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나이가 들며 늙어 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누구나 몸과 마음은 물론 생각과 취향 까지도 변한다. 나 역시 젊은 날과 달리 취향이 많이 바뀌었다. 요즈음은 TV 프로 중에서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를 즐겨보며 행복해 한다. 노래 속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들어 있어 절절히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얼마전 열린 음악회에 출연한 가수 패티 김이 검은 머리 한 올도 보이지 않은 백발의 짧은 헤어스타일로 바꾸고 정열적으로 노래하는 광경을 보았다. 은물결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백발이 아름다웠다. 그 파격적인 모습에 반해 “와 멋지다. 멋져“라는 소리를 연발했다. 늙음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인생의 황혼을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드린 자유라고 느껴졌다. 노년의 빛깔과 생동감이 넘치는 열정은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이었고 마치 나이테를 안으로 품고 의연하게 서있는 나무의 의지를 보는 것 같았다.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배경에 따라 젊음도 아름다움도 변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화 현상을 괴로워하며 약점으로 생각한다. 젊게 보이고 싶다는 일념에서 검은 머리로 염색을 하는 것이 여성의 심리이다. 외국 어느 극장에서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남성 한 사람이 소리 높여 말했다. “나이든 여성 외에는 모자를 벗어 주시오.“ 장식이 요란한 모자를 쓰고 앉은 여성 관객들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 장내의 모든 여성이 일제히 모자를 벗었다. 나이 들었다고 표시하고 싶은 여성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이 든 사람임을 나타내고 싶은 여성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심리를 잘 나타낸 에피소드다. 그러나 나이가 드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생의 해석이 달라지는 좋은 점도 많다. 조금 더 너그러워 질 수 있고 느긋해 진다. 기다릴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게 된다.
고통이 와도 그것이 지나갈 것을 알게 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정관념도 서서히 달라진다. 인간을 보는 눈이 따뜻해진다. 욕심도 내려놓는 지혜가 생긴다. 나도 한 때 그랬었지 라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세월을 살면서 나이 값을 하게 된 내적인 성숙이 인간미로 더 해가는 것이다. 이런 좋은 점들은 세월과 함께 시간이 흘러야만 만들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준다. 귀감이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서머셋 몸이라는 작가는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많은 훈련에 의해 성장함으로 젊었을 때 보다 나이 들어 더욱 활발해 진다고 했다. 우리 주변에도 나이에 상관없이 고령의 연세에도 활기차게 전문직을 지켜가고 있는 분, 건강하게 사회활동,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들은 신체적 노화가 약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스타는 베일 속에 감추어진 신비스런 존재로서 보다 우리와 똑 같이 늙어가는 평범한 인간으로 다가왔을 때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은퇴 후 사망할 때까지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어린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 주는 그녀의 노년에 모습은 인간의 완숙미를 보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다.
패티 김, 오드리 헵번, 그녀들의 모습에서 팽팽했던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늙어감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나이에 맞춰 나다운 특색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백발의 아름다움은 곰삭은 술 같은 깊은 맛이 배어 있어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기도와 글 쓰는 일이 내 삶이 되는 아름다운 노년이나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내 안에 감춰진 연륜이 어떤 빛깔, 어떤 무늬를 가졌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김영중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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