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고교 학생이었을 때는 영화구경을 꼭두새벽에 학교에서 단체로 갔다. 그 때는 개인적으로 극장에 가면 정학을 받았다. 나는 고1 때 겁 없이 교복 입고 현 조선호텔 앞에 있던 경남극장에서 앨란 래드가 나온 웨스턴 ‘대혈산’을 보고 나오다 단속반에 걸려 2주 정학처분을 당한 전과자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해 제일 먼저 본 영화가 단성사에서 개봉한 웨스턴의 고전걸작 ‘셰인’(Shane·1953)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과묵하고 고독한 총잡이 셰인(앨란 래드) 그리고 셰인을 우상시하는 꼬마 조이 (브랜든 디 와일드) 및 6연발 권총의 속사 대결과 음악 등 모든 것이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 죽음의 사신 같은 킬러역의 잭 팰랜스였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하고 쉰 목소리를 내면서 사신의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꿈에 다시 볼까 두려운 것이었다.
팰랜스는 와이오밍 그랜드 티튼 지역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라이커가 농부들을 몰아내기 위해 고용한 킬러 잭 윌슨(사진)으로 나온다. 그가 검은 모자에 검은 조끼 그리고 검은 커치프를 목에 감고 검은 장갑과 검은 부츠를 신은 채 부츠의 박차소리를 내며 동네 살룬에 들어설 때 개도 무서워 꼬리를 감추고 피할 정도였다.
마지막 총격장면은 이 살룬에서 셰인 대 윌슨 간에 벌어진다. 셰인이 포커 테이블에 앉아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는 윌슨에게 먼저 “너에 관해 들은 바 있지”라고 말하자 윌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서서 “뭐라고 들었냐”고 반문한다. 이에 “셰인이 ‘네가 야비한 양키 거짓말쟁이’(You’re a Low-down Yankee Liar)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답하자 윌슨이 “증명해 봐”라고 응수한다.
이어서 총성이 일어나고 셰인의 총에 맞은 윌슨은 살롱 구석으로 나가떨어지면서 무너져 내리는 술통들 속에 묻힌다. 셰인의 총 솜씨가 어찌나 빠른지 이를 숨어서 보던 조이뿐 아니라 나도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팰랜스는 영화에서 단 12줄의 대사밖에 말 안 하고도 오스카 조연상에 올랐었다. ‘갑작스런 공포’(1952)에 이은 두번째 후보작이다.
팰랜스가 지난 10일 캘리포니아 몬테시토에 있는 딸 할리의 집에서 사망했다. 향년 87세. 팰랜스의 얼굴이 해골에 가죽을 뒤집어씌운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가 2차대전 때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입은 부상 때문이다. 전화위복이랄까 그는 이 얼굴 때문에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배우가 됐는데 또한 그 탓에 많은 웨스턴과 다른 영화에서도 주로 악역을 맡았었다. 그는 생애 100여편의 영화 외에도 여러 편의 TV 영화와 시리즈에 나왔는데 그 중에서 좋은 사람 노릇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가 가장 연민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리 마빈과 함께 저물어 가는 카우보이로 나온 ‘몬테 월쉬’(1970)다. 프랑스 여우 잔느 모로가 공연한 이 영화는 우수가 가득한 황혼 무렵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무능한 대대장에 갈기를 세우고 반항하는 2차대전 벌지전투에 뛰어든 소위로 나온 ‘공격!’(1956)도 강렬한 작품. TV 영화로는 한물 간 박서로 나오는 ‘헤비급을 위한 진혼곡’(1956)에서의 연기가 참으로 통렬했다.
팰랜스 하면 잊지 못할 것이 1992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있은 오스카 시상식. 그는 그 날 세번째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도시의 얌체들’로 마침내 상을 탔는데 상을 탄 뒤 무대에 엎드려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여러 차례 해 완력을 과시했었다. 그 때 73세였다.
펜실베니아 탄광촌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며 자란 그는 대학을 중퇴, 프로박서(12승2패)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기자를 거쳐 브로드웨이로 나갔다. 연극 경험이 도움이 돼 할리웃에 왔는데 첫 영화 ‘거리의 공포’(1950)에서 전염병균을 몸에 지닌 킬러로 나와 대뜸 호평을 받았다. 팰랜스는 1982~86년 ABC-TV 쇼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의 호스트로 나왔었다.
팰랜스는 런던의 시리얼 킬러 잭 더 리퍼와 로마시대 검투사, 훈족 맹장 아틸라 및 카스트로 등 종횡무진으로 다양한 역을 해냈던 분주한 배우였다. 생긴 것과는 달리 매우 따뜻하고 베푸는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는 채식주의자로 나무와 시와 그림을 사랑했는데 자기가 직접 삽화를 그린 책 ‘사랑의 숲: 공백의 시 속의 러브 스토리’를 내기도 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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