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면
마음 다스리기
마음 혹은 생각. 그것은 볼 수 없습니다. 들을 수 없습니다,. 냄새맡을 수 없습니다. 맛볼 수 없습니다. 만지거나 붙잡거나 가둬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쁘고 슬프고 화내고 탐하는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으로 설명됩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행복의 첫 열쇠도 마지막 열쇠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다고 말을 잇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돈이 들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우리는 불행하다고, 우리나라는 행복하지 않다고, 우리세계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 혹은 생각. 모든 것을 일으키(는 근원으로 말하여지)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듯이 형체를 보이지 않는 그것을 다스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새해 새아침 행복을 향한 새출발’이란 큰 주제 아래 펼치는 2007년 한국일보 신년특집의 첫째마당을 ‘마음 다스리기’로 꾸몄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그리하여 마음을 다스려나가는 익숙한 방법을 기도하는 기독교인, 성호 긋는 천주교인, 합장하는 불교인을 예로 들어 설명코자 했습니다. 물론 또다른 예도 곁들였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07년 1월 1일 <한국일보 신년특집팀>
●2면
<마음을 다스리는 글>
복은 검소하고 맑은 데서 생기고, 덕은 겸손하고 사양하는
데서 생기며, 도는 편안하고 고요한 데서 생기고, 생명은
순하고 사모치는 곳에서 생긴다. 근심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재앙은 탐욕이 많은 데서 생기며, 과실은
경솔하고 교만한 데서 생기고 죄악은 어질지 못한 데서
생긴다.
눈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그릇된 것을 보지 말고, 입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하지 말며, 마음을
경계하여 탐내거나 성내지 말고, 몸을 경계하여 나쁜 벗을
따르지 말라.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함부로 하지 말고, 내게 관계없는
일은 함부로 하지 말라.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웃어른을 삼가 존경하고, 덕이 있는 이를
받들며, 어질고 어리석은 것을 분별하여, 어리석은 자를
꾸짖지 말고 용서하라. 물건이 순리로 오거든 물리치지
말고, 이미 지나갔거든 쫓지 말며, 몸이 불우에
처했더라도 바라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거든 생각하지
말라.
총명한 사람도 어두운 때가 있는 것이고,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놓았어도 편의를 잃는 수가 있다. 남을 손상케 하면
마침내 자기도 손실을 입을 것이요, 세력에 의존하면
재앙이 따를 것이다. 경계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지키는
것은 기운에 있다. 절약하지 않음으로써 집을 망치게
하고, 청렴하지 않음으로써 지위를 잃게 되니, 경계하고
경계하라.
<열린 마음>
조화로운 인간 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문을 열기는커녕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들어 주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
벽도 없고 담장도 없다.
거기엔 아무런 시비도 없다.
갈등도 없다, 장애도 없다.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요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다.
울타리가 좁으면 들어설 자리도 좁다.
많이 쌓고 싶으면 울타리를 넓게 쳐라.
더 많이 쌓고 싶으면 아예 울타리를 허물어라.
열린 마음은 강하다.
아무것도 지킬 게 없으니 누구와도 맞설 일이 없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어라.
낮은 것이 높은 것이고 열린 마음이 강한 것이다.
손은 두 사람을 묶을 수도 있지만
서로 밀어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마음의 손에 달려 있다.
<잡지 ‘좋은 생각’ 중에서>
<마음의 정화>
보편적이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진리의 영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려면
가장 보잘것 없는 미물도 내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뜻을 품은 사람은
삶의 어떤 부분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진리에 대한 헌신이
나를 정치의 영역으로 이끈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종교가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교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러나 겸손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하나됨은 자기 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 정화 없이 비폭력의 법칙을 따른다면 그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이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선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자기 정화란 삶의 매순간 이루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기 정화는 쉽게 옮는 것이라서 틀림없이
자기 주변까지도 정화하고야 만다.
그러나 자기 정화의 길은 험하고 가파르다.
옹근 정화에 이르려는 사람은 생각이나 말,
행동을 함에 있어 정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하고,
사랑과 미움, 가까이 함과 멀리함 같은
대립되는 감정의 흐름도 넘어서야 한다.
끊임없이 몸부림쳤지만 아직도 이 세 겹(생각과 말,
행동)의 정화가
내 안에서 이뤄져 있지 않음을 나는 안다.
알아차리기 힘든 정욕을 정복하기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인도에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내 속에 숨겨진
채 잠자고 있는 정욕을 경험하곤 한다. 그것을 알아차릴
때 절망하진
않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경험과 실전이 나를 견디게
하였고 내겐 큰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앞엔 아직도 걸어가야 할 험난한 길이 있음을.
