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다섯 나라의 국적을 가진 여자라 매우 적극적이고 활달한 편이지요. 성격으로 친다면 차라리 저와 바꿨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어떤 젊은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자신은 소극적인 면이 많아서 목회에는 적합한 인물이 아닌 것 같다는 고민도 있다고 했다.
성격은 스스로 고쳐 나갈 수도 있다는 조언을 했지만 나의 관심은 그 아내가 어떻게 다섯 나라의 국적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있었다. “장모님이 만삭일 때 한국에서 브라질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비행기 안에서 진통이 있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 공항에 불시착했고 바로 병원으로 직행하여 출산된 아기가 지금 저의 아내입니다. 그래서 한국 국적, 파라과이 국적, 브라질 국적, 그리고 지금은 미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지요. 이제 하나님 나라 국적까지 확보했으니 그게 모두 합하면 다섯 나라 국적 아닙니까?”
다섯 나라 국적을 가졌으니 아내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겠느냐는 뜻이다. 아내는 그만큼 자생능력이 강해서 좋다고도 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입법안을 예고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간 미주 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이중국적 허용 캠페인을 벌여 왔는데 이것이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특히 ‘이중국적’은 어감이 나쁘니 ‘복수여권’처럼 ‘복수국적’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던 사람이기에 ‘복수국적’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한국 정부 방침에 더욱 큰 감격을 맛보게 된다.
하여간 이런 정책으로 인하여 국적 없이 숨죽이며 떠돌아다니는 옛 소련연방의 ‘까레스기’(고려인)들도 모국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있는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란다. 물론 미국 시민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여전히 한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도 유익한 소식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와 함께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라고 부를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모국과 미국 두 나라, 곧 친정 나라와 시댁 나라에 거리낌 없이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복수국적 제도는 특히 인류문명 발전단계로 보아 미래형에 속한다는 데서 그 뜻을 찾을 수도 있겠다. 교통 통신수단의 엄청난 발전으로 이제는 지구마을이 되었고 나라의 국경이 하루가 다르게 낮아져 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단일정부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으로 복수의 진리가 공존하는 시대, 극과 극이 무섭게 융합되어가는 시대가 밝아오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 코리안들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래서 이미 코리안 멕시칸, 코리안 인디언, 코리안 아프리칸, 코리안 히스패닉 등이 생겨난 터라 이들을 대한민국과 연결시켜 네트웍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말 잘된 결정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이런 복수국적 코리안들을 통하여 날로 번창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한 가지 더 있다. 대한민국의 이 같은 글로벌 개방정책을 들을 때마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북조선은 언제나 국경을 확 열어 제치게 되나 하고 간절히 기다려진다.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 나라에는 수령이 하나라는 유일사상으로 통치되는 나라이기에 복수국적제는 감히 입 밖에 꺼내낼 수가 전혀 없는 것이 북조선의 사정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결과가 무엇인가? 해외 코리안들 가운데 드러 내놓고 북조선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아예 북조선 인민 전체가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되고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북조선 국적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대로 오고가며 합법적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게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꿈에도 소원이던 통일이 성큼 눈앞에 다가오는 셈 아닌가.
이정근 / 목사. 미주성결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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