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약점 때문에 피해사실도 쉬쉬
돈 떼이고 감옥갈 뻔한 채권자 등
북가주 한인사회도 불미사례 다수
50대 중반 Y씨는 한국에서 꽤 유명한 건축설계사다. 대형건물보다 자투리땅 개성있는 소형건물 설계가 주특기다. 플룻 연주자가 꿈인 Y씨의 고교생딸은 미국유학을 원했다. Y씨 부부는 ‘미국의 거의 유일한 끈’인 LA후배(Y씨 부인의 후배)의 권유로 딸을 LA로 보냈다. 학교와 아파트 등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리고 난생처음이자 나홀로 외국생활을 하는 딸이 걱정돼 처음 몇달 미국에 와 있는 동안 후배 부부가 보여준 싹싹하고 빈틈없는 일처리에 Y씨 부부는 적이 안심이 됐다.
딸에게 보내는 돈이 골치였다. 사립학교 등록금, 고급콘도 렌트비, 플룻 과외비, 영어 등 일반과목 과외비, 가디언 겸 운전사 역할을 하는 후배 부부에 대한 두둑한 성의표시(월급) 등 액수가 만만찮았지만 재력있는 Y씨 부부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송금 때마다 외환반출신고 등 절차가 귀찮았다. 한도를 초과해 더러 남의 이름을 빌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반년쯤 지났을 때, 후배는 소액투자이민(한식당)을 제안했다. 한참 들어본 뒤 Y씨 부부는 자신들의 골칫거리를 덜어주는 안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니 진척이 빨랐다. 몇달만에 식당이 오픈됐다. 대략 45만달러가 들었다. 후배는 성심껏 일했다. Y씨 부부는 송금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만 해도 만족이었다. Y씨 부부가 굳이 먼 여행을 해야 할 필요도 적어졌다.
후배 부부는 시시때때 서울로 전화해 수입지출 내역과 예금잔고 등을 상세히 보고했다. Y씨 부부는 자신들이 행여 후배를 못미더워하는 눈치를 줬나 싶어 도리어 미안한 마음에 “큰돈 들어갈 일 있을 때나 애(딸)한테 무슨 일 있을 때 아니면 그런 거 안해도 된다”며 중단시켰다.
몇달 뒤, Y씨 부부는 딸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차도 안오고 연락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Y씨 부부는 즉각 후배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안됐다. 식당이 문을 열 시간은 아니었지만 걸어봤다. 역시 안됐다. 딸에게는 택시를 불러 등교하도록 한 뒤 Y씨 부부는 종일 통화를 시도했다. 다음날, 다다음날도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다음날, Y씨가 LA로 날아왔다. 곧장 레스토랑에 들렀다. 주인이 달라졌다. 새로 샀다는 것이었다. Y씨는 그제서야 아차 했다. 서울로 전화를 걸어 부인더러 계약서를 갖고 들어오라 해놓고는 후배의 집에 가봤다. 역시 새 주인이었다. 사흘 뒤 부인이 가져온 계약서는 가짜였다.
뉴욕의 명문음대에 진학한 딸을 만나고 귀국하는 길에 최근 북가주에 들렀다 간 Y씨는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몇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그 말짱한 것들이 차(벤츠)까지 팔아먹고 튀었더라고. 식당 그거야 안그래도 때 되면 그네들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니 그렇다치고 까딱했으면 애를 미아 만들 뻔했다니까”라고 너털 웃었다.
그는 또 “하기야 평소에 기별도 없이 지내다가 애 때문에 물어물어 겨우 연결됐는데 집사람한테 처음부터 유난하게 ‘언니, 언니’ 해가면서 믿음 팔고 뭐 팔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라며 “(식당을) 어차피 줄 생각이었고 봐도 잘 모르니 계약서를 꼼꼼히 들여볼 생각도 안했고…당하고야 알아보니 우리한테는 내가 주인으로 된 가짜를 주고 어디 등록할 때는 그네들 명의로 된 걸 넣었더라고, 중개인하고 짜고 했겠지”라고 혀를 내둘렀다.
진짜 큰 문제는 Y씨의 피해가 ‘몇년 전 LA에서 생긴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똑같은 유형은 아니지만 북가주 한인사회에서도 사적 돈거래나 비즈니스 등으로 신뢰가 깨진 사례들이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명백한 사기나 사기성 짙은 악질적 케이스가 숱하다.
열이면 열 초기에는 낮은 자세로 신뢰를 얻은 뒤 일정여건이 성숙되면(안면몰수를 해도 공식서류상 자신이 유리한 시점이 되면) 속셈을 드러내 보란 듯이 뒤통수를 치는 식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Y씨처럼 사람만 믿고 서류를 무시 내지 경시했거나 서툰 영어에다 복잡한 서류 때문에 눈뜨고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해자가 잠적하지 않고 버젓이 활보하는데도 피해자가 신분상 제약이나 기타 사유로 소송제기 등 공식적인 구상조치를 못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심지어 신분상 약점 등이 문제될까봐 피해를 당하고도 쉬쉬하는 이들이 한둘 아니다.
수만달러를 얻어쓴 은인에게 일전 한푼 갚지 않은 것도 모자라 몇년동안 더 못갚겠다고 했다가 발길로 한번 걷어채이고는 즉시 경찰에 신고해 빚을 때운 사례(채권포기 조건부 형사처리 불원 합의)도 있다. 업소처분 뒤 동업자몫 돈까지 몽땅 쥐고 한국으로 줄행랑을 놓은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의 허위경력을 내세워 관심을 끈 뒤 적게는 수백달러에서 많게는 수천달러까지 자잘한 빚내기와 외상 등으로 수만달러 빚을 지고 급한 일로 한국에 다녀오겠다며 떠나기 전날 밤까지 여기저기서 추가로 돈을 꿔 사라진 사람도 있다.
Y씨 케이스와는 반대로, 북가주 한인이 지인에게 E2비자를 받게 해주려고 업소를 공동명의로 해줬다가 진짜 빼앗기다시피한 사례도 있다. 한 사업가는 “조그만 거래를 하면서 몇천불 안되는 돈을 꿔줬는데 돈도 안갚고 거래도 끊더니 전화조차 피하는 사람이 있다”며 “딴데서는 어떻게 하나 봤더니 그 버릇 어디 가나, 물정 어두운 신출내기를 상대로 제법 크게 한건 했는데 사고 더 못치게 어떻게 터뜨리나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정태수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