무의 상태에까지 나를 끌어내려야 한다.
사람이 자진해서 모든 피조물 중 맨 아래에 서지 않는다면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비폭력이야말로 겸손의
궁극점이다.
<존 미어 작(作) ‘내 삶이 메시지다’
중에서>
●3면 (기도하는 최에스더 선교사)
“감사할 일이 아니어도 감사하라”
유방암 치료중인 최에스더 카자흐스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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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얼굴은 어두웠다. 꺼내기 힘든 말을 전하려는 듯했다. 괜찮다고 했다. 의사는 암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제 어째야 하나. 먼저 카자흐스탄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암이래요” 남편은 기다리라고 했다. 곧 서울로 나간다고.
나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실 일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친정 언니들은 큰 일이라도 난 듯 통곡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편안했다. 자애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그냥 두시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선교사로 10년
80년 미국으로 이민 온 그들은 잘살았다. 비즈니스도 잘되고 돈도 손에 쥐었다. 너무 잘 나가서 뵈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신학을 하겠다고 했다. 최에스더 사모(53세)는 말렸다. 미국에 와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럭저럭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어렵다는 신학의 길로 들어서는 것만큼은 말리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도 믿음이 연약한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 깨달았다. 남편의 마음에 하나님께 주신 일을 받아들이기로. 그리고 이들은 88년 신학공부를 위해 한국으로 나갔다. 이때 하나님은 물질의 훈련으로 연단시켰다. “부요에 처해봤고 가난에도 처해봤고”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신 카자흐스탄 선교사(최진규 목사)로 부름받아 그곳에서 복음을 들고 섰다.
91년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의 문호가 열리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그 땅을 밟았다. 무슬림 지역인 이곳에서 처음엔 스몰핸즈엔지오(Small Hands NGO) 자선단체를 세워 컴퓨터 영어교실 운영과 긍휼사역으로 선한이웃이 되고자 했다. 이제는 알마타 지역에 70여명이 예배드리는 라큼(카작어로 긍휼, 은혜의 뜻)교회를 마련했다. 또 교회리더를 세우는 신학개혁연구원도 세웠다.
처음엔 이들의 문화를 잘 몰랐던 최에스더 사모는 큰 상처를 받았다. 눈먼 자, 말 못하는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 100여명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정찬코스를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100여명 분을 4차례에 나눠 대접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된 일이라는 것. 모든 식사대접이 끝난 후 자신을 도와준 이들이 너무 고마워 남은 음식을 싸주며 아이들과 남편이 기다릴 테니 얼른 가보라고, 남은 설거지는 내가 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이들이 그 다음부터 교회를 안나오는 거예요. 사모가 일만 시키고 우리를 보냈다 하는 거예요. 나중에 들으니 그들은 일을 다 끝낸 후에 남은 음식을 먹으며 한두 시간 수다를 떨고, 누가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아서 남은 음식도 싸고 알아서 가야 하는 거였어요.” 이 일로 최에스더 선교사는 2주간 그들 집을 찾아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돌렸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렵다.
카자흐스탄인들은 한인들과 말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현지인들은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최진규 최에스더 선교사는 카자흐어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선교사 자녀는 다 잘된다는 말 하지마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 살면서 아이들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엄마, 우리가 어떤 상황으로 (학교 책상에) 앉아있는지, 그 아이들이 나를 죽인다고 말하는지 살린다고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앉아있는 기분이 어떤지 안다고 이야기하지마. 그리고 선교사 자녀는 다 잘된다는 말도 하지마”하면서 아들이 말할 때는 눈물을 흘렸다. “니 말이 맞다. 엄마는 얼마나 답답하냐고 말하지만 정말 니 상황을 모른다. 그리고 선교사 자녀 중에 잘못된 아이들도 많다. 다 잘되는 거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지금 우리가 어렵지만 믿고 기다려보자.”
아들 상현(케빈)과 유리(크리스틴)는 이제 영어, 한국어,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현재 똑같이 UC버클리 분자생물학을 전공,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때는 감사할 일이 아니었지만 감사하는 것, 그게 믿음 같습니다.”
