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여인은 3년 전 16살 먹은 딸의 조기유학을 위해 뉴욕으로 날아온 기러기 엄마다. 남편의 수입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제 형편이지만 남이 다 하는 자식의 유학을 외면할 수 없어 남편만 한국에 남겨둔 채 모녀가 뉴욕을 와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
많은 기러기 엄마들이 방문비자를 가지고 들어왔다가 몇 개월마다 한국을 내왕하지만 경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P여인은 부득이 장기적으로 딸과 함께 체류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학생비자를 받아 언어 연수학원에 등록해 놓고 학생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는 중이며 그동안 한 번도 한국에 다녀오지 못했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웃을 사귄다든가 다른 사회활동도 전혀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자기나 딸의 공부는 그리 진전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둘 다 아직 미국인과 대화 나누기도 어려운 정도의 영어 실력이다. 한국에 남아 고생하면서 둘의 생활비를 보내는 남편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앞섰고 지지부진한 딸아이의 학교성적 때문에 자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최근 딸아이는 남자 친구가 생긴 모양이어서 점점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고 금년 여름부터는 모녀간의 말다툼이 잦아지고 그 수위가 높아졌다.
딸의 태도는 아주 반항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무라는 엄마에게 반항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루는 심하게 나무라는 엄마를 폭행 및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찰에 체포된 엄마는 형사법원에서 형사범죄 혐의로 정식으로 입건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검찰이 이후 고발인인 딸을 불러 피해자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 사건 내용이 별 것 아닌 모녀간의 말다툼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어 호의적인 형량 제시를 해주어서 쉽게 재판은 끝났다. 6개월 안에 피해자인 딸아이에게 다시 괴롭히거나 폭행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조건부 기각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녀간의 대화는 더욱 어려워졌다. 엄마는 그래도 한국에서 고생하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정신을 차려줄 것을 간곡하게 타일러 보려 했으나 딸아이는 이제 오히려 엄마는 자기를 학대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반발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그래도 탈선하는 딸을 그냥 둘 수 없었던 엄마는 딸아이를 불러 공부나 열심히 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는데 딸은 엄마의 이런 당부가 학대행위라면서 느닷없이 또 경찰을 불러 고발해 버렸다.
출동한 경찰은 엄마가 법원의 피해자 보호 명령을 위반하여 또 다시 학대행위를 했다면서 체포해 버렸다. 법원에서는 법원의 명령을 위반한 혐의 때문에 이번에는 입건 당시에 500달러의 보석금을 명령하게 되었다. 이 돈을 지불해야 석방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데 지난 3년 동안 친구나 이웃을 사귄 적이 없는 이 여인은 보석금을 내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고 보석금을 내지 못해 부득이 감옥에 갇힌 채로 재판을 기다리게 되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일주일 동안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동안 이민국이 재소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민국은 학생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 여인이 최근에 두 번 연속으로 형사범죄 혐의로 체포된 것을 이유로 비자를 재심하거나 취소할 목적으로 법원에 신원인수 통고를 보내게 되었다.
이민국이 신원인수 통고를 보내면 재판이 끝나도 석방되지 못하고 이민국의 추방 청문회에 회부된다는 뜻이다. 법원에서 이 여인은 이번에는 형사범죄가 아닌 괴롭힘 혐의로 유죄 인정을 하고 딸과의 접촉 금지를 조건으로 재판은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제 이민국의 비자 심사 때문에 계속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고 어쩌면 추방에까지 이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한다고 어렵게 시작한 기러기 가족생활이 오히려 딸아이의 타락만 조장하고 모녀간의 정만 끊어놓은 계기가 되고 말았다.
박중돈
법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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