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 집에 놀러와서 사흘째 되던날 식품점에 갔다가 옛 제자를 만났다. “어머, 선생님 아니세요?” 상대방이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전연 모른다. 가물가물한 옛날 얼굴을 떠올리며 마주보는 나를 향해, 저 명희예요 하고 활짝 웃었다. 명희? 아! 그제서야 기억이 또렷히 떠올랐다. 한마디로 지독하게 공부를 잘했고 내가 가르친 제자중에 유일하게 영어 웅변대회에 출전했던 학생이었다.
그동안 일곱명 멤버였던 친구 복님이를 통해 딱 한번 소식을 들었고 그것도 오래전 아주 옛날이었다. 나는 옆에 있던 딸애를 소개시켜 주었다. “어머 선생님 따님이세요? 어디서 많이 보신분 같은데?” 딸은 목사 사모였다. 명희가 나를 보며 조르듯이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장은 다 봤어?” “세일한다고 해서 와 봤는데 제가 사려고 했던 물건이 다 나가고 하나도 없어요.” 식품점에 왔다가 세일하는 품목이 떨어졌다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명희 말에 딸애가 나를 한쪽으로 잡아 끌었다. “아버지 오늘 식사하시고 아버지가 돈 다 내세요. 15퍼센트 팁도 잊지 마시고요.” 그러면서 돈을 주었다. “아니, 나 돈 충분히 있어. 미국에 놀러오는 사람 주머니에 항시 돈이 두둑하게 있는거 너도 알잖니?” “그래도 받으세요. 돌아오실때 웰스파고 은행 빨간 간판 아시죠? 그 앞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으니까 거기서 내리시면 되요.”
미국에는 한참 떨어진 외곽지대가 아니면 식품점 중심으로 주위에 식당이며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둘이 똑같이 순두부를 시켰다. 날씨가 쌀쌀할 때는 국물있는 얼큰한 것이 제일이다. 미국에 있는 한국 식당들은 한국에서 도저히 맛볼수 없는 독특한 맛을 내고 모든 음식들이 아주 맛이 좋다. “미국에는 언제왔어?” “한참요.” 나는 명희에게 남편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복님이를 통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명희가 남편따라 마산으로 간다면서 나를 찾아온뒤 꼭 일년후의 일이었다. “복님아 월급을 받으면 먼저 김하고 간장부터 사 놓는다. 반찬이 없어도 김하고 간장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잖니.” 목수질하는 남편은 쌀독에 쌀이 한톨이라도 남아있으면 완전히 떨어질때까지 일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님이는 나한테 그말을 전하며 눈이 빨개지도록 돌아서서 울었다. 남부러울것 없이 공부 잘하고 머리좋은 명희가 왜 그런 남자에게 평생을 의탁했는지 모르겠다고 나한테 물었을 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명희 눈을 어둡게 했을까.
나는 일곱명 멤버들이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자기집에서 식사하는 자리에 명희의 권유로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명희 집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큰 농방을 경영했고 어머니는 부산에서 이름난 부호였던 김지태씨며 동양 고무공장 사장부인과 어울리는 같은 계원이었다. 그때 명희는 집에서 식사가 끝난뒤 여흥시간에 동심초를 불렀다. 나는 그때까지 담임선생인 나를 초대하고 그 노래를 부르는 명희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일류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은 명희가 어느날 난데없이 자기 집에서 일하는 목수와 결혼 하겠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을 때 어머니는 거의 졸도하다 싶이 했고 말리다 못해 너 인생 너가 책임질 일이니 나중 누구 원망 말라고 외면하고 그것으로 평생연을 끊었다고 했다. 명희가 어느날 밤 나를 찾아온 것은 기막힌 그 소식을 듣고 일년쯤 지난 뒤였다. 명희 입에서 술냄새가 풍겼다. “왜 그랬어 명희? 공부할 기회는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데 그 기회를 버리고 그렇게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었잖아?” “기회요? 사랑하는 기회도 평생에 딱 한번밖에 없었어요.” “그 사람이 명희가 가지고 있는 아까운 모든 재능을 송두리째 내버릴만큼 그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었어?” “선생님 얼굴을 닮았으니까요.”
뭐라고? 나를 닮았다니?! 나는 그제야 명희의 속을 알고 숨이막혀 그 자리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한달전에 결혼한지 3년만에 아내가 덜컥 죽고 거의 기진한 상태에서 명희를 잡고 엉엉울었다. 야, 이놈아 말이나 하지! “선생님 저 한번 때려주세요.” 일부러 맞으려 온 것 같이 진심으로 말하는 명희를 보며 나는 자신도 모르게 남의 여자가 된 명희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한번 더요!” 나는 또 한번 때렸다. 그리고는 와락 명희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명희. 용서해줘.” “아니예요 맞아도 싸요. 저는 맞아야 되요.” 명희는 울지도 않았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속앓이를 했으면… . 그때 내 귀에 울리는 것은 오직 동심초 노래 뿐이었다.
명희가 밥 먹다말고 먼저 자기 남편 얘기를 했다. “이제 겨우 마음잡고 일좀 한다고 했더니 그만 덜컥 병이들어 지금 자리에 누워있어요.” “어디가 아픈데?” “병명도 없대요.” “그럼 아이들은?” “큰놈은 죽었어요. 다 키워 놓았더니.” 명희는 혼잣소리로 괘씸한 놈! 하고 바람에 날리듯 나를 보고 억지로 웃었다. 명희의 그 웃음은 옛날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명희는 그걸 알까? 제임스 조이스의 난해한 문장을 암기하고 EE카밍스의 시를 읇조리며 찬란하던 인생의 열정과 가슴 부풀리던 그때를. 나는 밥을 먹은뒤 헤어지기전에 명희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비상금까지 모두 털어 명희 주머니에 살짝 넣어주었다. 밤늦은 버스는 승객들이 거의 없이 텅비었고 나는 가만히 나만 알아들을 목소리로 동심초를 소리내어 불렀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명희는 그것도 모르겠지. 험한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자신도 모르게 내가 혼자서 허밍으로 부르는 애잔한 노래는 언젠가 명희가 불렀던 바로 그 동심초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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