올해 그들은 두번째 안식년을 맞아 자녀들이 있는 알바니에서 함께 보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의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메우려고 최에스더 선교사는 요즘 한끼 한끼 식사를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
일련의 모든 일들이 감사
지난해 7월 종합검사를 받았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가슴에 뭔가 좁쌀만한 힘줄이 만져지고 엎드리면 그 부위가 배겼다. 안식년 시작은 몇 개월 더 남았지만 2006년 1월 혼자 서울로 나왔다. 마모톱 수술로 그 부위를 절제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그 수술과정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아직 임파쪽으로 번지지 않은 유방암 초기였다. 암이다. 그는 내 몸에 암세포가 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 말을 듣고도 일단 감사하기로 했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가뿐히 있기로 했다. 먼저 국적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으로 왔다. UC어바인 병원에 있는 동서와 사정을 전해들은 소셜워커의 도움으로 메디칼 보험혜택을 받고 2주만에 수술을 하게 됐다(2월). 그리고 아이들 곁에 있기 위해 다시 UCSF로 트랜스퍼해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호르몬 치료중이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진통이 없었어요. 그 독한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받고도 0.5파운드도 빠지지 않았어요. 얼굴색이 좋아 항암치료중인 환자라고 하면 다들 놀랐어요. 이 모든 일을 순조롭게 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또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준 후원교회와 동역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회복될 수도 없었겠죠.”
암환우들이 마음문 열기를
그는 본보를 통해 EB지역 암환우 동우회 모임이 창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6월부터 그 모임에 참석했다. “아픔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서로 이야기가 통하고 격려가 되고 위로가 돼요. 그러나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한 암환우들이 많아요.” 그는 한달에 두번 모이는 EB지역 암환우 동우회에 나가 합창연습(지휘 피터 김)도 하고 의사(아시안 헬스 서비스의 캠블리 챙)에게 질문하는 시간도 갖는다. “아픈 게 자랑은 아니지만 창피할 일도 아니에요.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를 따라 몇번 같이 온 그의 딸 유리는 EB암환우 동우회 자원봉사자(통역, 피아노 반주 등)로 일할 마음이다.
말씀 바탕된 기도를 드려야
좋은 일, 나쁜 일, 슬픈 일, 기쁜 일 모두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지만 말씀이 없는 기도는 방향을 잃기 쉽다. 최에스더 선교사는 CT(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책자로 큐티를 한다. “생명의 삶과 다른 점은 매일매일 그 땅과 그 민족을 위해 큐티할 수 있는 글이 소개된다”는 것. “말씀이 마음과 머리에 있어야 감사생활도 자연스레 이뤄지고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 쫓는 능력을 주셔 첫번째는 제자들이 능력을 보이지만 두번째는 실패합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저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믿음은 말씀을 가까이 해야 나타납니다.”
그는 4월이면 안식년을 끝내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다. 그의 새해 소망은 “라큼교회가 주 안에서 든든히 서가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갈 준비를 잘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암 치료 때문에 늦춰진 아들의 의대 진학이 순조로게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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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청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지닐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정도 또한 극히 적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비로소 봉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에 속해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어린이들 역시 기도하기를 배워야 하고
그들은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고요함, 눈의 고요함,
입술의 고요함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되고
이 기도는 마음의 침묵에서 탄생됩니다.
홀로 있든지 함께 있든지
침묵 안에서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그 침묵 안에서
우리는 바쁜 활동에 필요한 영적인 힘을 모습니다.
바로 그 침묵 안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들이닥친 크고 작은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대처할 힘을 얻습니다.
-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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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에스더 선교사가 추천하는 믿음의 사람/피터 김 지휘자
안식년을 맞아 이곳에 온 최에스더 선교사가 만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EB암환우 동우회 합창단을 지휘하는 피터 김 지휘자를 보면 믿음의 사람이란 확신이 든다. 그는 성가찬양을 사모한다. 간혹 연습중 안산시립합창단(피터김 지휘자가 성가찬양으로 제일이라고 손꼽는 곳) 이야길 많이 꺼내기는 하지만 그는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가대에 서지 못했던 꿈을 이루고 있다. 늘 (찬양을) 못한다고 교회 주방으로 피했는데 피터 김 지휘자 앞에서 찬양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세워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또 그가 찬양에 들어가기 전 웃음 짓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는 EB노인회 합창단 지휘도 맡고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받는 사랑도 끔찍하다. 그는 어딜 가나 분위기를 환하게 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솔직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찬양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 찬양을 함께 부르는 것이 기쁜 사람이다.
●4면 (성호를 긋는 임흥순 요셉 형제)
일상에 하느님 함께 할 때, 마음의 평화 찾아와”
천주교 산호세한국성당 임흥순 요셉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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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산호세한국성당(주임신부 양형권 바오로)의 교우 임흥순 요셉(47,
사진)씨는 덴버 소재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화학 박사과정을 밟은 후 본국으로 귀환, 한국표준연구소 연구원으로 8년간 근무하다 98년 다시 도미, 현재
서니베일 소재 계측기기 개발업체 ‘스탠포드 리서치 시스템즈’에 수석 디자인 엔지니어로 재직 중이다. 최근 물러난 ‘장애우의 벗’ 회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아내 강명녀 요안나 자매와의 사이에 조나단(21), 데이빗(16) 두 형제를 둔 가장이기도 하다. 희망찬 새해를 맞아 그의 믿음생활을 살짝 들여다 보는 가운데, 믿음과 ‘마음의 평안’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한번 알아보았다.
