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통미봉남’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90년대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북한은 핵문제를 놓고 씨름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남한을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남한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줄기차게 미국과만 소통하는 ‘통미봉남’ 전략을 구사했다.
핵문제는 본질적으로 미국과의 문제라느니 한국전쟁의 당사자는 미국이기 때문에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현실적으로 미국과 북한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제네바 합의의 주역임을 내세워 합의 이행과정에서 사사건건 한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술수를 구사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김일성 사망 후 조문 파동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그 틈새를 활용하여 남한 정부를 매도함으로써 ‘남남갈등’을 촉발하기도 하였다.
결국 한미 간 이간책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한국민의 자존심과 이익을 짓밟으려 했던 것이 ‘통미봉남’의 실체였다.
당시 ‘통미봉남’의 결과 한미관계에 불필요한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었고 ‘통미봉남’의 우려 때문에 북한에 대한 보다 유화적인 자세 전환을 강권하는 국내외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은 한미 양국 간 전통적인 우호관계와 확고한 군사동맹의 틀 속에서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마침 남한에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북한에 대해 관대한 ‘햇볕정책’이 추진되면서 잠시 스쳐 지나간 미풍처럼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북한은 남한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임 정부들과 합의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합의를 계승, 실천하라고 다그쳤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있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대남 비방의 수위를 단계별로 높이더니 급기야 대북 전단 살포 등 이유를 들어 남북관계 전면 차단의 협박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 차에 미국의 부시정부가 퇴장하고 과거 클린턴 정부의 뒤를 이을 민주당 오바마 정부가 등장하게 되자 북한으로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통미봉남’ 카드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2009년 미국의 오바마 정부의 출범에 맞춰 북한은 또다시 ‘통미봉남’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북한은 3단계 북핵 폐기과정에서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요구할 것이고 핵군축의 입장에서 미국과 담판을 펼침에 있어 ‘통미봉남’은 매우 유용한 전략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전초전으로 미북 상주대표부의 설치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천명했던 북미 정상회담과 연결 지으며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통미봉남’은 현 시점에서 통할 수 없는 한물 간 전략이라고 본다. 과거 냉전시기 중국과 구소련이 사회주의 맹주로서 경쟁할 때 북한은 양국 사이를 오가며 양다리 전략, 등거리 외교를 통해 실리와 명분을 챙긴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냉전의 와중에서 초강대국간 이데올로기나 노선 및 패권경쟁의 부산물로 얻어진 것이지 북한의 등거리 외교 자체의 성과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90년대 북한이 추진했던 ‘통미봉남’은 남한 내 정치과정에서 부풀려지고 정략적으로 활용된 결과였지 사실은 실체도 성과도 별로 없던 흥행 실패작이었다.
마찬가지로 2009년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후 북핵문제의 해법은 기존의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한미관계는 보다 성숙해졌으며 새로운 국제질서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전략적 동맹의 가치를 높여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G-20 회의나 APEC 회의에서 확인한 대로 한미 양국이 북한문제에 관해 더욱 긴밀하게 협조하고 여기에 일본과 중국, 나아가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신뢰를 강화해 나간다면 북한의 ‘통미봉남’은 스스로 그 한계에 부딪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북한당국은 미련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하루속히 ‘통미봉남’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북한의 발전과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전체의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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