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가 있는데도 사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단어가 있다. 자주(自主) 라는 말도 그중의 하나다. ‘스스로 주인이 된다.’ 얼마나 좋은 단어인가.
한국은 5,000년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 ‘종살이’의 아픈 역사가 많았다. 우리가 제대로 주인 행세를 하며 산 것은 햇수를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인조가 청나라 군사를 피해 도망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남한산성’을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엄동설한에 47일간이나 굶주리고 추위에 떨다가 결국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어 세 번이나 절을 했던 우리의 불쌍한 임금이다. 병자호란 이후 한반도는 청나라에 거의 종속화 되고 만다.
그와 거의 동시에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부동항을 구하던 러시아가 한반도에 깊숙이 침투하자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켰고 같은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함으로써 한반도는 결국 일본의 강점아래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2010년 내년이면 1910년 소위 ‘한일합방’을 한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간다. 내년은 또 해방된 지 65년,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 된지 45년, 그리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10년이 되는, 여러 가지로 기념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오늘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는 어떠한가.
벌써 오래 전부터 요즘의 한반도 정세는 100여 년 전 그때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미국을 앞설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남북한 모두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경제적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져있어 회복이 늦기는 하지만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황할 정도로 미국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그리고 8일에는 오랫동안 막혀 있던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특사의 평양행에 온 세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대북경제제재 문제 등은 어차피 당사자인 미국이 앞장서 풀어야 할 과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허전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100여 년 전 한반도가 겪은 역사적 불행을 이야기 할 때마다 우리는 대륙과 해양세력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불리함을 빼놓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가 처하고 있는 이 지정학적 위치를 숙명론으로만 받아들이고 한국은 언제나 외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비관한다면 그것은 옳은 생각은 아니다. 불리한 것이 유리한 점이 된다는 사실도 있기 때문이다.
불리했던 지정학적 위치를 유리한 것으로 바꾸자면 무엇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주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미동맹’ 만 믿고 미국이 잘 해주겠거니 하고 있으면 역사는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시작은 미국이 했지만 결단과 책임은 한국이 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그 일을 하려는 것인가?
북미대화가 시작 되었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가 해결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면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어느 방향으로 자리 잡느냐가 중요한 일이다. 미국이 이번에는 중국과 더불어 동북아의 안정이라는 구실로 제2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꿈꾼다거나 6자회담의 당사국들이 ‘포츠담 선언’이나 ‘얄타회담’을 추억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자주의식은 이민자에게도 절실한 과제이다. 비록 지금은 변방의 사람들이지만 앞으로는 우리 도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며 떠나온 조국에 대해서도 언제까지나 수혜자라는 자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외동포를 길들이려 한다거나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복수 국적제를 확대한다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교포’로 인식하겠다는 발상이다. 새해에는 ‘자주’를 우리들의 화두로 삼았으면 한다.
김용현 /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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