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보면 하인을 시켜서 군불떼라고 말하고 싶어.”
나이 오십을 한참 웃도는 그 여자는 나를 볼 때 마다 농담도 아니고 자꾸 그런 야한 소리를 했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온돌 방바닥을 따끈하게 군불떼고 싶다고 말하는 암시는 바보가 아닌이상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내가 모른척 하니까 급기야 어느날 하루 까놓고 노골적인 말을 했다. “나 말이야 만약에 당신 아기 임신했다면 어떻게 할꺼야?”
참 알수없다. 이 여자가 왜 이러지? 내가 얼른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그야말로 너무 귀찮아서 산부인과에 가면 되잖아 했더니 “끍어라고? 싫어! 내가 만약 당신아기 임신했다면 고이고이 키울꺼야.”
아이고, 키우던 삶아먹던 자기 몸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무슨 대수야. 맘대로 해. 나는 동네에서 만날때마다 빤히 쳐다보고 군불떼고 싶다고 보채는 그 여자를 피하려고 어느때는 두 블록을 빙둘러 가기도 했다. 한때 다운타운에서 빠를 운영하던 당시 상호대로 용대가리라고 부르는 그 여자는 조그마한 계도 빵꾸내고 미국에 잠시 피하려고 온 정계 누구하고 잠자리도 같이 했다는 둥 왜, 거 키 조그마하고 눈 쭉째진 여자, 하면 금방 알아 맞히는 이름값하는 여자였다. 오래전에 쉽야드 도크에서 함께 일했던 미스터 강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최근에 제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치고 한두가지 그 여자 소문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나하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 여자가 얄궂은 밤비처럼 뜻하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부딪힌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은 관광 가이드하는 후배놈이 새벽 일찍 전화를 걸어 갑자기 몸이 아파 그렇다면서 나보고 대신 운전대 잡아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1박2일로 리노가는 노인회 단체였다. 리노는 내가 사업 말아먹기전에 너무 자주가던 친정 같은 곳이라 1종 면허증도 있겠다 그래, 하고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아, 용대가리 그여자가 끼여있는 것이 아닌가. 몰랐지? 하는 눈으로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왜 또 저여자야? 사전에 알았드라면 운전대 안잡았지.
나는 버스 탄 사람들이 1불씩 거둔 50불 팁으로 잠시 놀다가 어르신네들 카지노에서 돈따는 사람은 천명중에 한 사람도 않되니까 크게하지 마시고 1전짜리 머신으로 미니멈만 하라고 말하고는 호텔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막 잠이 들려는데 밖에서 조용히 녹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했더니 바로 용대가리 여자 목소리였다. “나 지금 큰일났어. 어저 문좀 열어봐.”
큰일이라는 말에 방문을 열었더니 그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확 떠밀고 들어왔다. “미국에서 인종차별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왜 자꾸 나를 피해?” “무서우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내앞에 서있는 여자가 치마폭에 따발총을 감추고 있는 사람처럼 자꾸 무섭고 피하고 싶었다. “무섭지 않게 해줄께. 나 자기 비밀 알고 있어.” 이 여자가 누구 공갈치나. 남자가 비밀없는 놈이 어딨어? “내가 무슨 비밀을 알고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어?” “하나도 안궁금해.” “오호 그래? 다운타운 전당포 골목에 꿀단지 숨겨놓았어? 나 다 봤어.”
전당포 골목? 뭐 눈에 뭐만 보인다더니. 내가 속으로 뜨끔한줄 아는지 “괜찮어. 남자가 오장 신세지는 것도 한두번이지 자기 거기 갈때마다 이상한 애들 골라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태극기 딱 꽂고 왔지?” 우메! 이렇게 거친말 하는 여자 입을 막으려면 그냥 살살기는 수밖에 없다.
“남자가 한창 그나에에 무슨 재미로 10년동안 혼자 살어? 미국에는 열녀문도 없어.” “나 변소갔다올께.” “여기가 어디 중국집 짜장면 만드는 집인줄 알어? 옛날에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고 변소 간다면서 창문 뚫고 토키던 수법 나도 알고 있어. 그러면 안되지. 나 사실 정력덩어리로 딱 벌어진 그 가슴 밑에 한번 딱 깔리고 싶어. 진심이야. 괜찮지?” “안돼. 결혼할 사람 만날때까지 정조 지켜야 돼.” “안돼? 왕제비같이 잔꾀부리지 말어.”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 여자 건드리면 나중에 무슨 사단 나겠다는 생각에 얼른 화장실로 도망가서 문을 걸어 잠구었다. 여자가 밖에서 자기 정 이러기야? 하면서 화장실 문을 걷어찼다. 아는 얼굴이 그얼굴인 빤한 미국에서 나쁜 소문없이 살자면 비겁하고 바보같지만 이러는 수밖에 없다. 나같이 멋부리고 기마이 좋은 놈은 아예 몇백만불 떼어먹고 도망가는 계주가 되던가 아니면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나는 지금도 놀란 가슴이 철렁거리면서 등골이 오싹하다. 분명히 50명이 버스에 다 탔는데 그 여자 얼굴이 보이지 않아 내가 용대가리 여자 아직 안탔다고 했더니 “용대가리가 왜 여기끼여? 노인회도 아닌데.” 내가 어리둥절해 하니까 “그 여자 며칠전에 죽었잖아.”
내가 악! 외마디 소리를 내고 고함을 지를 뻔 했다. 아니, 죽었다니? 그럼 어젯밤에 그 여자는?! 나는 숨이 턱 멎는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장안이 다 아는데 아직 그걸 몰랐어? 오늘 5일장 발인하는 날인데 천도제 지내준다고 절에 나가는 노인네들 몇 사람 안나왔잖아. 옛날 같으면 열녀문 세워 주었을 거야. 결혼하고 하루만에 남편죽고 지금까지 혼자 수절하고 살아온 여자야.”
내가 어젯밤 일어났던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이 전설따라 삼천리라고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겠지. 나는 하늘이 빙글빙글 돌면서 한순간 운전대를 잡고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어이, 안가? 빨리 안가고 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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