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완화 지속..재정확대
(서울=연합뉴스) 정책.금융팀 =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최근의 국제적 금융위기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또 그 해법으로 과감한 유동성 공급과 감세.재정확대 등 정부의 역할, 국제무대에서의 공조 등을 제시하면서 그 필요성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와 은행채 매입방침 등을 밝히면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걸맞은 대책을 내놓고 시중은행들도 속속 예금금리를 낮춰 시장의 위기심리를 잠재우는 방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 외환위기 없다..극복 가능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며 우리가 구제금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내 외환보유액이 위기극복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충분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의 건전성이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해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4분기부터 경상수지가 흑자가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같은 낙관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이날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0.75%나 인하하고 은행채 매입을 결정한 것은 대통령이 위기극복을 위해 유통성을 충분히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중에 돈이 충분히 돌도록 해 신용시장 경색을 완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은행이 보유자금을 풀 수 있도록 원화유동성 감독기준도 완화할 방침이어서 시중의 자금순환은 한층 개선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금융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몸집 부풀리기에 급급한 일부 금융권의 행태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위험 회피만을 위한 전당포식 금융관행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며 경제규모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진 금융산업을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와 금융회사 업무영역 확대, 금융 공기업 민영화 등 경쟁을 촉진하고 민간의 창의를 북돋우는 금융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위험관리와 사후감독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 감세.재정확대 지속 추진
이 대통령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강조했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가 위기극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미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26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마련했지만 적립식 장기 주식형 펀드와 장기 회사채형 펀드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기로 하는 등 추가감세안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종합부동산세가 위헌소지가 있다는 의견서를 최근 헌법재판소에 새로 제출하는가 하면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소득세 인하도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한번에 2% 포인트를 낮추는 방안도 거론된다.
재정지출을 확대, 내수를 활성화하는 대책도 진행중이다.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정부 예산안이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에 마련된 것임을 감안, 국회 심의과정에서 지출액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예산수입은 당초 올해보다 7.2% 증가한 209조2천억원, 기금수입을 포함한 총수입은 7.6% 증가한 295조원 정도로 예상했지만 이보다 1조5천억~2조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있다.
지출은 당초 273조8천억원에서 280조원 수준까지 확대할 것을 검토중이다. 이 같은 수입과 지출상의 괴리는 재정수지 적자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재정적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지만 요즘같은 비상상황에서는 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경기부양 노력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실물경제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해야한다고 권고했다.
당초 정부안은 재정적자가 GDP 대비 1% 수준이지만 국회 심의에서 예산안이 조정되면 2% 가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간접자본(SOC), IT분야 등이 경기부양 측면에서 우선 고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복지대책 지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국제공조로 신금융질서 구축 노력
이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국제 공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돼 신흥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는 금융위기를 헤쳐나가기에 ‘나라별 각개약진’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기존 체제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신 브레턴우즈’ 창설 논의에 한국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지난 22일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명확해진 상태다.
이날 시정연설에서도 이 대통령은 11월15일 워싱턴에서 긴급히 개최될 20개국 세계 금융정상회의에서 전향적 방향으로 국제공조가 이뤄지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치분야의 유엔과 더불어 경제분야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권을 상징하는 IMF 등 브레턴우즈 체제의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 불분명하다는 점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지 않도록 해야할’ 한국으로서는 신중한 행보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사르코지의 ‘신 브레턴우즈’ 체제 주장이 기본적으로 금융위기를 기화로 미국의 경제 주도권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깔고 있는 반면, 미국은 20개국 정상회의를 주최한데서 보듯 국제 공조라는 대의는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금융위기 국제공조를 강조하면서도 단순히 체제 개편 필요성을 넘어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개편을 포함해 전향적 방향으로 국제 공조가 이뤄지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밝힌 점이나 한.중.일을 비롯해 동북아의 공조체제 구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폭넓은 공조 자체를 강조한 점은 이런 맥락을 감안한 것으로 읽히고 있다.
sat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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