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불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는 지난 화요일 부인과 두 딸이 깨기도 전인 새벽 6시경 전화를 받았다. FBI 시카고 담당자로부터 온 전화로 지금 FBI 요원 두 사람이 집 밖에 있으니 아이들이 깨기 전에 조용히 체포에 응해달라는 요구였다. 처음에는 농담을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지만 간신히 조깅복장을 하고 나와 수갑이 채워져 연방 법정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나락의 순간이었다.
그의 체포에 뒤이은 피츠제럴드 일리노이 주 연방 검사장의 기자회견은 불라고예비치가 얼마나 뻔뻔스럽고 어리석은 사람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73 페이지에 달하는 고발장에 따르면 불라고예비치는 주지사에게 임명권이 있는 오바마 당선자의 연방 상원의원 공석을 “팔아서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바마 후임자들로 거명되는 상원의원 후보 6인들 가운데 다섯 번째 인물의 후견인이 그를 임명하면 불라고예비치의 3선 선거기금으로 50만 달러 내지 100만 달러를 헌금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이 주지사와 역시 체포된 그의 비서실장 사이에 오고간 것이 도청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다.
그밖에도 시카고 트리뷴 신문이 주의회에서 주지사를 탄핵해야한다고 사설을 쓰는 등 주지사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니까 신문사 사주가 시카고 컵스의 구단주이기도 해서 위글리 구장을 처분하는데 주지사의 승인이 필요한 것을 이용해서 그 사설을 쓴 논설위원을 파면시키라고 요구한 것도 도청되었다. 그리고 아동병원에 지불되어야 하는 800만 달러를 빨리 결제하는 대가로 병원 CEO에게 5만 달러를 달라고 했다니 피츠제럴드 검사장이나 FBI 담당자들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전임 지사였던 라이언(공화)이 현재 연방 감옥에 복역 중인 상태에다가 FBI가 그를 조사하기 시작한 게 5- 6년 전이라서 비밀도청 쯤은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불라고예비치와 그 부인은 어떻게 하면 돈을 긁어모을까 하면서 시정잡배의 쌍욕이 몇 마디마다 섞이는 대화들을 태연자약하게 지껄여댔다는 것이니 그 뻔뻔스러운 철면피와 강심장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일리노이 주의회, 부지사, 검찰총장 등은 물론 오바마까지도 그가 사직해야 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검찰총장은 주 대법원에 그의 주지사 임무수행을 정지시켜달라는 긴급 가처분 신청을 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자신도 시카고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적어도 1년 전부터는 불라고예비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오바마도 혹시 비서실장 람 임마뉴엘이 불라고예비치와 오바마 상원 의석 후임자 문제를 상의하는 가운데 문제가 될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을 사리고 있는 인상이다.
일리노이와 시카고 정치판은 미국 정치부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게 최근의 일이 아니다. 과거 35년 동안에 주지사 출신들 8명 중 3명이 부패 죄로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현 지사마저 유죄판결을 받게 되는 경우 그동안 주지사 중 50%가 전과자가 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1960년 케네디 대통령 당선 때 수훈갑을 세운 리처드 데일리 당시 시카고 시장은 ‘데일리 정치조직’으로 악명을 떨쳤던 사람이다.
예를 들면 죽은 자들도 투표케 하고 “일찍 투표하고 자주 하라”는 말처럼 선거에 있어서 부정투표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니 인사행정에 있어서도 조직에 충성한 사람들이 시 간부 자리들과 심지어는 판사 자리들을 차지하는 게 보통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대로 어떤 판사는 변호사에게 뇌물을 받고 그가 가져오는 사건마다 승소 판결을 안겨주다가 역시 FBI의 도청으로 증거가 잡히자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불라고예비치도 강력한 시의원이었던 장인 덕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연방 하원 예산위원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다가 역시 부정부패로 연방 감옥을 간 ‘로텐 카우스키’의 후임으로 하원의원이 되었나 했더니 주지사로 재선까지 되었던 자다. 정치와 부정부패의 함수에는 동서양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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