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란 것은 참으로 묘하다. 건강 면으로 보더라도 적당히 마시면 심장과 위장에도 도움이 되는 약주지만 많이 마시면 간경화증, 또는 간암까지 이르는 독배가 된다. 인간관계로 따지자면 술자리가 친구들과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고 서먹서먹하던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는 사교의 윤활유가 되는가 하면 절도를 지키지 않는 음주 습성은 심각한 폐해를 초래한다. 평소에는 참하던 사람이 술에 취하면 폭력적이 되어 가족들을 마구 때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제 정신이 아니라서 성폭행자로 둔갑하는 예마저 있다. 심지어는 판단력의 마비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취한도 있다.
술 취해서 실수한 경험은 나에게도 있다. 1959년 동아일보사 제1기 견습기자 시험에 합격한 12명의 견습기자 중에서 나만 대학 재학중이었고 나이도 가장 어려서 그야말로 말단의 말단 격이었으니까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첫 번으로 배속된 사회부의 최호 부장이 견습기자들 환영 겸 부회를 중국음식점에서 열어준 자리에서 아마 배갈을 너무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내가 술이 취해 최 부장에게 대들면서 “십 년 있으면 나도 당신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식의 망발을 했으니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죽했길래 그 이튿날 나의 고등학교 6년 선배인 신용순 씨가 나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을까.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정치생명이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한 것도 술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한나라당이 동아일보 편집국장, 정치부장, 그리고 정치부 기자들 7명과 상견례를 하자고 어느 음식점에 초대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 그리고 당시에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최 의원 등 당직자 7명이 합석했었는데 박 대표와 임채정 편집국장은 자리를 뜬 다음 2차로 자리를 옮기고 난 후 동아일보 정치부 여기자를 최 씨가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그의 가슴을 더듬는 성추행을 했기 때문에 여기자가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 사무총장에서 떨려난 최 씨의 변은 설상가상이었다. “나는 그 여자가 음식점 주인인 줄 알고 그렇게 한 것인데 미안하게 되었다.” 음식점 주인은 성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검사출신이며 청와대 무슨 수석비서관을 지낸 3선 국회의원의 입에서 태연히 나온다는 게 우리 나라 정치인들의 성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에게 성폭행을 가하고 죽이기까지 한 흉악범의 충격적 사건의 여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최 의원이 특히 강원도 자기 선거지역의 성폭력 대책위원회인지의 위원장을 하는 자로서 그따위 행위를 저지른 것은 그가 국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다.
그러면서 폭탄주라는 지극히 한국적 악습을 생각해본다. 내가 한국을 떠난 후에 한국의 당시 지배계급이던 군부에서 시작되었다는 폭탄주는 정말로 못된 음주방법이다. 적당히 마시자는 근본을 뿌리째 뽑은, 즉 짧은 시간 내에 빨리 취하게 만드는 최악의 음주문화다. 검찰이나 판사들 등 한국의 소위 엘리트층들과 또는 일반기업에서도 내부결속과 단결을 다진다고 잦은 술자리를 갖게 되고 술자리에는 꼭 맥주에 양주를 섞어 빨리 취하게 만드는 폭탄주의 순배가 단골메뉴로 등장하기 때문에 고주망태가 흔히 발견된다. 그것에다 음식점, 특히 룸살롱 등 여종업원들은 성희롱의 대상물이다 라는 등식이 많은 남자들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더하면 최연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겠다.
또 신문사 편집국장 등이 정당 당직자들의 ‘상견례‘ 명목으로 향응을 받는 것도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물론 사회구조나 역사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리드아이언 디너나 백악관 기자클럽 디너에 언론기관이 뉴스메이커를 초대해서 대접하는 관례와 아주 대조가 되는 현상이다.
<남선우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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