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에서나 미국사람 만났을 때
낯가림을 안하는 것만 해도 큰 소득”
초등교 저학년 때부터 ‘영어 앞으로’
일기쓰기 방송시청 등 ‘영어 속으로’
언어공포 적어 캠프생활에 잘 적응.
“삼중고 사중고에요. 한국도 불황이지 여기(미국)도 불황이지, 환율이 그 모양이지, 거기다 그 돼지독감까지…. (관광버스) 한 대 채우기가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니까요. (불황 이전에 비해) 손님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북가주 한인사회에서 꽤 잘나가는 여행사 직원은 요즘 어떠냐는 말에 고개부터 흔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어느 한인식당 사장도 “요 몇달동안 버스떼기 단체손님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예외는 있다. 여름방학 교육특수다. 굳이 호황이랄 것은 없지만, 거의 모든 것을 덮친 불황의 회오리에도 교육업계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특히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북가주 곳곳 서머스쿨(서머캠프)이나 학원가에서는 한국에서 온 단기연수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초중고생들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관광비자로 입국하기 때문에 따로 통계를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북가주에만 족히 수백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16일 오후 5시쯤, 코테마데라의 한 초등학교 서머캠프 한켠에서 한국서 온 단기연수생 10명과 인솔자 겸 보호자로 온 자모 4명을 만나 ‘여름방학 틈새유학’의 이모저모에 대해 들어봤다.
◇누가누가 왔나? 이날 만난 방학연수생 10명은 모두 서울 출신이 아니었다. 경기도 화성과 평택에서 왔다. 약속이나 한 듯 한집에서 2명씩 5팀이다. 화성 반석초등 6학년인 이상아양과 이상원군(같은 학교 3학년) 남매, 이들과 사촌간인 평택 소사벌초등 2학년 이상희양과 이상은양(17개월) 자매, 평택 평일초등 6학년 문지윤양과 평택 부용초등 3학년 문지민양 자매, 평택 소사벌초등 6학년 신다인양과 신서인양(1학년) 자매, 평택초등 6학년 이예림양과 이채림양(4학년) 자매 등 10명이다. 그중 상은양은 연수생이 아니다. 겨우 걸음마를 뗀 어린이인 까닭에 엄마(김영숙) 등에 업혀왔다. 보호자 겸 인솔자로는 김씨 이외에도 김옥섬씨(문양 자매 엄마) 박정운씨(신양 자매 엄마) 진호경씨(예림-채림양 자매 엄마)가 왔다.
◇캠프는 어떻게 골랐나? 만만찮은 돈이 들어가는 방학연수를 결정해도 큰 고민거리가 남는다. 누구의 조언을 듣고 어디로 보낼 것이냐다. 비즈니스에 눈 먼 일부 악덕업체들의 과장광고에 속아 형편없는 캠프에 보내고 헛돈만 쓰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미국에, 게다가 서머스쿨(캠프) 환경이 좋은 곳에 있다는 건 행운이다. 보호자를 포함한 이들 14명이 그런 케이스다. 김영숙씨는 방학연수를 결심하고서 고1 때부터 단짝이었던 재키 김씨(부동산전문인)에게 부탁했다. 김옥섬씨 박정운씨 진호경씨는 김영숙씨의 친구들. 일행은 무려(?) 14명이 불었다.
부탁을 받은 재키 김씨와 샌프란시스코 시청 공무원인 남편(김신호 SF한인회 부회장)이 이곳저곳 알아본 뒤 밀밸리 집에서 가까운 코데마데라의 서머캠프를 추천했다. 김영숙씨네는 자신들 집에서 묵게 하고 나머지 3가족 9명은 캠프에서 도보거리인 호텔에 장기투숙을 주선했다. 캠프등록과 호텔예약 등 준비작업은 김신호 부회장이 거의 도맡았다.
◇기간은 어떻게 정할까? 사소한 정보부족 때문에 의외로 오남용되거나 간과되는 부분이 기간문제다. 한국에서는 관광을 하든 연수를 하든 보호자와 함께 장기 해외여행을 할 경우 3개월까지 출석처리를 해준다. 해외 견문넓히기를 장려하는 뜻에서다. 그런데 미국 공립학교는 체류신분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입학할 수 있다는 왜곡된 정보(사실 이민단속이 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가능했다) 때문에 학기도중 석달을 몽땅 잘라먹고 자녀(들)을 미국에 보내는 부모들이 많다.
