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포함 피해액 300여만달러
“계 빙자 사기” 주장하며
‘피해자들’ 법적대응 나서
1년여 전 발생한 실리콘밸리지역 한인사회 낙찰계 파동과 관련해 여러건의 복합소송이 진행중인 가운데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 등 페닌슐라지역과 이스트베이지역 한인들이 다수 가입된 낙찰계 3개의 계주가 돌연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적계주는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에서 지난 10여년동안 88비디오를 운영해온 소피아 강씨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계원들과 채권자들(이하 ‘피해자들’)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달 28일부터 비디오 가게를 오픈하지 않은 채 1주일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가게 출입구에 부착된 피해자 자진신고서와 ‘피해자들’의 보충설명을 기초로 집계한 피해액은 사채 100여만달러, 곗돈 약 200만달러 등 300여만달러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업소폐쇄와 통신두절, 자택문제 등 정황으로 미뤄 소피아 강씨가 도주한 것으로 보고 법적대응에 나섰다.
◇강씨 주도 낙찰계 실태 : 소피아 강씨가 계주로 있는 계는 3개다. 계원들 사이에서 각각의 계는 곗돈 규모에 따라 만불계, 4만불계, 5만불계로 불렸다. (강씨는 또다른 계에서 계주가 아닌 일종의 중간책으로 있었으며, 계주는 강씨의 잠적과는 상관없이 이 계를 끝까지 지켜내 해당계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낙찰시 수령액이 약 10,000달러인 만불계는 21명이 한달에 약 500달러씩 불입해온 것으로 2008년 3월 시작돼 올해 11월 끝나는 계다. 형식상 곗돈 미수령자는 강씨가 잠적한 9월분을 포함해 3명만 남은 상태였다. 40,000달러짜리 계는 2009년 3월에 시작됐으며 계주 강씨를 포함해 26명이 계원이다. 50,000달러짜리 계는 2007년 6월에 시작됐고 계원은 35명(강씨 포함)이다.
실제 계원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계원 1명이 여러 계에 들거나 한 계에서도 두세명분(낙찰계 은어로 일본어인 ‘구찌’라는 말이 사용된다. 2명분을 불입하고 있다면, 통상 ‘두 구찌 갖고 있다/붓고 있다’고 표현) 불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피아 강씨의 경우 4만불계에서 1번과 2번 ‘두 구찌’를 갖고 있다.
계원 숫자와는 별개로, 위 내역에 따르면 강씨 주도 낙찰계 피해액은 그다지 크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만불계의 경우 3명만 남았으므로 이자나 실제불입금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계산하면 강씨의 잠적으로 인한 피해액은 약 3만달러다. 문제는 만불계가 끝나가도록 실제로 곗돈을 탄 사람이 거의 없다(몇몇 ‘피해자들’은 “돈 탄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4만불계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은 2년 넘은 5만불계 역시 7,8명만 타고 20명분을 (계주가) 챙겼다고 단정했다.
강씨와 관련된 계 피해액을 약 200만달러로 집계한 근거는 이같은 ‘피해자들’의 주장과 법적대응을 위해 88비디오 출입구에 붙여놓은 신고서(성함, 전화, 액수) 내역을 확인해 합산하고, 강씨가 또다른 계를 통해 타인명의 등으로 수령했다고 신고된 돈(피해자 숫자에 해당곗돈을 곱함)을 더한 것이다.
◇‘피해자들’ 법적대응 움직임 : 소피아 강씨의 잠적징후는 88비디오가 일요일(9월25일) 정기휴업 뒤 월요일(9월26일)에도 오픈되지 않으면서 알려졌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나란히 입점한 스킨케어, 미용실 등 주인들이 계원들인데다 계를 둘러싼 불안감과 강씨에 대한 불신감이 매우 높았던 탓에 88비디오의 월요일 폐쇄는 곧 잠적으로 읽혀졌다. 계원들은 강씨 추적에 나섰다. 강씨와 강씨의 남편은 소재불명 상태였다. 강씨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다. 강씨 부부가 살았던 더블린 자택을 두고는 이미 매각했다는 말과 주택담보 융자를 받아낸 뒤 렌트를 줬다는 말이 엇갈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또 지난주초 SF공항에서 강씨를 봤다는 제보를 받고 관계기관을 통해 국적기를 통한 한국행 가능성을 탐문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부는 미국내 모처로 잠적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온갖 수소문이 허사로 돌아가자 ‘피해자들’은 강씨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사흘째인 9월30일 88비디오 출입구에는 “88비디오숍에 관련된 피해를 보신 모든 사람들은 여기다 기록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내일(10월1일) 오전 9시에 피해당하신 것을 증명할 만한 서류(체크사본, 차용증 등)가 있으시면 가지고 오시면 경찰에 보고할 서류를 제작하려 합니다”라는 안내장과 신고서를 붙여놓았다. ‘피해자들’은 또 SF경찰국 관련부서에서 예비상담을 하고 K변호사의 자문을 구한 뒤 “강대유/강보건 소피아 이름으로 된 Bank 수표가 있으신 분은 무조건 경찰서에 가서 ‘사기’ 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라는 추가안내문을 붙여놓았다. 강대유씨는 소피아 강씨의 남편으로, ‘피해자들’이은 소피아 강씨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프리몬트지점에서 발행한 부부공동명의 수표를 사용한 점을 들어 남편의 이름을 공개했다. 수표상 남편의 성명(John Daeyoo Kang)은 맞게 돼 있으나 계주 소피아 강씨의 성명란에는 ‘소피아(Sophia)’가 빠지고 한글이름 ‘보건‘과 다소 동떨어진 ‘Bae Kaeun Kang’으로 돼 있다.
난해한 채권채무 분쟁으로 흐르기 쉬운 여느 계파동과 달리 ‘피해자들’이 소피아 강씨를 사기혐의로 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근거 중 하나는 이번 사태가 단순 계파동이 아니라 여러건의 사채사건(동시다발 채무변제 불이행 및 잠적 등)과 얽혀있고 이를 입증할 증거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몇몇 ‘피해자들’은 “우리는 계가 아니라 계를 이용한 사기를 당했다”며 “낙찰계란 말도 쓰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본보는 소피아 강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5일 오전 현재 연결되지 않았다.
<정태수 기자>
<사진설명>
잠적한 계주 소피아 강씨가 운영한 SF재팬타운의 88비디오 출입구에서 한 계원이 각종 포스터 위에 붙은 피해신고 안내장과 여러건의 계 및 사채 피해신고서들을 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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