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에서 택시를 타면 모든 기사 아저씨들의 화제는 단 한 가지, 얼마나 경기가 나쁜가 하는 것이다. 손님이 없단다. 그리고는 곧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원망을 쏟아 붓는다. ‘대통령은 죽을 쑤고 국회의원들은 싸움이나 하고 도무지 어쩌려는 것인지’ 하는 한탄을 듣다 내리려면 왠지 좀 더 따스한 말투로 수고하셨다, 안녕히 가시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한 기사 아저씨는 수수께끼를 냈다. MB는 ‘사수’ 때문에 안된다는데 그 ‘사수’가 무언지 맞춰보란다. 도무지 무슨 소린지 얼얼해 하자 힌트로 ‘한승수’를 준다. 내가 ‘강만수’를 맞추고 포기하자 세번째는 ‘어청수’라며 네번째는 각료가 아니고 누구나 흔히 아는 답이니 맞추어보라고 부추겼다. 진짜로 모르겠다니 말해주는 정답은 ‘예수’였다. “오해 마십시요. 저도 교회 다닙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 ‘사수’ 중에 ‘두수’를 갈고 새로 출발해 보려는데 곧바로 용산참사가 일어나 개각이고 뭐고 온나라의 관심이 용산으로 쏠렸으니 참 그는 운마저도 되게 없어요”하며 동정인지 야유인지 불분명한 소리를 하는 기사 아저씨를 보며 나는 그저 적당히 고개만 약간 끄덕이는 외에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본 누군가는 우리 ‘이MB’는 잘하는게 하나도 없어서 그쪽 ‘오BM’을 보면 질투가 난다고도 했다. 첩첩이 쌓여 있는 난제들을 어찌 다 해결할지 쉽지만은 않겠다 싶으면서도 일단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조리있게 풀어간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오바마가 부럽다는 것이다.
어제는 혼잡한 버스 안에서 초등학교 오륙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언니 사이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언니, 사람들은 왜 뽑아줘 놓고 다들 그저 욕만 하는지 모르겠어. 자기들이 뽑은 거잖아”라고 운을 뗀 깜찍한 소녀는 이어서, “근데 나는 맘놓고 욕할수 있지. 내가 뽑아준거 아니니까”한다. 그들이 곧 버스에서 내렸기에 초등학생이 어떠한 불만이 있는 것인지 은근히 궁금했던 나의 호기심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 몇시간 후 지하철을 탔는데 광고 문구 하나가 눈에 얼른 들어왔다. 법정강제 인증마크 13개를 단일화하여 국가대표 인증마크(KC: Korea Certification)로 통합한다는 것을 알리는 포스터였다. 그동안 부처별로 다양한 인증제도가 있어 소비자는 헷갈리고 기업은 평균 3.3개의 인증을 획득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는데 이를 통합하여 하나의 국가인증체계를 만들게되면 수천억원의 경비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아, 한국 정부가 잘하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렴 국민의 칭찬을 받을 일을 하나도 못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KC마크 제도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밖으로 보이는 큼직한 일들에서 인기가 없는 행보를 계속 보인다 해도 이렇게 자그마한 부분에서 곳곳에 긍정적 변화를 이룬다면 그것들이 쌓여 점차적으로 비판의 눈길이 좀 부드러워 질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4년이나 더 남았는데 그 시간을 모두 낭비해도 좋을만큼 한국이 여유로운 형편에 놓여있지 않으므로.
개인이나 국가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게 하는 힘의 핵심은 희망에 있다. 오바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본다.
MB가 BM이 될수는 없다손쳐도 한국의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큰 희망이 아니면 자그만 희망이라도 주겠다는 자세를 확연히 보인다면 지금처럼 남녀노소 전국민으로부터 지탄받는 상황은 면할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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