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스 데이는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종결된
1차대전을 기념하는 날로 발족되었기 때문에 11월 11일이다.
1882년 9월 뉴욕시의 중앙노동조합(Central Labor Union of New York City)이라는 조직이 “미국 근로자에게 주 1일은 유급 휴일을 주어야 한다”는 운동의 일환으로 시가행진을 하였는데 매해 동조자가 늘어서 운동의 규모가 확대되자 연방정부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도 5월 1일을 노동일로 정하고 행사를 하며 공휴일로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노동일을 공휴일로 정해야 되겠다고 결의하고 1894년 6월 28일 연방법정공휴일로 입법화했다. 날짜는 매해 9월 첫 월요일로 하기로 한 것이다. 5월 1일로 정하자는 설도 있었지만 5월 1일로하면 마치 국제노동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 같다고 해서 피하였다는 것이다.
노동절은 특별한 정치적인 의미는 없으며 여름을 마감하는 휴일이며 아이들의 방학을 마감하는 피크닉 데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베테랑스 데이도 모든 주가 지키는 연방 법정휴일이다. 베테랑이라는 말은 반드시 전쟁터에서 직접 전투에 참여를 한 군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재향군인이라는 뜻이다. 직접 전투에 참여한 군인은 Combat Participant또는 Combatant라고 한다. War Veteran이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전쟁 때에 군에 복무하였다는 뜻이지 전투에 직접 참여한 군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의 재향군인 수는 2,525만명(2005년 현재) 이다. 그 중 ‘참전용사’는 1,829만명이다. 1차대전의 참전용사가 200명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2차대전 참전용사가 437만명, 한국전 참전용사가 358만명, 월남전 참전용사가 838만명, 1차 Gulf전쟁 참전용사가 188만명이다. 현행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참전용사의 수는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가 파악이 잘 안 된다. 한국전쟁 때의 참전용사는 572만명인데 약 62%의 참전용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 셈이다.
1차대전이 일단 휴전된 날은 1918년 11월11일이다. 시간도 오전 11시 였다. 이날을 ‘Armistice Day’라고 한다. ‘휴전일’이라는 뜻이다. 1919년에 Woodrow Wilson 대통령이 11월 11일을 ‘휴전일’로 제정을 하고 전쟁의 쓰라림을 회상하도록 했다. 결국 1938년에 연방 법정휴일로 제정하게 됐다. 1954년에 연방의회에서 이날을 ‘베테랑스 데이’라고 호칭하기로 하고 특정 재향군인이 아니고 모든 재향군인의 공을 기리는 날로 제정했다. 베테랑스 데이는 연휴공휴일(Floating Day)은 아니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는 미국에서 시작된 미국 고유의 종교적인 축제일이다. 지금은 캐나다에서도 국정 휴일로 정하고 있지만 날짜는 미국과 다르다. 미국의 감사절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지만 캐나다의 감사절은 10월 둘째 월요일이다.
감사절은 지금으로부터 389년 전인 1620년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Mayflower)호라는 배를 타고 미국에 와서 정착한 102명의 영국 ‘순례시조(巡禮始祖)’일행이 도착 다음 해 가을에, 지난 1년 동안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농사의 풍작을 이루게 해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가졌던 행사이다. 이 ‘순례시조’를 영어로는 Pilgrim Fathers라고 한다.
감사절 이야기가 나오면 의례 ‘순례시조’라던가 ‘청교도’, Mayflower, Plymouth와 같은 낯선 낱말이 나오게 되는데, 감사절을 지나는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러한 낱말의 뜻부터 간단히 새겨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은 것은 1517년의 일이다. 유럽에서는 많은 기독교인이 루터의 교의를 따라 신교로 개종했지만, 여러 국가가 가톨릭을 여전히 국교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
종교개혁으로부터 17년 후인1534년, 헨리 8세 때에 영국이 가톨릭에서 이탈하자 신교 개종자들은 영국 국교에 기대를 많이 걸었다. 그러나 영국 국교는 교의적으로는 칼뱅파 신교이지만 예배형식은 여전히 가톨릭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개종을 원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신교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됐다. 이러한 사람들을 청교도(Puritan)이라고 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영국 국교는 도저히 개혁의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숫제 영국 국교에서 분리되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분리파’라고 했다. 영어로는 Separatist라고 한다.
그래서 영국 당국에서는 이 사람들을 탄압했다. 한때는 청교도라면 감옥에 투옥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탄압이 심해지자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는 역시 신천지 미국에 가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미국에 가서 식민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받아들인 사업가들이 자금을 마련해서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제공했다. 그때만 해도 정부에서 직접 식민지를 확보하는 일은 드물었고,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들이 신천지에서 사업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개척회사를 만들고 정부의 인가를 받아 식민지를 개척하곤 했다.
이들은 1620년 9월 16일에 영국의 Plymouth항을 떠나서 66일만인 9월 21일에 지금의 메사추세츠주 해안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보스턴 남쪽 Cape Cod라는 갑에 위치한 Provincetown이라는 항구였다. 닷새 후 인근 해변가인 Plymouth에 정착했다. 메이플라워호에는 102명이 탔었는데 이중 청교도는 41명이었고 61명은 신천지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이민 길을 떠난 영국인들이다. 모두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개척활동을 하면서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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