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다.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울 맺고 있는 당사국 이기도 하다. 미국과 대한민국과의 우호관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기간의 우호적인 한미관계는 미국국민을 친한적인 이웃으로 만들었고, 한국인들에게 친미사상을 심어주었다. 그러한 관계로 미국에 이민 오는 사람들은 이민이라는 큰 모험의 길을 떠나면서도 그리 심한 불안 감을 갖지 않는다. 미국에 도착해서 낫 설은 이국인들의 틈에 끼워 살게 되면서도 상대가 미국인인 이상은 그리 심한 이질감을 갖게 되지는 안는다. 그리고 미리 와서 터를 닦은 친척, 친지들도 거들어 주어 마음의 안정도 비교적 순탄하게 잘 찾게 되는 편이다.
우리 속담에 “넉살 좋은 강화년”이라는 표현이 있다. 강화의 특산품인 인조견을 팔러 다니던 강화 아낙네들이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넉살이 좋아서 남의 집에 들어가 체면이나 염치를 모르는 행동을 잘하며, 때로는 밥도 얻어 먹곤 하였다는 것이다. 넉살은 잘 보아주면 애교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심하면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한다. 그리고, 도가 지나치면 상대방을 조롱하는 꼴이 되어 질책(叱責)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한인 이민인 경우, 한미 우호관계의 덕으로 미국생활의 시작(break-in)도 비교적 안이했고 거처나 직장 이웃과도 별 어려움 없이 낯을 익히고, 안정된 생활리듬을 찾으면 “강화년”꼴이 되는 사람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강화년”처럼 미국에서 주는 밥도 잘 얻어먹으면서 그것은 본인의 넉살의 덕이라고 여기고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며 부응(副應)하는 사례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에서 베푸는 사회복지 혜택은 최대한으로 받으면서 미국에 대한 책임은 아이에 염두에도 두지 않는 파렴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국을 위한다니, 애국을 한다니 하면서 마치 미국을 조롱하는 것과 같은 언행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을 자선사업차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미국 국민을 만들려고 받아 드리는 것이다. 국민이 되려면 국가에서 부과하는 의무를 다하여야 하고 입향순속(入鄕循俗)을 통해서 국민답게 살아야 한다. 이민은 귀화(歸化)시에 모국에 대한 충성심을 송두리째 그리고 철저하게 포기 한다는 선서를 한다. 이러한 선서를 한 사람들이 조국을 위한다니 애국을 한다니 하면서 엉뚱한 짓을 하면 미국을 조롱하는 꼴이 되어 응분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거주권(居住權)을 박탈당하게 된다.
필자가 이상과 같은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19세기 말엽부터 2차 대전 초까지 팽배하였던 미국의 동양인 배척풍조인 황화(黃禍)와 “강화년”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내려가면 이민으로써의 우리의 생활자세를 좀더 올바르게 평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우리는 현대 이민으로써 과거의 황화 풍조와 같은 반 동양인 움직임이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우리에게는 우호적인 국가임으로 다소의 넉살은 애교로 받아 들여지리라고 여기지만 그 넉살이 도를 지나쳐서 미국적인 생활규범을 무시하는 선까지 간다던가, 모국치중적 생활에 빠지게 해서 미국의 법이라던가 미국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국을 우롱하는 것과 같은 흉내를 내게 한다면 용서의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황화”의 역사를 살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해도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녀야 한다.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의 대부분은 모국에서 살길이 막막해서 미국을 찾은 사람이 아니면 전화(戰禍)가 무섭다던가, 사회의 부패라던가 타락상(주관적인 관점에서)에 환멸을 느꼈기 대문에, 또는 한국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대를 가셔 보려는 의도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 모든 목적은 “좀 잘살아 보겠다”는 말로 집약이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 본연의 자세일 것이다. “잉어가 풍덩 하니 송사리도 풍덩 한다”는 말이 있는데, 미국에 와보니 잉어도 별로 눈에 잘 안 띠우고 해서 송사리들이 신이 나서 잘 풍덩을 한다.
이민중에는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온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한미 친선을 위한 활동 이라던가 교민의 복지 증진을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람도 물론 없다. 그런데 실재적으로는 이러한 간판을 내 걸고 “풍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비교적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황화풍조”는 다른 원인도 있지만 이민이 이민의 길을 걸지 않고 모국 편중적인 생활에 빠진다던가 분수에 맞지 안는 사회활동 등을 통해서 터주대감들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눈도 있는 것이다. “강화년”의 지나친 익살과, “송사리”들의 “풍덩”소리가 이민사회에 평지풍파를 몰고 올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캘리포니아에서 발단이 된 황화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주의 깊게 고찰 하도록 하면 한다.
스페인 왕의 후원으로 클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해는 1492년이며, 영국이 본격적인 식민지 활동을 시작한 해는 1620년 Mayflower호로 102명의 식민지 요원을 송출한 해부터이다. 13개의 식민지가 생기고난 후 13개의 식민지가 단합을 해서 영국정규군과 7년간의 독립혁명전쟁(1775-1781)을 거처서 독립을 한 해는 1776년(전쟁 중에 독립선언 공포)이다. 동양이민으로서 미국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은 중국사람들인데, 미국이 서부 개척을 서두르고 멕시코 전쟁(1846-1848)으로 캘리포니아를 비롯 서부일대를 미국 영으로 예속시키고 난 1848년 말 캘리포니아에서 금맥이 발견 되 “캘리포니아 금광 붐(California Gold Rush)”이 막 시작되던 그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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