◆ 믿음에 이르는 길에는 저마다의 계단이 있다
임흥순 씨가 요셉이라는 세례명(천주교에서는 이를 본명이라 한다)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시절 아버지의 권유를 통해서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때가 되면 친구들을 따라 개신교 교회를 찾곤 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유독 가톨릭 성당의 미사의식과 전례가 장엄한 면들에 오히려 마음이 끌리며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교 시절에는 입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대학교 때는 이래저래
바쁘답시고 이렇다 할 신앙생활을 영위할 기회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종교와 믿음에 대해 1차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사건은 군복무 시절, 한 군종사병과의 만남이었다. 다들 힘들어하는 군대 생활에서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 천주교 군종 사병은 임 씨에게 믿음에 대한 형태와 생활 속
가톨릭인으로서의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군 시절의 체험이 믿음의 형식과 틀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는
과정이었다면, 2차적 변화가 온 부분은 바로 생활인으로서의 종교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는 종교라는 또한 신앙이라는 틀에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실제로 고민하게 됐다고나 할까.
이러한 계기를 가져다 준 이는 콜로라도 주립대학 연구원 시절, 같은
실험실에 와있던 슬로바키아 출신의 가톨릭 신자 여학생이었다. 단순히 교회 안에서 미사나 기도를 드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과 자신의 믿음을 모든 일상 생활에 적용하는 그녀의 생활 양식은 믿음 생활이란 그저 일요일에 성당에 가 미사를 드리는 것 정도로만 여겨왔던 임 씨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별 생각 없이 ‘생활과 종교’, ‘일상과 믿음’을 분리 사고하던 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되었던 것이다.
◆ 작은 일상일지라도 하느님 말씀의 실천 필요성 깨달아
이 여학생은 십계명을 그저 외우는 대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목숨과 같이 지키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는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주일을 지키는 것 등으로, 신자라 할지라도 보통 일요일에 다른 행사나 용건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미사에 빠지는 일이 많은데, 이 여학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 미사만은 꼭 참석하려 노력했다. 그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본의가 아닐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남을 속이는 행위를 안하려는 그녀의 생활 행태였다. 한번은 미국생활에 익숙치 않은 그녀가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일을 도와주는데 1.50달러 하는 빵이 나중에 보니 종업원의 실수로 1.25달러로 잘못 계산된 것을 알고는 다시 돌아가 카운터에 얘기하고 돈을 돌려주는 광경을 보고 처음에는 오히려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 원칙적이고 융통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마이크로웨이브를 50% 세일 기간에 구입하는 과정에서 이 역시
시스템적인 문제였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50% 세일된 가격에서 다시 50%가 더 할인된 훨씬 싼 가격에 구입한 것을 알게 된 그녀가 매장으로 다시 찾아가 자수를 한 것은 자명한 일. 임 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매장을 다시 찾아가 매니저에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매니저는 돈을 돌려받기 보다 이러한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더라는 것.
이 즈음 임 씨가 점심시간에 들린 식당에서 전화연락이 왔다. 계산착오로
인해 실제 임 씨가 먹은 것보다 계산을 더 많이 했으니, 와서 더 지불했던
돈을 찾아가라는 연락이었다.
이때부터 임 씨의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슬로바키아
출신 여학생도, 그 식당의 사람들도 전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저 ‘유별난 사람’쯤으로
여겨졌는데, 알고 보면 그리고 조금만 더 눈을 돌리면 세상에는 이런 착하고 정직하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 속에서도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많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과 체험들을 통해 임 씨는 “이러한 사람들처럼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내 잘못이 아니라며 작은 일들을 무심코 그때그때 넘기다 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겼을 때도 역시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은
그는 뒤늦게나마 견진 성사를 받고 일상 생활인으로서의 가톨릭 신자의 길을 걷게 된다.
◆ 일상 생활 속에서 찾은 나의 하느님
“알고 보니 살아가는 삶,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삶이 아니더라구요.”
