니던 많은 학생들은 운동화는커녕 고무신도 못 신어 짚신을 신고, 양말이 없어서 겨울이면 무명천으로 발을 감싸고 다녔었다. 비교적 잘 사는 집안 아이래야 양말을 신을 수 있었지만 양말 발꿈치가 맨 먼저 떨어지기 때문에 집집마다 일본말로 전기 다마(전구)를 양말 속에 집어넣어 양말을 꿰매 신키고는 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양말을 깁는다’ 또는 ‘꿰맨다’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품바의 몸에 이가 들끓어 말못할 데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긁적긁적 긁어대는 장면이나 이 잡는 장면도 우리의 어릴 때를 회상케 해준다. 특히 겨울철 아침에 일어나면 속옷을 벗어 이를 사냥하는 게 일과의 시작일 수도 있었다. 통통 살이 찐 이를 두 엄지손가락 사이에 넣고 꼭 누르면 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내 몸을 빨아먹은 피가 손톱에 묻곤 한 기억이 나의 동년배 전후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어렸을 때 뿐인가. 1961년 말인지 징집되어 논산훈련소에 갔다가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집에 돌아온 날 나의 내의에는 이가 하도 많아 다리미로 다려서야 이를 박멸할 수 있었으니까. 또 여름철이면 빈대와 벼룩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던지 곤한 잠을 자다가도 하도 가려워 깨가지고는 전깃불을 켜면 벼룩은 톡톡 튀어 도망가지만 빈대는 피를 너무 많이 빨아먹은 탓에 제대로 기지도 못해서 보복을 하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 아니 중학교까지도 머리에 서캐가 잔뜩 끼어있는 학생들이 많아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DDT 살포세례를 받곤 했었던 것이 한국의 가난한 자화상이었다. 그 때에 비하면 얼마나 세월이 좋아졌는가.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 그렇다. 1960년대 초에 국민총생산량 1년의 1인 소득이 겨우 100여 불이었던 것에 비하면 1만 불 대 중간지점이라는 현 경제가 얼마나 괄목할만한 발전이었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필자 개인만 하더라도 1964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스탠포드에 유학 왔을 때 한달 생활비로 나온 205불이 당시 한국의 신문사로서는 최고 월급이라는 동아일보사 기자 월급의 다섯 배 이상이었으니까. 그러나 비교적 풍요한 가운데서 자라온 우리네 아이들은 부모시대의 노고를 감사히 인식하는 마음이 없다. 특히 이민 와서 피땀 흘려 생업을 이루고 자식들을 교육시키려고 노력했건만 영어구사에 있어서 아무래도 불편한 부모가 자식들에게 서류 하나 읽어달라고 하면 자식들의 태도가 가히 배은망덕적이라서 기막혀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마치 노무현 정부의 386세대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고등학교 교장이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 총장이다” 또는 “노 대통령은 21세기에 있는데 국민들은 여전히 군정 하에 있는 것 같다”라는 ‘싸가지’ 없는 입질을 하는 것과 비교가 된다. 독재는 했을 망정 경제는 일으켜놓은 실적을 전혀 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