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혁은 동트기 전 어둠을 뚫고 삶의 터전을 향해간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 시간에 단꿈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동혁이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 보따리를 들고 왔다. 동혁은 이곳에 오면 넥타이 매고 출근할 일 없을 것으로 알고 하루 몇 번씩 매던 것을 짐 속에 넣지 않았다.
동혁은 먼저 온 사람과 동창들을 만나보니 사업을 하라고 했다. 그중 세탁소가 무난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분야의 기술을 내가 알고 덤벼야지 그렇지 않고 시작하면 망하기 일보전이라고 했다. 동혁은 매형이 경영하는 세탁소에서 일하기로 했다. 동혁은 출근하는 날부터 다리미질 연습을 했다. 누나가 하는 것을 보니 뭐가 어렵다고 겁을 주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혁이 다리미를 잡고 보니 생각처럼 잘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 바보야. 다리미도 잡을 줄 모르나.”
이 소리를 골백번도 더 들었고, 알밤도 수 없이 맞아 가면서 동혁은 연습에 연습을 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번엔 스팀으로 다리는 머신을 하라고 했다. 가면 갈수록 더 힘들고 어려웠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옷을 다리는 데도 누나는 구박만 했다.
“이 먹통아. 이것이 다리미질 한 거야. 주름이 그냥 있잖아.”
누나의 앙칼진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당장 그만 두고 싶었다. 잘생기고 똑똑한 동생이라고 자랑했던 누나가 미국 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동혁은 섭한 마음을 묻고 일을 열심히 했다. 시간이 가면서 다리미질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다. 그러자 매형이 옷에 묻어있는 얼룩 빼는 일을 시켰다. 먼저 스팀 건을 사용하는 것을 배웠다. 화학 약품을 옷에 바르고 스팀을 너무 많이 주다보면 옷의 원색이 빠진다. 그러면 옷을 배상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동혁은 먼저 헌옷에 잉크를 묻히고, 화학약품을 바르고 얼룩제거를 했다. 그런데 같은 잉크, 음식이라도 옷의 천에 따라 약품을 달리해야 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가면서 다리미질과 얼룩제거 하는데 일가견을 갖게됐다. 누나의 입에서 ‘이 바보, 먹통아.’ 하는 소리대신 요즘은 칭찬의 말이 나왔고, 가끔 드레스를 찾아가는 손님이 동혁을 칭찬해주기도 했다.
동혁은 자신의 기술도 확인해 보고, 다른 사람이 세탁소를 경영하는 것을 알고 싶어 매형한테 이야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동혁은 새 직장으로 한달 째 출근하고 있다. 동혁이 일찍 가서 보일러 불을 올리고 옷에 묻은 얼룩을 빼고 옷을 빨고 블라우스와 드레스를 다려야 한다. 그 외 옷은 다른 사람이 한다. 동혁이 미국 와 쉬는 날 없이 일한 보람으로 큰딸은 지금 뉴욕 대학에서 법학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 경호는 여기서 중학교 졸업 할 때 성적이 전교서 상위권에 들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열심히 했다. 동혁은 남매가 별 문제없이 이곳 사회에 잘 적응해 줘 피곤함을 모르고 일만 해왔다. 내년쯤 세탁소를 경영할
1.계획을 하고 있는 동혁이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들 경호가 술에 만취가 되어 들어 왔다. 동혁은 다음날 경호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 말을 못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워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놀다 그만.”
동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경호의 귀싸대기를 때리려고 올린 손을 힘없이 내렸다. ‘아버지 대학 들어오니 경쟁이 더 심해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딸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언어가 다른 환경 속에서 그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고 갈등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딸아이가 잘해 나가 경호도 잘할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용서한다. 그러나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용서 안 한다.가서 쉬어라.”
그 후 경호는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루는 동혁의 아내가 편지 한 장을 내어 밀었다. 학교에서 오라는 통지였다. 여태껏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편지였다. 다음날 학교에 간 동혁은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왔다. 동혁은 저녁을 먹고 경호를 불러 앉혔다.
“학교에서 네가 술 담배 하다 들켰지? 그리고 네가 갱단이야?”
경호는 동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인다.
“아버지한테 사실을 말씀드려.”
동혁은 아내한테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했다. 경호는 아무 말이 없다. 동혁도 재촉을 안하고 있다. 잠시 후 경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술 담배는 사실이지만 갱단은 아니에요.”
“그럼 왜 그런 말이 나왔나?”
“한 아이가 자기들 조직에 들어오라고 왔다 같이 잡혔어요.”
“그러니까 공부 하기는 싫고 잘 되었다 조직에나 들어가자. 이거였구나.”
“아버지.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럼 뭐야?”
“백인 아이들이 같이 안 놀아 줘 다른 아이들과 휩쓸리다 그만...... .”
“네가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렇지.”
“아니에요. 그들이 깔보고 안 놀아줘요.”
“네가 처음부터 잘했으면 그들이 그렇게 안 했을 거야.”
잠시 무거운 침묵이 집안으로 흘렀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그래도 난 너희들을 위해 손가락 지문이 없어지도록 일을 했다. 그리고 넌 미성년자로 술 담배를 했으니, 경찰에 연락해 넌 형무소로 가고, 나도 이제 편히 살고 싶구나.”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넌 나와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아버지. 한번만 용서해줘요.”
경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동혁이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깨를 들썩거린다. 동혁은 잠시 천장을 보고 있다 소파에서 내려앉으며 경호를 꼭 안아 준다.
2.“그래 다 내 잘못이다. 내가 좀더 너와 가까이 있어 줘야 했는데.”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
경호의 가슴속에서 뉘우침의 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옆에 있던 동혁의 아내도 와서 서로를 껴안는다. ‘자식 교육이란 허울로 내 욕심만 생각했구나.’ 동혁은 혼자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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