임씨의 말은 우리가 일상 생활이 하느님의 주재 하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남과 세상에 대한 헤아림이 보이게 되며, 분란에 휩싸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다는 뜻이다. 그는 또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가 결국은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남과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나 자신 또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해치는 일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 2004년 실리콘밸리로 이주하며 찾아간 산호세한국성당이 처음에는 그저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이는 ‘들고 남’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인 천주교의 특성에 연유하는데, 이후 홈리스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성당내 봉사단체 빈첸시오회에 들어가게 되면서, 비로소 ‘내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후 자폐증을 앓고 있는 둘째 아들 데이빗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음식을 거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자 수요일 저녁마다 성당에서 열리는
성령기도회를 함께 찾았으며, 성령기도회의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데이빗은 물론, 그도 평안한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됐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이일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 이민 생활에서 그는 앞으로도 가족과 이웃, 그리고 일상을 사랑하는 일이 곧 하느님의 뜻임을 믿고 현재와 같은 믿음생활을 이어갈 생각이다.
<김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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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요셉 형제가 말하는
’믿음을 실천하는 교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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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씨는 일상 속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교우로 우선 성령기도회의 이재섭 니콜라스 형제를 꼽았다. 임 씨가 본 니콜라스 형제는 ‘생활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의미를 투명하게 잘 찾는 분’이다.
이러한 그이기에 생활 자체가 모범적인 것은 물론, 성경에 담긴 하느님의
뜻과 성령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쉽게 풀이해 설명해 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지난 77년 설립돼 올해로 30주년을 맞게 된 산호세 한국성당의 초창기 시절 많은 기여를 했었다고 한다.
임 씨는 존경할 만한 주변의 신앙인으로 또한 빈첸시오회의 김임직 빅토리아 자매를 꼽았다. 빅토리아 자매는 홈리스 대상의 식사제공 봉사 등을 펼치는 성당내 봉사단체 빈첸시오회의 봉사활동에 앞서 언제나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며 ‘봉사를 단순히 내가 하는 일이 아닌 하느님이 맡겨준 일을 대신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분’이라 설명했다.
임 씨는 또 “신부님이라 오히려 꼽기가 좀 그렇지만”이라며 마지막으로
양형권 바오로 신부에 대한 존경을 나타냈다. “양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보면 매 시기시기마다 종교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현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가 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며 “성경의 원론적 해석보다 이러한 강론이야말로 생활 속에 마음의 평안을 찾고 사랑을 실천해 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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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바치는 기도
시작이요 마침이신 주 예수님,
지난 한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저희가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하시고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새해에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맡은 책임을 다하여
가정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께 바치오니
하느님이 영광과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5면 지혜심 보살
내가 뭘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일 하다보면 살다보면 속상하는 일 많아도
그런 걸 이겨나가는 게 공부라는 생각이…
아, 기도라는 게 이게 내 생활을 이렇게 만들어주는 것이구나…
서니베일 정원사 이혜숙(법명 지혜심) 보살
절(사찰)은 절(예불)하는 곳. 엄마손에 이끌려 졸랑졸랑 절에 따라다녔던 소녀 이혜숙에게 기도는 절박할 것도 간절할 것도 없었다. 엄마 따라 아빠 따라 생각 없이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도 하니까 해야 되나보다 따라 했다.
부모, 특히 어머니의 불심은 깊었다. 어느 스님에게 (딸이) 절에 좀 갔으면(스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 스님은 나직이 대답했다. 보살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연이 있어야 옵니다. 만일 그 스님이 덜컥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였다면 소녀 이혜숙은 필경 비구니 스님이 됐을 터였다.
때가 되면 절에 다녀오고, 절 몇번 다녀오면 시간은 뭉턱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소녀 이혜숙은 숙녀 이혜숙이 되어갔다. 언제인지 모르게 괴로운 일이 생기거나 화가 나면 자신도 모르게 서울 어느 절을 찾는 것이 차츰 버릇이 되어갔다. 그러나 아직 간절함이 덜 배인 그의 기도에 간절함이란 인이 박히도록 만든 이 역시 어머니였다. 많이 아프셨어요. 절에도 못가실 형편이었지요. 제가 대신 가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정말 간절하게.
반쯤 버릇으로 하던 그의 불자활동은 진지해지고 활발해졌다. 처음에는 절에서 피아노 쳐주고 어린이들이랑 놀아주고 노래 가르쳐주고 그러다가, 어린이캠프 일도 하게 됐고, 이계진 (한나라당)의원 사모님 등등 여러분이랑 국제장학회를 만들어서 매달 2만원씩 내 스리랑카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께 장학금을 (불교성지순례 겸) 갖다드리기도 하고…
꼬박꼬박 절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문득 스님들 법문같은 말을 하며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남편(김형광, 산업자원부 전기전자 지도위원·중소기업청 기술평가위원·한국산업정책연구회
산업분과위원·한국에너지관리공단 기술평가위원·보건복지부 평가위원 등 역임, 국가산업
발전공로상·우수전자부품개발공로상·과학기술대상 은상 등 수상)의 외조는 주부교사 이혜숙 씨의 걸림없는 불자생활에 큰 은총이었다.
