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전도서 9:11) 이스라엘의 가장 현명한 왕 솔로몬의 위 같은 잠언은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진리이다. 시기와 우연, 즉 예기치 않았던 사건 발생 중 최근 가장 기억 남는 것은 9.11 사변일 것이다. 그날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있다가 사망한 3,000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는 정규적인 직업 때문에 그곳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의사와의 약속 등 때문에 그곳에 간 사람들도 있었다. 또 그곳이 직장이던 사람들 중 그날 출장 중이었거나 아파서 결근한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로 비명횡사를 피할 수도 있었으니까.
우리집 부근에 늘 조깅을 하던 수의과 의사 닥터 김이 생각난다. 몇 년 전 닥터 김과 그 부인에게는 최고의 한 해였었다. 딸이 하바드 법과대학을 졸업하는 해인 동시에 아들은 역시 아이비 리그인 펜실베니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면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엘 가게 된 해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부부가 뉴햄프셔 애비뉴에서 자기집 길로 좌회전을 하던 중 반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온 자동차에 그 부부의 자동차 개스 탱크 부분이 충돌되는 바람에 두 사람이 다 목숨을 잃게 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 두 분이 바로 그 시각에 딴 곳에 있었거나 또는 몇 초 차이로 좌회전을 했었더라면 그 같은 끔찍한 사고에 희생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나의 아내가 교통사고는 아니지만 큰일날 뻔한 사고를 겪었다. 나는 버지니아주 매나세스에서 열린 변호사 윤리 세미나에 갔다가 2시경에 집엘 왔더니 아내가 오른편 발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손으로 조종하는 작은 경운기가 배달되었던 것인데 워낙 우리집에서는 나의 아내가 엔지니어 노릇을 하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지 않고 기계를 조립해서 시동시 켰더니 기계가 전진을 하는 게 아니라 후진하는 바람에 급히 몸을 피한다고 했지만 그 날카로운 톱니바퀴가 다리 밑 여러 군데를 치고는 발등을 두어 인치가량 찢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워낙 마당일을 좋아하는 아내라서 그 회사의 같은 제품을 서너개 조립했던 경험이 있어 자신있게 했다는 것이 오른쪽에 가야할 것을 왼쪽에 다는 바람에 생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만하기가 불행 중 다행, 또는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아내가 기계를 피하다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이라도 일으켰다면 나는 졸지에 홀아비가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또 아내가 기민하게 피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발 하나나 둘 다 절단되는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다른 병원에 가면 오래 기다릴 것 같아서 이비인후과 의사라 외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사위가 관여하는 굿 사마리탄 병원의 응급실엘 달려가서 사위 자신이 서너 바늘 꿰맨 후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해주어 일주일이 넘는 지금에는 조심조심하면서 걸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아내가 아파 누워있는 동안 설거지, 빨래 등을 하면서 얼마나 아내의 존재가 중요한 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여자의 일에는 끝이 없다”는 서양 속담이 꼭 맞는 말임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을 끝냈다 싶어 돌아서면 또 치우거나 할 일이 눈에 띄어 계속 서있어야 되는 판국이었다. 그리고 기계조립에 있어서의 실수도 내가 원인제공자인 것 같은 죄스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몇 주 전 개들을 목욕시키면서 세탁장 싱크에서 세탁기 호스를 뽑아둔 것을 다시 싱크에 넣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바로 그날 아침 빨래 물이 지하실을 범람시킨 일이 있었다. 아내는 아마 그것을 골돌히 생각하다가 실수한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더 원천적으로는 기계조립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고 아내에게 맡겨온 나의 44년간의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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