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미주문학상 받은 2인
소설가 김혜령, 시인 한혜영
좋은 시, 좋은 소설 한 편을 만난다는 것은 독자로서는 행운이다. 무슨 상품처럼 문학도 범람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주 한국문협은 얼마 전 미국에서 좋은 글을 쓰는 작가 두 사람을 가려냈다. 제14회 미주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한혜영과 소설가 김혜령이 곧 그들이다. 본인들로서는 영예겠으나 독자로서는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혜령
시인 한혜영
미주문학상 심사과정에서 한혜영의 시는 ‘압축의 미학과 비유’ ‘치열한 시정신과 세련된 표현’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혜령의 소설은 ‘능숙한 어휘구사와 밀도 있는 표현, 탄탄한 구성’이라는 평을 들었다. ‘한국문단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이라는 소개도 곁들여졌다.
최근 몇 년간 마종기 시인과 함께 본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던 한혜영은 ‘현대시학’ 추천과 중앙일보(서울) 신춘문예 당선, 본보 문예공모전(소설)에도 당선됐던 김혜령도 권위 있는 문학지 ‘현대문학’ 중편당선이라는 과정을 거쳐 문단에 나왔다.
두 작가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혜영은 시, 소설, 동화까지 활동영역이 넓다. 김혜령은 작품량이 한혜영에 미치지 못하지만 소설과 시를 같이 쓴다. 두 사람은 한 때 ‘해외 한국시’ 동인으로 함께 활동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16일 본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10년만의 조우라고 했다.
“이민자의 은밀한 아픔 그리고파”
소설가 김혜령은 문학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18세에 미국 와 대학(UC 어바인)을 졸업하고, 결혼 후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의 말대로 생활의 틈새에 끼인 글쓰기는 자꾸 뒷전으로 밀렸다. 미주의 젊은 문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 속에서 그는 결코 다작의 작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그래서 이번 미주문학상 수상에 대해 ‘도망치려다 덜미를 잡힌 기분’ ‘딴전 부리다 이름을 불린 느낌’이란 말로 이야기했다.
그의 소설들은 그러나 발표될 때마다 선배나 동료 문인들로부터 따스하게 받아들여져 왔다. 한국에 살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소설이 가능했을 작가라는 아쉬움도 주변에서는 나온다. 본인이야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살 수 있으니까 여기가 좋다”고 하지만-.
김혜령은 “이민역사와 작품은 나란히 가는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이곳 이야기를 쓰게 된다. 여기 생활과 현실 이야기가 내 소설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민자들이 새 문화를 받아들이는 정도와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은 지극히 개별적이다. 편차가 크다. 그는 그 한 사람 한사람의 내면을 체험하면서 그들의 내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한다. 이 땅에 옮겨와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되 바깥보다는 그들의 안에서 은밀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려내고 싶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이런 계획에 의해 이민자들의 숨겨진 상처와 삶의 애환은 새롭게 드러나 그 갈등과 부적응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김혜령은 62년생. 80년 미국이주. 미주 ‘문학세계’ 단편소설·시 입선. 미주한국일보 소설당선(93년). ‘문학예술’시 당선. ‘현대문학’ 중편당선(94년). 제14회 미주문학상 수상. 소설집 ‘환기통속의 비둘기’
“고립과 외로움이 창작의 원동력”
플로리다에 사는 한혜영은 “카운티 전체의 한인 이래야 500여명, 그것도 한인 부부는 드물고, 한국서점도 한 곳 없는 곳”이라고 그는 사는 곳을 소개한다. 그는 지난 16년간 이곳에서 ‘현대시학’ 한 권만 가지고 문학공부를 해 왔다. 그러면서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많은 문학작품을 내놨다. 어떤 면에서는 오지 문학, 격절의 문학을 한 셈이나 이같은 고립과 그 외로움이 창작의 원동력이 됐다. 그 결과 그는 16년 미국생활 동안 시집 2권, 장편소설 1권, 장편동화 5권 등 8권의 창작집을 펴냈다.
“결과적으로 눈치 안보고 나 좋아하는 문학만 한 셈”이라는 그는 혼자 하는 문학에 좌절하거나, 아무 것도 써지지 않아 불안할 때는 장편동화를 잡았다. 그러다가 막 시가 걱정되기도 했다. 안 써지면 어쩌나 하고-. 그러나 지금은 장르를 넘나드는데 큰 부담이 없다고 한다.
“미국사회에 대해서 아직 나는 주변인물이다.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주로 추억을 노래했다. 동화나 산문은 대부분 미국이 배경이긴 하나, 나의 문학, 특히 시를 보면 외국에 사는 사람인줄 모른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미국서 혼자 하는 한국문학의 한계를 느끼고 답답해 할 때 마종기, 고원, 박남수 등 좋은 선배시인이 수상했던 미주문학상을 받게 돼 큰 격려가 됐다고 한다.
그는 내년부터 봄 가을은 한국서, 나머지는 플로리다에서 사는 두 집 살림을 계획하고 있다. 17년째 접어든 미국 체험이 어떻게 그의 문학에 반영될 것인가. 그 자신도 궁금하다고 한다. 한혜영의 올 미주문학상 수상작품들은 최근 나온 그의 시집 ‘뱀 잡는 여자들’(서정시학)에 수록돼 있다.
●한혜영의 수상작중 ‘뱀 잡는 여자’
‘혼자 있는 저녁 무렵 뱀이 들어왔다 베란다에 / 자살테러범처럼 독(毒)을 품고 잠입한 독사 / 놀란 새들은 / 새장을 떼메고 허공 높이 화르르 날아오르고 / 함께 날아올랐으나 이내 추락했던 나는 / 엉겁결에 움켜잡은 삽자루를 / 미친 듯이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한껏 / 끌어당겼다 놓아버렸던 팽나무 가지처럼 / 탱탱하게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뱀 / 그보다 조금 더 높게 솟구쳤던 삽날 / 섬뜩하게 내리꽂히는 순간 똬리 //
탁! 풀어지면서 노을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 세상에…세상에…저 진홍빛…//
무장해제하고 축 늘어져 있는 / 녀석을 보고서야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 무서웠다 도대체
여자 나이 몇 살이면 뱀을 / 때려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
뱀 한 마리 / 잡는 사이에 나는 부쩍 늙어버린 여자였다’ <계간 ‘서정시학’2006년 봄호>
■한혜영은 54년생. 90년 미국이주. 아동문학연구’동시 당선. 현대시학’시 추천. 중앙일보(서울·96년) 신춘문예 시 당선. 추강해외문학상’신인상. 계몽문학상’장편소년소설 당선. 제14회 미주문학상 수상. 시조집 ‘숲이 되고 강이 되어’. 장편소설 ‘된장 끓이는 여자’. 장편동화 ‘뉴욕으로 가는 기차’등 5권.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뱀잡는 여자’
<안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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