나를 위해 내 식구를 위해 시작한 기도
이제 그 울타리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 처사님(이 씨는 남편을 그렇게 불렀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이해를 안해주면 어렵잖아요.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한 4박5일 묵언수행 수련회에 갈 때도 처사님이 ‘애들한테 매여 살면 언제든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면서 ‘애들은 다 (내가)
케어할테니까 갔다오라’고 그러시더라고요…수련회에는 시계 셀폰 이런 거 다 반납하고 바깥세상이나 이런 거 다 끊고 옷만 입고 들어가서 아무말 안하고 참선하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처음에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나흘쯤 되니까 ‘여태 내가 뭘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게 생각이 되더라고, 일 하다보면 살다보면 속 상하는 일 많죠, 사람들 생각이란 게 다 똑같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걸 이겨나가는 게 공부라는 생각도 들고, 아, 기도라는 게 이게 내 생활을 이렇게 만들어주는(바꾸어주는) 것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편찮으신 어머니 나으라고, 공직자 남편 잘되라고, 어린 두 딸 공부 잘하고 탈없이 크라고, 힘들고 속상한 내 고민 풀어달라고…눈이 더 크게 뜨인 이씨의 기도는 이런 ‘내 집안 울타리’를 넘어 점점 더 밖으로 향했다, 99년 말 이민을 온 뒤로도.
저도 아직 엉터리지만, 이제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요. 저희 절(서니베일 정원사, 주지 지연 스님)이 지장도량(지장보살을 모신 사찰)이잖아요. 그래서 되도록 구제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게 돼요. 하다보면 폭이 좀 넒어지고 나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올해 6월 카멜 삼보사에서 열린 제1회 북가주 청소년불자 템플스테이, 지난달 3일 KTVN 문화센터에서 열린 제1회 북가주 승가회 송년 연합법회 등 올해 북가주 한인 불교마을 대소사에서 큰몫을 담당했던 그는 그런 일을 함께하면서 수고한 사람들을 줄줄이 헤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삼보사에 계시는 분들, 이것저것 준비하시느라고 정말 고생 많으셨지요. 대승사 보살님들, 우리 정원사 보살님들, 젊은 엄마들, 밥 짓고 반찬 준비하고 정말 애썼어요. (SF여래사) 신진휴 회장님, 진짜 너무 진짜 마음을 열어놓고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이윤우 회장님, 김정현 회장님, 부회장님, 준비위원님들, 그리고 KAYBA(젊은불자연합회) 회원들도 수고 많았지요.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그날 행사에 오신 모든 분들이 한분한분 다 고맙지요. (행사 전에는) 자리가 비워지면 어떡하나 조바심을 냈는데 그렇게들 많이(예상의 2배 가까운 400여명) 오시고 자리 좁고 부족한 것 많은데 불평도 안하시고 그러니 일이 잘된 거지요. 그리고 또…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 마음
…마음은 환상과 같아 허망한 분별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마음은 왕과 같아 모든 것을 통솔한다. 마음은 원수와 같아 온갖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마음은 모래로 쌓아올린 집과 같다.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은 쉬파리와 같아 더러운 것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은 낚싯바늘과 같아 괴로움인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마음은 적과 같아 항상 약점을 기뻐하며 노리고 있다. 마음은 존경에 의해서 혹은 분노에
의해서 흔들리면서 교만해지거나 비굴해진다. 마음은 도둑과 같아 모든 선근(善根)을 훔쳐간다. 마음은 불에 뛰어든 부나비처럼 아름다운 빛깔을 좋아한다. 마음은 싸움터의 북처럼 소리를 좋아한다. 마음은 썩은 시체의 냄새를 탐하는 맷돼지처럼 타락의 냄새를 좋아한다. 마음은 음식을 보고 침을 흘리는 종처럼 맛을 좋아한다. 마음은 기름접시에 달라붙은 파리처럼 감촉을 좋아한다.
