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에서는 한국 언론사상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 있었다.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른바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사건’ 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장악을 위해 언론사를 강제 통폐합하고 언론인을 강제 해직한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5월 광주항쟁 직후인 1980년 7월,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체제에 반대하는 언론계 저항세력을 30%로 규정해놓고 그 가운데 1,000여명의 언론인을 강제로 해직시킨데 이어 그해 11월에는 신문28개, 방송29개, 통신 7개 등 모두 64개의 언론사를 신문14개, 방송3개, 통신1개 등 18개의 언론사로 강제 통폐합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70, 80년대는 한국 언론의 암흑기였다. 군사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뜻있는 언론인들의 입을 막아 오다가 그것으로도 부족해 마침내는 언론현장에서 이들을 내쫓고,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 했었는데 그런 가운데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 일은 각 언론사 사주가 알아서 한 일이지 정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철저하게 발뺌을 하고 있었던 일이다.
때 아니게 거리로 내 몰린 언론인들은 다른 직장으로의 취업도 방해했기 때문에 대부분 번역일이나 월부 책장사, 아니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거나 정처 없이 이민 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 이곳 미국에서도 해직 언론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87년 6월 항쟁이후 일부는 복직이 되고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는 등 명예는 다소 회복되지만 피해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 한 채 함분(含憤)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을 폐간 당했던 한국일보를 비롯한 피해 언론사들도 노태우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부를 상대로 몇 차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었지만 번번이 기각돼 오던 중 이번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국가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으며 피해를 구제하기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것이다,
실로 30년만의 일이다. 이에 대해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강산이 3번 변하는 세월이 흐르면서 진실이 밝혀진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밝히면서 이명박 정부는 국가권력에 의한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를 즉각 집행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만약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번 결정이 권고라는 약점을 악용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도 전두환 신군부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는 과거와는 달리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방법을 통해 또다시 언론장악을 꾀하고 있다는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는 터라 그 결정이 자못 주목되고 있다.
다시 ‘국가권력 앞에 언론인이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명제 앞에 서 본다. 시대를 달리해가며 회유든 강압이든 어떤 정권도 언론과의 유착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언론인의 자세다. 한국에 지금 세종시 문제 밖에는 없는지,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자 한국은 벌집 쑤셔 놓은 듯 시끄럽다. 찬반양론으로 국민도 갈라섰고 정치인도 갈라섰고 언론사도 철저하게 갈라서고 말았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가 꼭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정부의 시책이라면 무조건 옹호하고 나서는 일부 언론사와 언론인들의 마음속에 과연 다른 의도는 없는 것인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이제 와서 군사정권에 맞서다가 거리로, 해외로 내 몰렸던 무모한 일을 자랑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자행했던 범죄가 30년 후에라도 그 전모가 밝혀지듯이 정의 편에 서지 못한 언론인의 모습도 언젠가 백일하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발표에서 겸허하게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용현 /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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