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신문에 이민기사가 나면 눈이 자연히 그리로 쏠리며 읽게 된다. 내가 유학생으로 와 이곳에 정착한지 40년이 넘지만 아직 이민자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일간지에 난 ‘또 다른 이민자들(The Other Immigrants)’이라는 제목이 관심을 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케네디 대통령이 완화한 이민법으로 영주권 취득이 어렵지 않았지만 그전 까지만 해도 영주권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죽 했으면 50년대에 어떤 한국 유학생이 영주권부여 통지를 받고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흔히 미국 사람들은 이민자라고 하면 영주권 소지자와 불법 체류자를 연상한다. 하지만 미국에는 임시고용 비자로 일하며 영주권을 기다리는 외국출신이 적지 않다. ‘또 다른 이민자들’이다. 오랫동안 이민국관리로 있다가 은퇴하여 컨설팅 회사를 하고 있는 스튜워드 앤더슨에 의하면 임시 고용 비자인 H1-B 수혜자 절반이 인도 출신이다. 그들이 영주권을 받으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수속 기간이 긴 이유는 해당 부처의 일 처리가 부진해서라기보다는 워낙 이민 쿼터가 적은 때문이다. 현 이민법에 의하면 매년 고용을 통한 영주권 쿼터는 14만개라고 하는데 신청자의 배우자와 자녀도 그 수에 포함되니 실질적인 수혜자는 그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1990년에 제정된 취업이민 상한선은 스폰서 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수에 엄청나게 모자란다고 한다. 연방의회에서 외국출신 인력 채용 수를 늘리지 않고 있어 이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체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임시 고용비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미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는 적지 않고 이들이 떠나면 고용업체뿐 만아니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손실이 적지 않다. 앤더슨은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25% 이상이 외국 출신 이민자들에 의하여 출범한 회사들이라고 하며 이들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유학 비자나 취업비자로 왔다가 그냥 미국에 주저앉은 사람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한인사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1,200명의 외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후 거취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바 있다. 학교를 마친 후 미국에 정착하겠느냐고 하니 중국학생의 55%, 유럽학생 53%, 그리고 인도학생 38%가 비자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당장은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지 못한 외국인들은 경제가 한창 발전하고 있는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를 기화로 까다로운 미국 이민법을 알고 있는 캐나다, 호주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가 이민법을 완화시켜 미국에 있는 우수 인력들에 손을 벌리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필요한 인력을 미국이 훈련한 이들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파격적인 대우도 서슴지 않으며 좋은 인력을 유치하기도 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전 세계 인재들에게 안식처와 함께 끊임없는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곤 했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직된 고급 두뇌의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급 두뇌의 역수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민법을 개정해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이제 불법 체류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는데 H1-B 소지자들의 영주권 취득을 용이 하게 하여 이들을 미국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일에 나도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그리고 우리 지역출신 하원의원에게 이들을 위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려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야 한다. 학생으로 와서 영주권을 받고 이제 미국시민으로 반세기가 가깝게 살고 있는 나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종혁 /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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