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요인 많아 불황탈출이라 말하기엔 아직…
주택부양책 만료, 모기지 상승가능성,
차압위기 주택적체 등 함정들 수두룩
30대 후반 직장인 P씨는 2006년 가을 버클리 가까운 오클랜드 북쪽 주택가에 있는 단독주택을 샀다. 대지 약 6,000스퀘어피트에 건평 1,600스퀘어피트, 52만달러짜리였다.
한인들이 비교적 꺼려하는 지역이었지만 막 늦장가를 든 P씨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쯤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자고나면 집값이 튀던 때인데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당장 10만달러를 버는 셈이라는 부동산에이전트의 권유에 솔깃해진 P씨는 눈 딱 감고 그곳에서 몇년만 버티면 5,000달러가 채 안되는 월급쟁이 생활로는 어림없는 밀리언달러 하우스도 장만할 수 있겠다는 계산까지 어른거렸다.
월페이먼트를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는 당시로서는 비교적 두둑한 15만달러를 다운페이했다. 한국의 부모가 보내준 돈이었다. 무섭다며 바깥나들이를 삼가고 집안에 갇혀있기 일쑤인 서울신부를 생각해 거실과 뒤뜰 등 집 이곳저곳을 손보는 데 5만달러가량 들어갔다. 그래도 P씨는 내집마련의 뿌듯함과 재산증식의 기대감에 “그것쯤이야” 했다. 그의 기대감은 몇달 안가 현실로 만져졌다. 부동산 비수기인 그해 겨울을 넘기자마자 그집과 비슷한 이웃집이 57만달러에 팔렸다. 직장에서도 이런저런 모임에서도 툭하면 천정부지 집값얘기와 내집마련 걱정들이 오르내렸다. B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2007년 봄 P씨는 4가구용 다세대주택을 샀다. 역시 그 에이전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이번에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페이먼트를 충당했다. 4가구에서 나오는 렌트비로 포플렉스 월페이먼트를 다 내고도 몇백달러가 남았다. P씨는 불과 몇달만에 집 2채(가구 기준으로는 5채)의 주인이 되고 생활비에는 더욱 여유가 생겼다. 꿩 먹고 알 먹는 재테크였다. 주택가격 상승까지 감안하면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돈이 저절로 쌓이는 기분이었다.
단꿈은 짧았다. 그가 탄 부동산 고속열차는 막차였다. 2007년 여름이 피크였다. 주택시장은 가파른 상승세가 꺾이더니 이내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사실 부동산거품 붕괴경고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다만 활발한 거래가 생명줄인 부동산중개업자들은 물론 내집마련 혹은 재산증식 생각에 경도된 수요자들에 의해 무시됐을 뿐이었다.
부동산침체는 홀로 오지 않았다. 전반적인 경제불황과 함께 왔다. P씨에게는 이로 인한 2차쇼크가 더 버거웠다. 2008년 봄이 되자 포플렉스 세입자 한 세대가 빠져나갔다. 그해 여름에는 또 한 세대가 빠져나갔다. 렌트비를 내렸는데도 새 세입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실직 때문이었다. P씨의 직장도 일감이 줄었다. 샐러리 역시 줄었다. 실직을 면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포플렉스 임대료 감소와 샐러리 삭감으로 P씨는 포플렉스 페이먼트는 물론이고 첫집 페이먼트조차 버겁게 됐다. 내놓기가 무섭게 팔리던 이웃집들이 가격을 45만, 40만, 38만달러로 내렸는데도 몇달째 매기없이 지나쳤다.
버티다 못한 P씨는 작년 봄 두손을 들었다. 팔아도 손해 안팔아도 손해여서 그는 월페이먼트를 포기했다. 포플렉스와 첫집은 곧 은행에 넘어갔다. 그는 내집마련 2년반만에, 그 집으로 새끼를 쳐 5채의 주인이 된 때로부터는 채 2년이 안돼 다시 원베드 아파트 세입자가 됐다. 월페이먼트는 짧으나마 내집살이를 한 값으로 치더라도 다운페이와 수비리, 월페이먼트를 메꾸느라 부모로부터 추가로 끌어온 돈 등 약 30만달러가 고스란히 날아갔다. 게다가 크레딧이 왕창 망가졌다.