이런 뜨내기 학생들을 적발하기 위한 관할지역 거주여부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져 이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방학 시작보다 두달가량 먼저 왔다가 학교에도 못다니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김영숙씨 등은 김신호 부회장 부부의 조언에 따라 미국방학에 시작에 맞춰 왔기 때문에 누수시간 없이 곧바로 미국 어린이들과 함께 서머캠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기간은 8월중순까지 2달이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공부위주냐 놀이위주냐? 이 역시 정보에 어두운 한국의 학부형들 상당수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에 공부위주 서머캠프는 거의 없다. 미술이나 음악, 스포츠 등 특정목적을 가진 캠프들 이외의 종합캠프는 대개 맞벌이부부 자녀들을 보호하면서 스포츠 음악 미술 등을 망라한 즐거운 놀이를 통해 알게 모르게 학습을 도와주는 것이 주종이다. “공부는 책 펴놓고 교실에서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영어천지 미국에서 영어공부 실컷 하고 부쩍 늘어 돌아오기”를 바라는 조급하고 고지식한 학부형들 눈에는 미국의 서머스쿨 풍경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공부에 대한 편견과 놀이학습 효과에 대한 무지 때문에 보내는 부모와 맡아주는 친척 또는 친구 사이에 더러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코테마데라 방학연수생 부모들은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 놓이거나 미국사람을 만났을 때 낯가림을 안하는 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는 느긋한 생각의 소유자들이었다.
◇돈은 얼마나 드나? 민감한 문제인지 모두들 즉답을 피했다. 간접적으로 알아본 결과 2개월 호텔숙박료는 방 1개에 3,600달러정도(아침식사 제공 및 부대시설 무료이용 포함). 30일 이상 장기투숙이라 세금을 면제받고 특별할인 혜택을 받았다. 게다가 김신호 부회장이 주로 어린이들이란 이유 등으로 섭외를 해 추가부담없이 6,7명까지 한 방에 묵을 수 있게 했다. 따라서 김 부회장 집에 묵는 김영숙씨네를 빼고 나머지 9-11명이 방 2개만 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리는 캠프(이들은 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쯤까지 이용한다) 비용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내용에 따라 몇백달러짜리에서 천수백달러짜리까지 다양하다.
점심식사비 포함여부는 이용시간에 따라 선택사항이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는 저녁식사비, 주말여행비, 왕복항공료, 기타 생필품구입비 등을 합치면 경비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의 영어바람은? 코테마데라 방학연수생들을 통해서도 그 뜨거운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유치원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영어이름을 갖고 있다. 신다인양은 1학년 때부터, 동생 서인양은 4살 때부터 영어를 공부했다. 이예림-채림 자매는 1학년 때부터 학원에서 주5회 수업을 받았다. 문지윤양은 1학년 때부터, 동생 지민양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했고, 이상아-상원-상희 4촌3삼매도 일찌감치 영어세계에 맛들였다. 학교에서는 3학년 때부터 공식수업이지만 모두들 그 이전에 선행학습을 했다. 실력도 보통 아니다. 어지간한 회화는 기본이고 영어드라마나 영화를 즐기고 보고 영어일기를 쓰는 아이들도 여럿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영어로 말하고 듣는 데 별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캠프생활 소감과 평가는? 영어에 큰 부담이 없다보니 캠프생활 적응도 빠른 편이다. 유일한 남학생인 이상원군은 그 사이에 ‘모자먹는 괴물’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를 사귀었다고 자랑이다. 대개들 아빠가 보고싶다면서도 “한국에 안가고 남아서 더 놀고 싶다”(이상아양) “부모님과 함께 여기에 살았으면 좋겠다”(문지원양) “1년이라도 여기서 학교에 다녀보고 싶다”(이예림양) 등 적응문제 이상없음을 보여줬다. 이상희양은 “엄마아빠에다 단짝친구 수연이”까지 보태서 “평생은 아니고 몇 년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들에 따르면 물론 캠프 초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면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바람에 캠프운영자측의 권고에 따라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인근 다른 캠프로 분산했다. 그 뒤로 두 그룹 모두 캠프적응이 빨라졌다고 한다. 박정운씨는 “큰애가 6학년인데 중학교 가면 (학교공부에 바빠서) 못오게 되니까 큰맘 먹고 오게 됐다”면서, 김옥섬씨는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 걱정했는데 한 3주 지나니까 잘해주는 것 같다”고, 천호경씨는 “돈도 돈이지만 돼지콜레라다 뭐다 해서 주변에서 걱정해서 마스크까지 하고 왔다”는 웃지못할 비화를 공개하며 다들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김영숙씨는 “4년 전에 왔는데 이 친구가 해피해하는 것 같아서 또 왔다”는 재치있는 말로 ‘손님대군’을 맞아준 친구 재키 김씨네에 감사를 표했다. 재키 김씨는 “우리 아파트에 여자아이가 거의 없어서 (딸) 수지가 늘 남자애들 하고 놀다가 언니에 친구에 동생에 여자가 많아지니까 엄청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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