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에 작고한 칼 로완이란 흑인 칼럼니스트가 있었다. 2차 대전에 참전 후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의 기자로 출발한 로완은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핀란드 대사를 거쳐 미 공보처장을 역임했었다.
칼럼니스트로도 성공한 그는 워싱턴 DC 고급 주택가에 집을 소유할 정도의 부도 축적했다. 잔디쯤이야 사람을 시켜서도 깎게 할 수 있지만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로완은 운동 삼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기 집 앞마당의 잔디를 깎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급 승용차 하나가 그 앞에 멈추어 서더니 백인 부인이 한국말로 의역을 하자면 “잔디를 깎는데 얼마나 받느냐”라고 질문하더란다. 로완은 대답하기를 “이 집에서는 한 푼도 안 받지요. 그 대신 이 집 안주인이 가끔 나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요”라고 했단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30년도 훨씬 넘은 때 로완이 노폭에 있는 올드 도미니온 대학(ODU)에서 연설하는 가운데 백인들의 고정 선입관에 대한 일례로 자신의 경험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고정 선입관을 영어로는 ‘stereotype’이라고 하는 바 옛적 신문 인쇄기의 단단한 반원형 동판에서 나온 말로서 깨트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 필자는 노폭 스테이트 대학(NSC)에 교편을 잡고 있었다. ODU는 백인 대학이라서 학교시설 등이 훌륭했던 반면 흑인 학교 선생들을 배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NSC는 철도길 옆에 자리 잡은 열악한 시설로 출발했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주 예산의 증가로 캠퍼스가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상태에 있었다. NSC의 학생 90%가 흑인이었던 바 신문학 전공 학생들로부터 자기들이 흑인들이기 때문에 당해 왔던 수모에 대해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1960년대의 민권법과 투표법으로 흑백의 법적인 차별이 불법화되었고 흑인들의 참정권 확대로 흑인들의 정계 진출이 점점 늘어 2009년에는 반흑 반백이지만 유색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난 이 시점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7월 중순에 터진 헨리 게이츠 하버드 대학교수의 체포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다.
중국에 다녀 온 게이츠 교수는 캠브리지에 있는 자기 집에 들어가려다가 앞문이 잘 안 열려 택시운전사의 도움으로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이웃의 신고로 경찰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제임스 크라울리라는 백인 경사는 게이츠가 그 집 주인임을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공무집행에 반항하는 소동을 벌였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체포란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경찰서에 끌려가 범죄 혐의자로 사진까지 찍히는 과정이다.
캠브리지 경찰은 게이츠가 대학교수인 자기가 그렇게 당할 수 있는 것은 흑인들 모두가 경찰로부터 인종에 의한 표적수사(racial profiling)를 당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CNN과의 회견에서 주장하니까 기소를 중단해 버렸다.
그런데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기자회견의 끝머리에서 오바마가 캠브리지 경찰은 이 사건에서 “바보 멍텅구리처럼” 행동했다고 비난하자 미국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오바마는 목요일 밤 크라울리 경사, 게이츠 교수 그리고 바이든 부통령과 화해의 맥주 자리를 가짐으로써 이 사건의 소란을 잠재우려 했다.
객관적으로 보건데 셋 다 잘못인 것 같다. 게이츠가 아무리 억울해도 크라울리에게 욕을 퍼부은 것은 지나치다. 그렇다고 해서 크라울리가 게이츠를 체포해야만 했는가도 따져 볼만 하다.
오바마도 20대에 흑인 표적수사 관행으로 차를 멈춤 당하고 수모를 겪은 경험이 있다지만 모든 사실을 알기 전에 경찰을 비난한 것은 경솔한 일이었다. 마음속의 인종편견을 씻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다.
남선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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