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감독 개혁안이 제시되었다. 첫째, 그 동안 관리능력이 떨어진다고 비판돼 왔던 저축대부조합 관리국을 폐쇄하고 둘째, 금융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 시스테믹 위험이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연방은행의 감독을 받게 하며 셋째, 크레딧 카드와 모기지 등 소비자 금융을 감독하는 별도의 기관을 설치해 소비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당연히 금융계는 반발한다. 규제로 인해 금융산업이 위축이 돼 대출이 줄어듦으로써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고 이는 너무 지나친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반론이다. 이 반론에 대해 정부와 의회에서의 추진파는 문제를 일으켜 경제를 뒤집어놓은 금융계가 아직도 제대로 반성을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월가는 이번 사태가 벼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을 만큼 너무 짧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금융권의 반발에 대한 역공에 앞장서고 있다. 정치권이 이렇게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계의 광란을 미리 막아 거품을 재현하지 않겠다는 노력은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긴 하지만 제대로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개혁 시도에서 크게 빠져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정치권 자신이다. 이번 사태의 시작이 되던 9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면 그 정점에 정치권이 있다. 금융권에 대한 규제를 대폭 없애 감독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무한대의 확장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배경이었다.
그래놓고 일이 잘못되자 다시 돌아서 앉아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을 다시 국민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이제 와서 금융권 규제 강화를 외치는 흑기사를 자처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는지 뒤바뀐 느낌이다.
이제 다시 훨씬 강화된 금융감독 법안을 만들어 금융계를 안정시킨다고 해도 정치권의 변화가 없다면 언젠가 슬그머니 규제 완화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나중에 경제가 좋아지면 너무 심한 규제 때문에 미국 금융권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외치면서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금융계의 로비가 심해질 때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기억해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는 선거 앞에 서면 고양이 앞에 쥐다. 이번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빚 늘려 국민들이 잘 산다고 기뻐하고 내 집값이 올라간다고 행복해 하면서 정치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표가 내게로 돌아온다고 믿는 상황이 재현된다고 치자. 이때 빚을 줄여야 한다고 또 집값이 거품이니 떨어뜨리자고 할 정치가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만큼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 아무리 좋은 규제법안을 가진다고 해 도지금 당장만 좋으면 표가 더 나오는 현 정치구도 속에서 다시 시대가 좋아졌을 때 정치권이 또 규제를 풀 가능성은 농후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했듯 월가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금방 잊어버릴 만큼의 짧은 기억밖에 없다고 하자. 그러면 아예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생각지도 않은 즉 기억은커녕 자기반성조차 거부하는 정치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금융규제 개혁안은 내용 여부를 떠나 금융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절대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조정이 된다면 앞으로 금융위기를 촉발하지 않게 할 장치를 나름대로 고심한 작품이다. 그러나 국민이 이번 사태의 배경에 있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인식하고 그 이후 정치권이 심각한 반성을 하지 않는 한 일시적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또 다시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대중 민주주의의 체제에 있는 현실에서 뚜렷한 답이 없는 매우 답답한 일이다. 다만 이번에 받은 상처로 놀란 많은 국민들이 상당기간 거품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해결책이라면 해결책일까?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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