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진 개인전을 앞두고 함성찬 작가가 소개된 2007년 3월 한국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한다. <폴 손>
인도는 자유다… 함성찬 사진전 ‘인도의 삶…’
“이국(인도)의 문화와 삶과 음식과 역사와 환경에 뛰어들어 즐겼습니다. 작품은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이고요.” 사진작가 함성찬(32) 씨가 14∼20일 ‘인도의 삶과 문화 사진전’을 서울 세종문화회관 광화랑(광화문 지하보도)에서 마련한다.
이번 사진은 1997∼2000년 인도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 사원의 도시 부바네스와르, 항만도시 뭄바이, 요가의 요람 리시케시, 갠지스 강의 발원지 강고트리 등을 돌아보며 촬영한 작품들이다. 함 씨는 “한창 배울 때의 사진이어서 내놓지 못하다가 최근 들여다보니 당시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20대 중반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웃고 떠드는 가운데 가슴에 녹아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잊을 수 없었고 그것이 사진에 그대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진작가의 매력은 작품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데, 인도 사진들은 내면의 만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작은 인도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삶이다. 이국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웃고 어울리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혼인 그는 “앞으로도 일상 문화와 삶을 주제로 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기자로도 일한 그는 서울관광사진공모전 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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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도에 관한 간략한 소개
(1) 인도의 지리적 환경
인도의 면적은 한반도의 17배인 3,287,263km2에 달하고 북으로 히말라야(Himalaya) 산맥, 동쪽으로 벵갈만(Bay of Bengal), 서쪽으로는 인도양(Indian Ocean)이 위치하고 있다.
인도는 지리학상으로 세 가지의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첫째로, 산악지대이다. 북부 인도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역사적으로 인도를 외부로부터 고립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서북부에는 힌두쿠쉬(Hindukush)산맥이 있고, 동북부 지역에도 아라깐(Arakan)산맥은 밀림 지역이기에 동남아시아와의 교통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 인도를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독특한 문화를 이루는 환경적 요인이 되어 주었다.
둘째로, 평원지대이다. 인더스(Indus)강, 갠지즈(Ganges)강, 브람마푸트라(Brahmaputra)강 유역에서 비롯된 평원지대는 약 2,400km의 길이와 평균 280km의 폭, 약 640,000km2의 총면적에 달한다. 중북부 인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원지대는 역사적으로 문명의 중심지였고 현재에도 인구 및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이다.
셋째로, 고원지대이다. 흔히 데칸(Deccan)고원으로 알려져 있는 이 지대는 북으로 빈디아(Vindhya)산맥을 경계로 갠지즈 평원지대와 분리되어 인도의 최남단까지 전개되어 역사적으로 북부인도와 남부인도를 단절시켜 왔고 고원지대 내에서도 동, 서 양 해안지역을 각기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형성시켜 왔었다.
(2) 인도의 문화
인도 문명의 역사를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뉴델리 부근에서 구석기시대의 돌도끼가 발견되었으므로 약 30~40만년으로 추정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학자들간에 논쟁이 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직 인도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 인더스문명
기원전 250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인더스 강변의 하랍파(Harappa), 모헨조다로(Mohenjodaro)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던 고도의 도시문명을 인더스 문명이라 부른다. 이 문명을 건설한 인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현재 남부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드라비디아인(Dravidians)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인더스 문명은 자신들의 문자와 영농 기술, 도시 집중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어떤 유목민들보다도 더 발달된문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 경 아리아인(Aryans)들에 의해 파괴 되었다.
(4) 아리아인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아리아인(Aryans)들은 서북인도로 침입하여 원주민인 드라비디아인(Dravidians)들을 노예화하거나 남부인도로 몰아내고갠지즈(Ganges)강 유역에서 반농반목의 정착생활을 하면서 소규모 도시국가들이 설립하게 되었다. 이시기 종교적으로 원주민과 섞여 힌두교가 탄생되었고 지배자, 피지배자의 관계, 정복자와 피정복자, 전문가와 비전문가, 피부색, 신들의 서열 등을 토대로 수세대에 걸쳐 카스트제도란 사회체계를 완성시켰다. 불교와 자이나교(Jainism)이 탄생하였고 불교는 한때 왕실종교가 되었던 시기도 있지만 힌두교의 하나의 분파로 인식했을 뿐 이었다. 모리야(Maurya)왕조가 기원 전 3세기에,최초로 인도대륙을 통일시켰고, 혼란기를 거쳐 기원 후 3 세기에 굽타(Gupta)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굽타 왕조를 고대 인도의 황금기라 일컫는다.
(5) 이슬람의 시대
기원 후 7세기 서인도지역에서 처음 접촉한 무슬림은 그 이후 8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여러 종류의 교류가 있었고 1206년 아이바크(Qutb-ud-din Aibak)가 델리에 무슬림왕조를 건설하였다. 그는 남아시아의 최초 이슬람교도 군주로 여겨진다. 350년에 걸쳐 5개의 무슬링 왕조가 탄생 소멸했으며 1526년 대제국인 무갈(Mughal)왕조가 건설되었다. 이 시기에 문화 전반에 걸쳐 인도의 고유문화와 사회 질서는 무슬림에 의해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현재 북부인도의 대부분의 유적들은 힌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혼합되어 생산된 것으로 정복자 무슬림은 인도 토착문화의 영향을 받아 여타 무슬림들과는 다른 인도 특유의 무슬림문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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