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를 감싸고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들이다. 목사와 장로들 간의 보이지 않는 세력 갈등, 성도들 간의 불화 등등 교회의 화평을 깨는 쟁점들의 근본을 따져보면 결국 재정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 헌금을 깨끗이 관리하고 집행했느냐, 사용처가 분명했느냐 하는 문제들과 직결된다. 세상살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결국 ‘경제 행위’에 귀착되듯 인간이 모여 구성된 교회라는 집단 역시 돈의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교회 성장에 큰 관건이 된다. 교회의 본래 사명과 목적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세상 기관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직체이기 때문에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경제, 경영, 회계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돼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엄격하고 명확한 원칙이 요구돼야 한다. 한걸음 더 나가 세상 물질을 영적으로 의미있게 사용했는가를 따지는 성숙한 분위기가 교회 안에 정착돼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일이다.
†약 15년 전 워싱턴 한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한인들이 많다. 뉴폿 뉴스 지역의 한 교회에서 발생했던 일이다. 어느 한 성도를 장로로 안수하면서 목사가 다른 성도들 모르게 교회 재정 일부를 필요한 경비로 쓰라고 빌려줬다. 기념품도 사는 등 행사를 치르자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그 장로 후보는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안수식은 잘 끝났지만 그 장로는 그러나 시일이 한참 지났는데도 돈을 갚을 생각을 안했다. ‘왜 안갚느냐’ ‘목사가 먼저 빌려준다고 했으니 내가 지금 꼭 돌려줘야할 이유가 있느냐’ 언쟁이 붙었고 큰 싸움으로 비화됐다. 결국 장로가 총으로 목사를 쏘고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 가난한 장로의 안수식을 돕기 위해 선한 의도로 시작된 일이 어처구니 없는 결말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너무나 많은 점들을 교회에 시사해 준다. 우선 어떻게 목사가 성도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적지 않은 교회 재정을 성도에게 꿔줄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 장로라는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도 그렇고 총격전이라는 참극으로 끝나버린 상황에선 이들이 정말 신앙인들이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문제의 발단이 예산 집행에 있어 ‘투명’하고 ‘정당’한 절차를 무시한 목사였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원칙을 무시하는 지도자가 있는 교회의 성도들이 얼마나 교회법을 준수할지는 불문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1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인 교계가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했으면서도 많은 교회의 재정관리 시스템은 구태의연의 단계를 넘어 심히 위험스런 수준에 아직도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적은 헌금을 가지고 교회 살림을 꾸리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해 남모르게 희생하는 목사와 성도들도 수없이 많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부 교회의 부정이 아니라 ‘악’을 조장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의 허점이다. 적절한 감시, 통제 구조가 부재한 상황에서 목회자와 성도는 끊임없이 유혹을 받게 된다. 또 이런 엉터리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면서 문제가 없었으니 잘하고 있다고 자위한다.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한 제보자가 “이런 교회도 있다”며 알려왔다. 성도가 80명 정도인 이 교회를 최근까지 다녔다는 이 제보자는 작년 말 감사 직분을 맡아 교회 결산을 꼼꼼히 챙겨볼 기회가 있었다. 조사해 보니 재정부에서 성도들에게 나눠준 결산 보고서에 큰 오류가 있음이 발견됐다. 결산 보고에는 32만여달러가 집행된 것으로 나와있었는데 항목을 합산해보니 실제는 27만여달러였다.
영수증이 없는 지출은 3만여 달러. 대충 이해해줄 만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반 이상은 사용처가 오리무중이었다. 즉 교회 재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돈을 함부로 사용했어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보면서도 목회자는 오래 봉사해온 재정부 관계자들을 일 잘한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이 교회는 설립 초창기부터 이런 허술한 재정 관리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고 감사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이 제보자는 “많은 교회들이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면서 “작은 교회도 그렇지만 큰 교회도 별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여년 전 북버지니아 지역의 한 교회 역시 재정 문제로 큰 분쟁에 휩싸였었다. 그 교회 집사는 돈을 횡령한 혐의로 2년간 징역을 살아야 했고 한 장로는 노회 예산을 전용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다. 이 교회 안에서 수습이 안돼 노회에서 전권위원회를 구성하며 한동안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한 이 교회는 성도들 일부가 떨어져 나가 따로 교회를 세우며 겨우 사태를 겉으로나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지난 기사에서 인용됐던 A교회의 상황은 안수집사회가 교회 내에서 일고 있는 재정 의혹들과 관련해 건의서를 공식 제출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새로운 형국을 맞고 있다. ‘재정상태 진상규명 위원회(가칭)’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이 건의서에는 이미 보도된 것들 외에도 수양관 구입 과정에서의 불분명한 2만5,000달러 사용 내역, 한국에서 매년 보내졌던 것으로 알려진 선교 후원금의 사용처, 잠적 의혹이 있는 북한 선교 기금 사용처 등에 대해서도 교회가 설명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안수집사들이 1)공동회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참석자들의 질문에 성의있는 답변과 해명이 있도록 할 것 2)교회의 주요 문제점들을 제기한 당사자와 당회, 안수집사회가 모두 참석한 오픈 포럼으로 공식 설명회를 가질 것 3) 안수집사들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할 것 등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 의혹을 제기한 이 교회의 김 모 집사도 “예배 시간 사이에 30-40분 정도 열리는 공동회의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명을 듣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회의 한 장로는 “누구든 교회에 와서 재정부 서류를 들춰보면 된다”고 반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외부인이 얼마나 자세히 교회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회가 클수록 조직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의 해석은 간단하다. “수입 지출은 물론 건물 등 모든 교회 재산 내역이 빠짐없이 성도들에게 보고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 회계사는 “소위 성도들이 모르는 지출이나 이자 증식등 재산 증감과 관련해 부정이 일어날 소지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교회 스스로 자정권을 갖추어 놓고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재정을 집행하려는 의지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회는 헌금을 바르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하며 교인이 원하면 자세히 밝혀야할 의무가 있고 교회 구성원들 역시 교회가 재정을 바르게 집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감시해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뉴욕 소명장로교회 반선용 목사-뉴스앤조이 기사 중에서)
교회는 목회자나 일부 재직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 아니다. 성도들만이 주인이라는 것도 아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성도는 제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인 청지기들일 뿐이다. 내가 교회를 지킨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원칙에 따르면 된다.
개혁이란 과정이다. 서로 견제하고 질책하고, 격려하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며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신앙이란 성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회 재정 관리는 ‘진리’를 수호해야할 크리스천들이 통과해야하는 마지막 관문인지 모른다.
예수님은 “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셨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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