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국도에 번호를 붙이기 시작한 해는 1924년
한국에 최초로 전차(電車)가 선을 보인 해는 1899년이다. 그 해 4월 8일에 고종황제 임석 하에 새로 부설(敷設)한 전차노선의 개통식을 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업가인 Collbran이라는 사람이 조선왕조가 단독 출자한 한성전기회사를 도와서 전차사업이 결실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전차를 전기로차 (電氣路車)라고 하였고 일명 “쇠 당나귀” 또는 “서양마차”라고도 하였다는 것이다. 첫번 노선은 서대문과 동대문 사이의 노선이었으며 시공(施工)에 4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개통식 날 고종황제가 시승을 하였다고 하는데, 말을 탄 경호원들이 그 전차를 호위 수행 하였다고 한다. 볼만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해 9월 18일에는 경인(서울과 인천 사이)간 철로가 완성되어 최초의 기차 철로의 낙성식이 있었다. 전차의 궤도를 부설하려면 노선 보호와 안전을 위해서 전차의 바퀴가 놓이는 철로의 위 표면만을 노출하고 나머지 구조물은 모두 아스팔트로 덮고 포장(鋪裝)을 하여야 하는데, 당시는 극히 원시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궤도를 따라서 포장한 도로가 한국 포장도로의 효시라고 할 수 잇다. 이어서 서울시내에 전차 궤도와는 관계없이 본정(지금의 충무로), 퇴계로, 남산의 신궁도로 등 중요 도로가 포장되게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현대적인 아스팔트 공법을 개발하는데 공헌 한 바 크며, 포장용 아스팔트를 다량 생산해서 수출하던 영국의 타아맥(Tarmac)이라는 건설회사의 제품을 수입해다 썼는데, 그 제품이 들어 잇는 드람통에 흰 페인트로 써있는 Tarmac(타아맥)이라는 회사이름이 제품이름인줄 알고, 사람들이 아스팔트를 “타마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아스팔트를 타마구라고 부르는 층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도로포장을 20세기에 들어서기 전부터 하기 시작을 했는데 1913년에는 벌서 대륙 횡단 포장도로를 완공 한 바 잇다. 1920년과 30년 사이에 대폭 포장도로를 건설 하였으며 자동차의 대중화와 더불어 포장도로는 도로 사양(仕樣)의 필수 적인 요건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타마구” 뿐만이 아니라 세멘트 콩크리트 도로도 출현하게 되어 도로의 발주처인 정부측에서는 양자택일하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멘트를 업게에서는 Portland Cement라고 하는데 포장된 상태를 Portland Cement Concrete라고 하며, 타마구는 Asphalt 라고 하며 포장된 상태를 Asphalt Concrete 또는 Bitumen Concrete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Portland Cement Concrete를 단순히 “콩크리크(Concrete)”라고 하며 Bitumen Concrete는 “아스팔트(Asphalt)”라고 한다. 미국의 토목업계에는 “콩크리트 토목회사 협회”가 있고, “아스팔트 토목회사 협회”가 따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해관계가 상치한 단체로 서로 대치하고 있다.
아스팔트는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싸고, 공기가 짧고, 작업이 용의하며 자동차가 달릴 때 소음이 비교적 덜 나며, 파손 부분의 수리를 용의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수명이 비교적 짧고 파손이 잘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서 콩크리트는 고가 하기는 하지만 내구성이 잇고 강하며 경사면이나 교량 위. 언덕 등에서 자동차 타이아가 미끄러지지 않게 표면에 홈을 쉽게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속도로나 중차량(重車輛)이 빈번히 통과하는 도로, 터널 내, 험준한 고개길 등에 적절하다는 것이다. 두 협회 모두 강한 로비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활동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사계의 권위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사비 면에서 아스팔트가 싼 것 갖지만 수명이나 수리비등을 감안하면 종국적으로 양쪽이 비슷하다는 것이며, 기능의 차이도 실은 별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전을 하면서 어떤 노선은 아스팔트이고 어떤 노선은 콩크리트인데 어째서 그런 것인가 하고 의아심을 갖게되는 경우가 있는데, 알고 보면 그 차이는 기술적인 것 보다는 토목업계(土木業界)의 콩크리트派와 아스팔트派의 그때 그때의 정치력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옛날에는 국도를 연방 정부에서 관할 하였기 때문에 국도를 Federal Highway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191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위한 Highway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중요한 국도에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을 했다. 주로 과거의 대통령의 이름을 붙였다. Lincoln Highway 라던가 Jefferson Highway 등. 그러다가 1924년부터는 US Highway에 번호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사람 이름이라던가 기타의 상징적인 이름을 갖고 잇던 국도(Named Highway)가 번호가 붙는 국도(Numbered Highway)로 바뀌었으며, 이후 건설되는 국도에는 모두 번호를 붙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 해(1925년)에 입법화된 “연방 국도 보조법 “ (Federal Aid Highway Act of 1925)에 의해서 생기게 된 것이다. 연방정부가 국도 건설에 개입되기 시작한 것은 1916년 Woodrow Wilson 대통령 시절에 입법화된 “국도법”이 발효되면서부터이지만 그때는 도로의 관리라던가 유지는 각주에서 마음대로 하였고 일반 민간 “도로협회” 같은데 서도 개입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국도의 이름도 제각기 만들어서 붙이고 표시판도 임의로 만들어서 여기 저기에 붙이곤 하였기 때문에 혼선을 면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