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펄이 바이얼리니스트인 줄은 몰랐다. LA 인근 엔시노서 자란 다니엘은 지난 2002년 파키스탄에서 극렬 회교도들에게 납치돼 참수당한 월스트릿 저널 기자다. 38세였다(본보 2일자 ‘위크엔드’판 ‘엔터테인먼트’면 참조).
LA타임스에서 LA 매스터 코랄의 다니엘 펄 추모 연주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지난 28일 저녁 디즈니 콘서트홀에 갔다. 다니엘은 글을 읽기 전 악보를 읽을 줄 알았고 클래시칼 훈련을 받았는데 블루스와 재즈도 사랑했다고 한다.
이날 서부지역에서 초연된 ‘다니엘 변주곡’은 현존하는 미 최고의 미니말리스트인 스티브 라이크(70)의 작품이다. 미니말리스트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반복음인데 이날 먼저 연주된 라이크의 리드미컬하고 공명하며 또 강렬한 ‘당신은(You Are) 변주곡’의 집요한 반복음이 내 감관과 가슴을 사로잡았다. 역시 미니말리스트인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생각났다.
다니엘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그의 삶에 대한 열정을 찬양한 ‘다니엘 변주곡’은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됐다. 각 악장은 짧은 텍스트가 포함되는데 제1악장과 제3악장은 구약 다니엘서에 나오는 문구가 담겨 있고 제2악장과 제4악장은 생전 다니엘이 한 말이다.
제1악장에서는 바빌론의 전제군주 네부카드네자르가 다니엘에게 자신의 악몽을 얘기하며 해석을 부탁한다.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릿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바빌론이 현 이라크 이어서 이 꿈은 처형된 독재자 후세인의 두려움의 상징으로 여길 수도 있다.
제2악장에서는 다니엘이 처형되기 전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내 이름은 다니엘 펄입니다”라고 한 말이 나오는데 합창이 이 말을 계속 반복했다.
제3악장은 다니엘이 왕에게 “그 꿈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말이다. 마지막 악장은 “세상의 날이 끝날 때 가브리엘이 내 음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다니엘의 말로 이는 다니엘이 수집한 옛 재즈앨범에서 따온 말이다.
‘다니엘 변주곡’ 연주는 그랜트 거숀 LA매스터 코랄 상임지휘자의 간명한 지휘로 30분간을 물 흐르듯 흘러갔다. 12명의 합창과 현악 4중주와 2개의 클라리넷과 2개의 타악기 그리고 4개의 피아노와 4개의 바이브라폰으로 구성된 간단한 보컬과 관현악단이 연주를 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피아노와 바이브라폰의 계속되는 반복음과 제1 바이얼린의 연주. 바이얼린은 비명을 지르다시피 몸부림을 쳤는데 다니엘의 참담한 심정과 관용을 호소하는 절규로 들렸다.
‘다니엘 변주곡’은 잠시도 마음이 한 눈을 팔지 못하도록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격정적이요 멜로디가 아름다웠는데 처절하면서도 가냘팠다. 그리고 음악은 고통과 어두움 끝에 희열과 영혼의 승화로 급격히 끝났다. 라이크의 음악은 매우 절약적이면서도 정열을 지녔는데 미니말리스트의 불협화음이 정연한 음들과 충돌하며 극적 효과를 자아냈다.
다니엘은 유대인이어서 성경 속 다니엘을 생각나게 만든다. 그가 취재를 위해 위험한 파키스탄에 간 것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간 것처럼 여겨진다. 성경의 다니엘은 하나님의 보호로 살아났지만 이 폭력적이요 무자비한 현세의 다니엘은 불관용과 증오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순교와도 같은 순직이라고 하겠다.
기자의 전장 취재를 다룬 영화로 언뜻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 ‘G.I. 조의 이야기’(The Story of G.I. Joe·1946)와 ‘모정’(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1955)이다. 로버트 미첨이 처음으로 드러매틱한 역을 맡아 호연 하는 ‘G.I. 조’는 2차대전 때 유럽전선에 종군한 미국기자 어니 파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좋은 영화다. 어니로는 ‘록키’에서 록키의 권투코치로 나온 고 버제스 머레디스가 나왔었다.
‘모정’은 남성 4인조 보컬그룹 포 에이시즈가 부른 동명 영어 노래로 유명한 비극적 로맨틱 드라마다. 한국전 때 홍콩 주재 기자(윌리엄 홀든)와 혼혈녀 의사(제니퍼 존스)의 아름답고 애절한 러브 스토리인데 홀든은 한국전에 종군했다가 사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날 연주가 끝나자 모자를 쓴 라이크가 무대 위에 올라 거숀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34달러 주고 무대뒤 코 피 나는 자리에서 들었지만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밤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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