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열면 세상이 보인다’
▶ 『어느 날 사랑이』
『어느 날 사랑이』라는 책의 저자에 대한 평가는 한국 사회에서 극과 극을 달립니다.
그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입니다. 가창력이 풍부한 이 사람은 남자 가수로는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열린 음악회의 최다 출연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가수 뿐 아니라 한국의 태극기와 화투 그림으로 오래전부터 한국과 미국에서 개인 미술 전시회를 열고 있는 현직 화가이기도 합니다. 또 여러 곳에 칼럼을 연재하는 칼럼리스트이기도 한 동시에 그동안 10여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이름을 내 걸고 지금도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는 방송연예계의 거물(?)이기도 합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가 두 번에 걸친 이혼 경력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다수의 여인들과 연애를 하고 있는 혐의(?)로 인하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선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가 말 그대로 죽지만 않았을 뿐,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 당할 뻔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친 듯이 싫어합니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책은 이 사람이 살아오면서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사랑을 할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연대기 순으로 밝히고 있는 책입니다.
어느 날 사랑이, 왔다는 것인지? 갔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이 책이 저자의 여성 편력을 자랑삼아 기록해 놓은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은 자신의 사랑 경험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놓은 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여러 여인들과의 사랑 경험뿐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까지도 자신의 사랑 체험을 통하여 풀어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롭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도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자신도 그렇다고. 사랑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도 흥분하기도 합니다.
’왜 사랑이라는 표현을 이성에게만 사용해야 하는가? 남자와 남자와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가?‘. 이 말은 ‘자신은 여성보다 남성들과도 오랜 시간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남자들의 관계는 모두 우정, 의리만으로 표현되어야 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사람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랑은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사랑입니다. 황해도에서 부인을 만나 아홉 명의 자녀를 두고 평생 다른 사람에게 한 눈팔지 않고 살았던 아버지. 아홉 명의 자녀 중에 다섯 명의 자녀를 먼저 보내고 저자 나이 열한 살에 중풍으로 쓰러져 13년간 대소변을 받아 내야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 수발을 혼자 담당했던 어머니.
살아생전 어머니는 웬수로 생각해야 마땅할 남편의 묘를 찾아 갈 때마다 석양이 질 때까지 남편의 무덤을 말없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했던 그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 책은 또한 대를 이은 자식 사랑에 대한 고백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보여 주었던 사랑 표현을 저자 자신이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을 잠깐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겨우내 방 안에서 햇빛 한 점 못 쏘이시다, 여름이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에 나와 누워 계시거나 앉아 계셨다. 엄마는 아침마다 아버지를 부축해서 뜨락 한가운데 내려놓고 일터로 나가곤 했다. 아버지는 왼쪽 부위가 완전 마비였지만, 최소한 반쯤은 자력으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앉아 계실 때의 아버지는 늘 마비된 왼쪽 손을 가슴 쪽으로 올리고 힘이 딸려서인지 고개는 항상 왼쪽으로 약간 쏠린 채였다. 언어의 불편은 별로 없었다’.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가면, ‘반년 만에 자식새끼를 보시면서도 늘 말문을 열지 못하고 힘겹게 일어나 앉으면서 갑자기 얼굴만 새빨개지셨다. 나는 아버지의 핏기 없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일그러져가는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너무 좋아하셨던 거다’. ‘당신이 평생 병들어 아들을 보살피지 못했으므로 아들아 미안하다. 그러나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한 채 얼굴만 빨개졌던 것’이다.
뉴욕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던 날, 전처에게서 낳은 장성한 두 아들이 소식도 없이 찾아왔더랍니다. 그런데 큰 아이의 여자 친구가 함께 왔더라지요.
그때 저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얼굴만 빨개진 채로 말 한 마디 못한 채 기약도 없이 헤어졌답니다. 그날 밤 그는 전시회를 축하하며 건 내는 술잔을 한 잔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 마시고는 다음날 오후까지 기절하듯이 잠을 잤다고 합니다.
이유는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만 한 두 아들과 큰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었던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평생(?)을 다방면으로 남부럽지 않게 사랑을 해왔던 이 사람,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심각하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사랑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사람의 이름, 이 책 저자의 이름은? 여러분들이 무조건 좋아하거나 여러분들이 무조건 싫어할지도 모르는 조영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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