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한인 이흥노의 북한 방문기 ?
▶ 이흥노(전 한국외국어대 노어과 강사, 우즈벡 공화국 정부 고문)
“선군정치가 있는 한…”
캐나다 교포 양씨(해군 중령 출신)는 친 여동생을 만나러 몇 번째 왔다한다. 조카들은 신의주에 살고 있지만 다들 특별휴가를 받아 평양엘 왔다.
그가 들은 이야기도 우리가 들은 바와 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공통된 말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기본 식량문제는 해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모든 불행이 미국 때문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4촌들에게 정부를 비판하거나 저항, 시위 같은 것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가, 라고 물었더니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용납되지도 않는다”며 단숨에 말해버렸다.
어느날, 방 청소를 하는 두 여성을 마주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국제 손님들을 상대하는데 우리 동포들을 봉사하기가 제일 쉽고 편안하다고 했다. 40대 후반의 아주머니에게 앞으로 더 밝은 희망이 있을 것인가, 라고 물으니 “선군정치가 있는 한 혁명의 승리는 필연적임을 확신한다”면서 매우 낙관적 견해를 말했다.
호텔에서 많은 외국인을 상대해야 하니 말솜씨 훈련을 단단히 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친절하고 도움을 주지 못해 애쓰는 것을 보고 때묻지 않은 인간 본연의 사람들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칠골교회의 예배
봉수교회가 3층으로 확장공사를 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규모가 작은 칠골교회로 갔다. 칠골교회(장성 담임 목사)는 약 150-200석 규모의 작은 교회였으나 특별히 오늘은 만원이었다. 내 앞에는 인도네시아 대사 가족이 자리 잡았고 재미동포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이 많아서인지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서 설교를 하는데 영어 발음에 액센트가 없었다. 찬양대는 약 30명됐는데 남녀 비율은 비슷했으나 연령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이 대부분이었다. 재미 여성 성악가들도 찬양대 제복을 입고 합류해 있었다. 여성대원들은 입술과 얼굴에 엷은 화장들을 했고 머리형은 각양각색이었다.
교인들 중에 젊은 층은 별로 없었고 노인들도 별로 없는 게 특색이었다. 교인들 중 가짜가 있지나 않나 생각돼 알아내고자 별 궁리를 다했으나 신통한 방법은 없었다. 결국 찬송가에서 찾기로 했다. 많은 교인들이 찬송가를 펴놓기는 했으나 보지 않고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을 보고 교회에 가짜로 나오는 사람들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장성 목사의 설교는 ‘신앙의 바른 자세’라는 제목이었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기도 자세가 본보기라 했는데 마지막에는 민족화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인도 따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 박용길 장로, 그리고 홍동근 목사를 잊어서는 안된다”며 “민족의 유일한 행복과 번영의 길인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자”고 역설했다.
설교의 중요한 대목에는 교인들이 “아멘”이란 말을 합창했고 독창이나 합창 후에도 그렇게 했다. 헌금 시간에는 옛날 해방 직후 시골교회에서 쓰던 잠자리체가 헌금함으로 쓰여서 옛날 생각이 나게 했다. 이어 재미동포 성악가 이행자씨의 피나오 독주와 독창은 장내를 박수소리로 진동시켰다.
예배 후에는 남쪽에서 오셨다는 목사님이 단상에 올라가 인도적 사업(약품)을 위해 남쪽 교회 대표들과 함께 방북했다고 인사했다. 예배 후 교회 운동장에서 서울에서 온 목사님들과 재미동포들이 금세 다정다감하게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고 담소들을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공공시설에서 만난 사람들
중앙도서관 격인 인민대학습당에 들어서니 무척 어두웠다. 당장 필요한 곳이 아니면 전부 전기불이 꺼져 있었다. 난방장치도 가동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의 요청에 따라 안내원을 따라 영어 강습실에 들어섰다.
영어 선생은 20대 초반의 외국어대학 출신이라는데 미인이기도 했지만 신통하게도 영어에 액센트가 없었다. 학생들은 정규 대학생이 아니고 직장인으로 연령도 다양했다. 학생과 선생은 영어로 대화가 진행됐고 시청각 교육제도가 잘 구비돼 있었다.
안내원에 따르면 해가 갈수록 영어 수강생이 늘어나고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관리,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영어 공부에 대단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생은 30여명으로 여학생이 별로 보이질 않았는데 아마도 중급 영어반인 듯했다.
일행은 2.16 경축 해외동포 공연이 열리는 평양 음악대학으로 갔다. 이 음악대학은 최근에 완공된 것으로 기숙사를 포함한 최신식 건물에 자연 잔디를 깔아놓은 축구장까지 갖고 있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과 재미동포연합 윤길상 회장을 선두로 귀빈들이 입장하자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2시간에 걸친 음악회의 막이 오르자 재미동포 이행자 여사의 독창이 있었다.
재미동포 예술단은 5명으로 이들은 10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 맞춰 독주를 했다. 지휘는 뉴욕 출신 이준무씨(서울 음대 동창회장)가 맡았는데 지휘 솜씨가 특이해 연주자들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발광케 한다고 평가들을 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최 참사의 안내로 평양 오케스트라 악장을 따로 만났다. 중년의 미남 악장은 겸손하고 조용했다. 그 악장은 안용구 피바디 음대 교수가 보낸 값비싼 바이올린을 갖고 연주를 했다며 그 바이올린을 든 사진을 안 교수에게 전해달라며 자세를 취했다.
최 참사는 안 교수가 오래전부터 많은 악보들과 여러 종류의 악기를 조국에 보내왔다며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남이야 알아주건 말건 남몰래 민족을 사랑하고 화합에 이바지해온 안 교수에게 머리가 숙여지고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2월15일,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2.16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다. 회관은 내외동포들을 합해서 천여명이 넘었는데 해외에서는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그리고 중국과 구 소련에서 많이 왔다. 김영남 위원과 최태복 노동당 비서를 선두로 요인들이 입장했다. 주석단에는 60여명이 앉았는데 여자 4명과 많은 훈장을 단 장교 16명이 있었다.
김, 최 두 지도자가 연설했는데 종합하면 선군정치, 핵 보유, 인민경제의 향상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이흥노(전 한국외국어대 노어과 강사, 우즈벡 공화국 정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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