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일본 IT 업계에서는 ‘갈라파고스 현상’의 확산이라는 말이 유행되기 시작했다. 일본 제조업계가 자국 내 시장에만 몰두하며 휴대폰을 만들다 보니 국제적인 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홀로 고립되면서 나온 말이다.
동태평양의 16개 갈라파고스 섬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유한 종류의 생물들이 존재한다. 이 섬에 외부 생물들이 들어오자 이들 고유종 가운데 다수가 멸종했다. 갈라파고스에서 벌어진 수많은 생물들이 죽고 죽이는 현상이 지금 IT 산업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기 것만 고집하는 것을 두고 ‘갈라파고스 현상’의 확산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본의 어느 지성인은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반경 3m밖에 있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내 주변의 반경 3m 이내의 것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나에게도 혹 갈라파고스 현상이 확산돼 있는 것은 아닌가? 반경 3m 내외만 바라볼 게 아니라 반경 1만미터, 100만미터 이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지금 이 시대에 내가 살 수 있고 가정이 살고 커뮤니티가 존재할 수 있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나와 내 바로 주변만 바라보는 사람이나 업소, 커뮤니티는 모두 갈라파고스 현상의 확산으로 살아남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다양하고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다. 특히 과학의 발달은 너무나 빨라서 학자들도 그 발전 속도를 따라 갈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몸에 배온 사고방식 혹은 습관들만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에 와서도 여전히 한국의 문화만을 고집하며 남의 나라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날이 기계문명이나 과학 분야는 발전하고 있지만 나의 생각이나 의식, 삶의 방식이나 형태들은 여전히 이민 초창기, 아직도 한국에 있었던 때처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좀 고려해 볼 사안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노력은 하였지만 처음과 같은 선에서 머물렀거나 오히려 퇴보 한다 느껴지는 것은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나만 꽁꽁 문을 닫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이 땅에 이민 와서 과연 이 나라에 얼마만큼 동화되고 적응하려고 노력했는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한민족의 독특한 색깔을 내면서 얼마나 이웃의 다른 민족과 어울리려고 했으며 이 사회의 다른 커뮤니티와 함께 더불어 산다는 생각으로 지내왔는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한인 비즈니스 간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벌써 십수년이 넘게 부르짖어온 얘기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심심하면 말썽이 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글 간판 때문에 불이 나도 소방관이 어느 업소인지 몰라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왜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가.
미국에 와서 살면 영어표기와 한글표기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세상에 와서 살면서 20년, 30년 전 하던 생각이나 생활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나는 몰라도 돼” “남이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내 것만 고집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의 극치이다.
나 스스로가 변화되지 않으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내가 먼저 변화해야 자신은 물론, 내 가정, 내가 하는 비즈니스, 내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가 잘 된다.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열린 눈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라. 그렇지 않으면 갈라파고스의 생물처럼 이 어렵고 힘든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여주영 / 뉴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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