이와 같이 남김없이 관찰해도 마음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즉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얻을 수 없는 그것은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없는 것은 삼세를 초월해 있다. 삼세를 초월한 것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은 생기는 일(生)이 없다. 생기는 일이 없는 것에는…사라지는 일이 없고…사라지는 일이 없는 것에는 지나가버리는 일이 없다. 거기에는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다. 가고 오고 죽고 나는 일도 없고 태어나는 일도 없다. 가고 죽고 나는 일이 없는 것에는 어떠한 인과(因果)의 생성도 없다. 인과의 생성이 없는 것은 변화와 작위(作爲)가 없는 무위(無爲)다. 그것은 성인들이 지니고 있는 타고난 본성인 것이다. 그 본성이 허공의
어디에 있건 평등하듯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타고난 본성은 모든 존재가 마침내는 하나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 본성은 몸이라든가 마음이라는 차별에서 아주 떠나 있으므로 한적하여 열반의 길로 향해 있다. 그 본성은 어떠한 번뇌로도 더럽힐 수 없으므로 무구(無垢)하다. 그 본성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집착, 자기 것이라는 집착이 없어졌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다…그 본성은 본질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없어지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영원(永遠)하다. 그 본성은 가장 수승한 열반이므로 즐거움이다. 그 본성은 온갖 더러움이 제거되었으므로 맑은 것이다. 그 본성은 찾아보아도 자아가 있지 않기 때문에 무아(無我)다. 그 본성은 절대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진리를 구할 것으로 밖으로 흩어져서는 안된다…이와 같이 마음을 거두어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보적경 가섭품(寶積經 迦葉品)>
@@ 참회
살생중죄 금일참회(산 목숨 죽인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투도중죄 금일참회(남의 것 훔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사음중죄 금일참회(삿된 음행 범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망어중죄 금일참회(거짓말 행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기어중죄 금일참회(꾸밈말 행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양설중죄 금일참회(이간질 행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악구중죄 금일참회(나쁜 욕설 행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탐애중죄 금일참회(욕심부린 중한 죄 이제 참회하옵니다)
진애중죄 금일참회(성질부린 나쁜 버릇 이제
참회하옵니다)
치암중죄 금일참회(어리석은 생각들 이제 참회하옵니다)
<천수경(千手經)>
●7면
<시>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김광섭 - <문장>(1939)
<마음수련>
“창문처럼 마음도 닦아야 참된 세상 보여”
목사님, 신부님, 스님도 찾는 초교파적 마음닦기운동 ‘마음수련’
산호세 마음수련원 서시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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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우리는 대부분 ‘마음을 비운다’는 개념에 대해 이러한 견해를 밝히곤
한다. 혹자는 그건 그저 선사의 고승들이나 참선을 하며 할 일이지, 현실이란 짐을 지고 살아가는 대중들이 할 수 있는 한가로운 일은 아니라며 냉소를 보낼지도 모른다.
반면 본국에서 탄생해 최근 본국과 해외 각지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마음수련’은 소위 ‘마음 비우기’ 수련을 통해 누구나 생활 속에서도 마음을 닦아 ‘마음의 평안’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주지역만 해도 산호세, 새크라멘토, LA, 시애틀 등지를 비롯해 16개
지역에 마음수련원이설립돼 있는데, 산타클라라에 소재한 ‘산호세
마음수련원’을 설립한 서시현 원장(34, 사진)의 경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며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방학 때 한국에 들렀다가 하버드대 박사 출신의 권기헌 교수(경희대 사회과학부)가 집필한 <가야산으로의 7일간의 초대>라는 마음수련 관련 책자를 읽고 마음수련원을 찾아가 수련을 한 결과, 전에 없던 깨달음을 얻어 이후 강사 교육까지 마친 뒤 프랑스 파리 마음수련원과 필라델피아, 휴스톤 등지를 거쳐 지난 2004년 산호세 마음수련원을 설립했다.
서 원장은 “예전에는 저도 세상을 많이 둘러보고 견문이 넓히게 되면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진리는 마음수련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 놓아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마음수련에서는 일종의 영상 또는 사진의 형태로 각자의 마음 속에 담고
있는 허상들이 바로 번뇌의 근본이라 보고 있어 이를 하나하나 버리는 수련을 하게 된다. 서 원장은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 조차도 그림으로
만들어진 허상이며 이러한 허무한 생각으로 저마다 가짜의 마음 세계를 이미 만들어놨기 때문에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라면서 “마음의 밑바닥 찌꺼기까지 떠올려 이를 버림으로써 마음의 참된 본성을 되찾게 될 때,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똑같은 방법은 아닐지라도 이와 유사한 방법들은 동서고금의 선지자들에
의해 꾸준히 설파돼 왔다. 가까운 일례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선물>의 저자 스펜서 존슨 씨는 그의 저서 <선물>에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특히 ‘과거’에 대해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라. 그리하여 과거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워라.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고 더 즐겁게 현재를 살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음수련은 이처럼 특정 종교와는 관련없는 초교파적 운동이기에 본국의 경우, 목사님, 신부님, 스님 등도 마음수련원을 찾아 함께 수련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 원장은 또한 “마음수련을 통해 마음을 버리는 작업을 계속 하다 보면
‘내 탓이다’라는 참회의 마음이 들게 된다”고 한다. 이는 바로 “헛된
마음을 버려 더 넓은 마음으로 보면 상대방이 고치거나 변화해야 되는 것보다 바로 나 자신이 바뀌고 고쳐야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가 지난 날을 참회하는 가운데 현재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상대방이 바뀌는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바뀌고자 노력한다면, 참되고 밝은 세상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새해에는 저마다 마음 한번 닦아보는 것은 어떨는지.
