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원∙채권자들이 말하는 ‘잠적 소피아 강씨’
◈본보는 10여명의 피해자들과 지인들로부터 소피아 강씨 사건의 이모저모와 강씨의 평소 사생활 등에 대해 증언을 청취하고 일부 자료를 확보했다. 본보는 강씨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기사화를 보류한 채 수차례에 걸쳐 강씨와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이에 본보는 그동안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강씨의 평소언행 및 잠적전후 등에 대해 재구성한다. 강씨에게는 기사에 대한 반론권이 보장돼 있음을 밝혀둔다.
◇인적사항 및 가족관계 : 강씨의 결혼전 성은 김씨다. 1961년생이다. 계원들이나 지인들은 그를 주로 소피아(Sophia)란 이름으로 불렀다. 그의 한국이름은 ‘강보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BOA 프리몬트지점에서 발행된 강씨 부부 공동명의 수표에는 강씨의 이름이 ‘Beu Kaeun Kang’으로 돼 있다. ‘보건‘과는 동떨어진 표기다. 몇몇 계원들은 이름이 좀 안맞다고 알기는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가주 등 미국에 강씨의 형제자매는 없다. 서울에는 그의 모친과 오빠, 남동생이 있다. 오빠의 아들은 UC데이비스에 재학중이고, 남동생의 딸은 북가주에서 조기유학을 한 뒤 귀국했다. 남편은 강대유(영어이름 John)씨다. 강씨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다.
◇명품족 부자행세 : 계원들과 지인들은 대부분 강씨( 및 강씨 부부)가 엄청난 부자로 알고 있었다. 강씨 부부가 지난 10여년동안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 포스트스트릿 연도의 건물 지하에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88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재력있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은 강씨의 명품취향과 언행 등 때문으로 보인다. 계원들과 지인들에 따르면, 더블린에 사는 소피아 강씨는 2인승 컨버터블 벤츠로 출퇴근을 했으며 고가의류와 핸드백 등을 온통 명품만 썼고, 진귀한 보석도 많았다. 더블린 자택의 가구들도 하나같이 고가품이었다고 한다.
강씨와 친자매처럼 지내면서 사채와 곗돈 등 약 50만달러를 당했다는 K씨는 “(소피아 강씨가) 지갑에 수천불, 어떨 때는 수만불씩 현금으로 갖고다니면서 보여주기도 하고 보는 데서 물쓰듯이 쓰기도 했는데 한번은 유니온스퀘어 근처에 있는 루이뷔통 같은 명품점에서 1,200달러짜리 티셔츠를 사고 1,000달러짜리 바지를 사는 걸 보고 놀랐다”며 “지금 생각하니까 돈 많다는 걸 과시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계원들과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강씨는 조그만 비디오가게 주인으로서 돈많은 사람 행세를 하는 게 다소 걸렸던 듯하다. 그것(비디오가게)은 단지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고, 원래 부자인데다 돈 나오는 샘이 따로있음을 아주 기발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남편이 큰 회사에 다니다 허리를 다쳐 못다니는데 워컴이 나온다” “내가 애를 가졌을 때 카이저병원에서 중국인 의사가 잘못해서 애를 못낳게 돼 보상금을 많이 받았다” “출퇴근 힘들어서 여기(샌프란시스코) 콘도를 하나 사둬야겠다”(실제로 어느 계원과 함께 알아보러 다니기도 하고, 어디 알아봤다는 말도 함) “모텔을 해야겠다” 등등등. 이런 말들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강씨의 재력을 알게 모르게 믿게 하는 그럴싸한 장식품이 됐다. 간혹 약사라는 서울오빠 얘기를 하면서 “큰 건물을 구입한다”는 등 말을 섞어넣은 것도 같은 구실을 했다.
◇계원과 채권자 속이기 : 적어도 초기에는 계원들과 채권자들이 소피아 강씨의 치밀한 부자행세에 감쪽같이 속아 계가 깨지고 빚을 갚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약 10년동안 계를 굴리면서 한번도 깨지 않았다는 ‘말’도 돈문제에 관한 한 소피아 강씨를 일단 믿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10년 무사고 계운영’이 사실이라면,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 한방을 위한 신용쌓기용 아니었나 하는 일부 인사들의 의구심은 설득력을 갖는다.
강씨의 분리책도 주효했다. 악덕계주들이 늘 써먹는 수법이다. 가장 흔한 것은 계원들이 서로 모르게 하고 알더라도 직접 만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달 계주 자신이 곗돈을 챙기면서 누군가 태워준 것처럼 속이거나 당장 목돈이 필요없는 계원에게 특혜를 베풀 듯이 태워준 뒤에 “그거 갖고 있으면 뭐해, 내게 맡겨주면 2부이자로 불려주겠다”는 식으로 다시 받아내 결국은 가로채는 식이다.
‘의심많은 혹은 주의깊은’ 계원들이 있어 뭔가 깊숙이 알아보려 하는 경우에 대비해 계주들이 잘 쓰는 카드가 있다. 계원상호간 이간질 수법이다. 온갖 눈속임에도 불구하고 계의 위험상황이 어느정도 노출되면, 악덕계주들은 계원들에 책임전가는 기본이고 노골적인 흑심채우기와 배짱튕기기로 나온다. S씨는 “(잠적 직전 마지막으로 가게문을 연) 9월26일 저녁에도 찾아와서 돈을 달라면서 안주면 니 곗돈 몇만불 못받을 줄 알라고 겁을 줘서 할 수 없이 4,500달러를 줬다”며 말했다.
◇소피아 강씨 잠적전후 : 강씨 주도 계가 위험하는 징후는 몇달 전부터 있었다. 더러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강씨에게 직접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사한 계파동에서 늘 그렇듯이 대다수 계원들은 설마했다.
강씨에게 빌려준 44만달러를 포함해 약 50만달러를 당한 K씨는 몇달 전부터 강씨에게 돈을 갚으라고 채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강씨가 잠적하기 직전에 3주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K씨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9월25일)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돈 얘기를 했다. 강씨는 태연하게 “여행 잘 다녀왔냐”고 안부를 물으며 “일요일(9월27일) 야외미사 때 (5만불을) 갚겠다”고 했다. 강씨는 야외미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K씨는 9월24일 통화 때 강씨가 “몸이 아프다”고 한 말이 생각나 그 때문인가 했다. 일요일 저녁에 K씨는 강씨 집에 가봤다. K씨의 플레젠튼 집과 강씨의 더블린 집은 차로 15분 거리다. K씨는 전에도 강씨 집에 자주 들렀다.
9월27일 밤, 강씨의 집은 평소와 달랐다. 우선, 불이 꺼져 있었다. 강씨는 무섭다며 잠을 잘 때도 불을 켜놓는다고 했다. 늘 밖에 걸어둔 장식품도 사라졌다. K씨는 어두워 잘 보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빈 집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강씨 부부가 정말로 집을 비우고 잠적했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K씨는 집밖에서 30분가량 기다리다 귀가했다. 그 다음날(9월28일)부터 강씨 부부의 비디오 가게는 열리지 않았다. 강씨 부부의 행방은 6일 오전 현재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누가 SF공항에서 봤다더라, 한국으로 튄 것 같다, 미국에 있을 거다 등 소문과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계원들은 “이것은 계파동이 아니라 계사기”라며 채권자들과 공동으로 법적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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