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을 일으키는 애를 두고 우리 애는 원래 괜찮은데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는 경우가 있다. 맹자의 어머니도 맹자의 교육환경을 제대로 해주기 위해 세번이나 이사를 해서 인류의 성인을 만들었다고 하니 잘못된 애들을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도 근거가 있다.
지난 달 발표된 정부의 부실채권 구입 프로그램의 근거를 보고 있으면 바로 문제아에 대한 부모의 인식과 비슷하다. 거의 휴지가 되다시피한 부실채권의 가격이 부실채권 그 자체의 본질적 원인보다도 시장이 마비돼 가격이 형성되지 못하는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논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내용은 정부가 만드는 민관 합동투자기관이 1조달러까지 자금을 만들어 현재 부실로 인해 가격이 급격히 떨어진 부실채권에 대한 시장의 역할을 해줘 가격이 회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목표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부실채권을 정리시켜줌으로써 은행이 정상적으로 돌아가 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해준다는 목표다. 대출이 늘어야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는다.
둘째는 부실채권의 가격이 현실적 가격에 비해 너무 떨어져 있어 은행권의 손실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는데 이번 프로그램으로 부실채권가격을 ‘현실화’시켜주면 은행권의 손실규모를 대폭 줄여줘 은행권 정상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목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바로 이 두번째 목표다. 이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현재 금융시장이 지나친 불안심리로 인해 거의 얼어붙어있어 정상적 거래조차도 일어나지 않다보니 거래가격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점을 강조한다.
거래시장이 마비된 상황에서 돈이 급해 부실채권이라도 어쩔 수 없이 팔아야할 절박한 은행은 말도 안되는 낮은 가격으로 채권을 팔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아직 절박하지 않아 채권을 팔지 않아도 되는 은행들 조차 현재 보유하고 있는 채권의 가격을 실제 거래된 가격으로 재평가해야하므로 심한 손실을 장부상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되니 팔건 팔지 않건 막대한 손실을 은행권이 안게 되고 이 때문에 은행권은 자본부족 현상에 빠져 대출도 못하게 되고 추가 증자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부실채권 시장을 만들어주면 정상적 가격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그러면 은행은 부실채권을 현실적 가격으로 팔 수 있고 또 팔지 않아도 장부상의 손실을 줄이게 돼 은행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은 부실채권 시장이 얼어붙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내려갔다는 논리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실채권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은 것은 결코 환경 탓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부 주도의 이번 프로그램은 오히려 부실채권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놓을 위험이 있다. 은행들로부터 시중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부실채권을 구입해주면 판 은행은 당연히 좋아지겠지만 사들인 기관은 언젠가 그 부풀려진 가격 때문에 손실을 안게 될 것이고 그 손실의 대부분은 납세자가 지게 된다.
그래서 반대론자들은 이번 정부의 부실채권 구입 프로그램은 또 다시 납세자의 돈으로 은행권을 구해주면서 은행권에게는 면죄부를, 납세자에게는 부담만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현재 급격히 떨어진 부실채권 가격이 정말 가치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정부의 분석대로 시장이 비정상적이라 너무 지나치게 할인을 당한 것인가에 있다.
우리 애가 문제아인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잠시 물든 것인지와 같은 맥락이다. 어려움은 애를 환경이 좋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켜보기 전에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일단 전학을 시켜본다.
지금 정부도 비슷한 심정이다. 일단 부실채권에게 ‘좋은 환경’의 기회를 줘 우리 애가 잘못된 것이 아니란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문제아를 가진 부모 만큼이나 지금 미국 정부도 답답한 입장으로 보인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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