산호세 마음수련원(3216 Humbolt Ave. Santa Clara)에서는 무료 상담 및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문의 전화(408) 615-0435.
<김철민 기자>
andykim@koreatimes.com
<편집자의 편지>
마음 다스리기. ‘한국일보 신년특집 행복을 향한 새출발 첫째마당’의 주제를 그렇게 정해놓고 참 막막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고 수없이 듣고 읽고 보고 한없이 말하면서도, 정작 마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까닭에, 마음 다스리기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겸연쩍은 노릇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묶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도 몇아름이었습니다. 정해진 여섯번째 지면을 거의 다 채워가는 지금도, 그 궁금증은 짙어졌다 엷어졌다 무거워졌다 가벼워졌다 너울너울 맴돕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길 역시 넓어졌다 좁아졌다 가까워졌다 아련해졌다 가물가물 춤춥니다.
그러나 매년 이맘때면 돈벌이다 교육이다 한미관계다 국제정세다 요란하게 지면을 장식하곤 했던 상투적 주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습니다. 새해 새아침 새출발을 시작하는 분들께 올해만은 그런 닳고닳은 단골메뉴를 안겨드리지 않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세 묶음 신년특집 첫째마당에 ‘마음 다스리기’를 올려놓고 여기까지 끌어오는 동안, 놀랍고 즐거운 경험도 쏠쏠했습니다. 우리 북가주 한인사회에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잘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그 첫째였습니다. 한결같이 진지한 그분들의 자세는 거룩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사실은 티끌투성이 주제에서 한번쯤 한발쯤 벗어나자는 이 특집의 기획의도에 용기라는 기름을 듬뿍 부어주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비록 가지런히 다듬고 반질반질 마름질해낼 자신감은 애초부터 희미했고 그 결과물 또한 여러모로 미흡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길 또한 숱한 갈래였습니다. 마음에 파도가 칠 때면 파도치는 바닷가 찬바람을 쐰다는 분, 산에 오른다는 분,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상잡사를 잊는다는 분, 실컷 노래를 부른다는 분, 샌드백을 흠씬 두들긴다는 분, 누군가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거신다는 분, 심지어 술 잔을 기울이며 시름과 씨름하신다는 분들까지….
그런데 매주 목요일 나오는 종교섹션과의 가르마가 다소 모호해지겠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 갈래 종교 신행자 세 분을 앞세워 그분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은 까닭은, 아무래도 종교적 신행생활이 우리네 보통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마음 다스리기 방법이 아닐까 하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또한 물질문명의 발달로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양식은 나날이 간편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파고드는 ‘행복이란 단어에 붙은 물음표’는 줄어들지 않는 (듯한) 요즘, 종교의 순기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게 아닌가 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군에 속하는 방글라데시나 네팔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최강 미국인들의 행복지수보다 훨씬 높았다는 어느 국제기구의 거듭된 조사결과를 되풀이하지 않더라도,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달 자체가 인간세계의 목마른 행복갈증을 해소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 즉 행복은 재산순이나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명백한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남과의 세속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서가기 위해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자신의 심신이 황폐해지는 것도 모르고 마구 치달리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 아닙니까.
따라서 거룩한 성현들 말씀으로, 평범한 이웃들의 종교적 체험사례로, 평정을 찾는 수련자의 언어로, 고요한 시인의 시어로 알아보고자 하고 가리키고자 한 이 ‘마음 다스리기’ 섹션을 읽으시면서 - 나아가 읽으신 한참 뒤 어느 때라도 - 마음 다스리기가 행복 만들기의 중요한 열쇠라는 점에 동의하고 마음 다스리기를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 한분이라도 늘어난다면, 이 섹션은 ‘행복한 메아리’를 들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메아리가 우리 한인사회에 보다 자주 보다 널리 울려퍼지기를 소망하면서 새해 새아침 특집 행복을 향한 새출발-첫째마당을 접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1월1일
정태수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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