P씨와 같은 사례들이 한둘이 아니다. 작년에 비해 한결 줄어들긴 했지만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등 인랜드지역 곳곳에는 매물로 나온 집들이 수두룩하고 경매(Foreclosure)나 은행소유(Bank Owned) 간판이 붙은 집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부동산시장, 특히 주택시장이 바닥을 친 것인지 더 추락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수요자들 입장에서 살 때인지 더 기다려야 할 때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부동산 통계전문 ‘데이타퀵’이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의 주
택거래동향을 발표했다. 지난 3월에 샌프란시스코, 알라메다, 콘트라코스타 등 베이지역 9개 카운티에서 거래된 주택(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콘도)을 토대로 집계한 결과 중간가격과 거래량이 대부분 지역에서 상승세를 보였다는 것이 첫째 요점이다. 이는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완만하나 꾸준한 흐름이다.
3월 중 에스크로가 끝난 주택매매건수는 9개 카운티에서 총 6,992채로 2월에 비해서는 40.2%나 늘었고 09년 3월(6,325채)에 비해서는 10.5% 늘었다. 통상적으로 2월보다는 3월의 거래량이 훨씬 많으므로 40.2%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건 아니다. 데이터퀵이 집계를 시작한 1988년 이래 2월과 3월의 거래량 증가치 역시 평균 40%다. 1988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3월 베이지역 주택거래량은 평균 9,016채였다. 이를 기준하면 올해 3월 거래량은 역대 3월 평균치에 비해 22.4% 적다. 그럼에도 이는 2007년 3월(8,317채) 이후 3월치로는 가장 많은 거래량이다.
중간가격은 38만달러로 2월에 비해서는 7.3%, 2009년 3월(29만달러)에 비해서는 31%나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2007년 6월과 7월 피크 때의 중간가격에 비하면 42.9%에 불과하다. 절반회복도 안됐다는 얘기다. 다른 각도에서 의미있는 변화는 3월에 거래된 주택 중 차압주택이 차지하는 비중(31.7%)이 2월(36.3%)에 비해서는 소폭, 1년 전인 2009년 3월(50.2%)에 비해서는 대폭 떨어졌다는 점이다.
몇달동안 계속 거래량과 중간가격이 늘어나고 차압주택 비율이 떨어졌다면 부동산시장이 회복됐다고 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함정이 몇 개 더 있다. 그중 으뜸은 정부의 주택거래 부양책 종료다. 이 시기를 놓친 사람들이 적어도 당분간 소강상태 내지 관망상태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대량 주택차압사태 재발가능성이다. 정부의 부양책에 기대를 걸고 어렵사리 버텼으나 이 기간 중 돌파구를 찾지 못한 이상 주택소유주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만간 특단의 변화가 없으면 줄줄이 홀드능력을 상실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또다시 거액을 쏟아부어 부양책을 쓰기 어려운 만큼, 특단의 변화는 수요자들이 구매력을 회복할 정도로 경제가 회복되는 것이다. 구매력 회복은 실업율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전반적 경제지표는 나아지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실업율은 최근들어 도리어 높아졌다. 더군다나 무주택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따라서 주택구입 주력예비군이나 다름없는 히스패닉계와 아프리칸아메리칸 등 소수계의 실업율이 높다. 부동산시장 완연회복 단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지뢰다. 모기지 이자율이 들썩거리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뇌관이다. 호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홀쭉한 마당에 이자율이 오른다면 구매예비군들은 더욱 움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느냐 파느냐, 서두느냐 기다리느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이지만 까딱하면 P씨와 같은 아찔한 결과를 낳는 부동산시장과의 씨름은 정부의 부양책도 그것에 의지한 매매자들의 버티기 및 서둘기 뒷심도 거의 동이 난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라운드다. <정태수 기자>
6개월 단위로 본 관련발표
작년 5월, 샌프란시스코 비즈니스 타임스는 전국부동산협회(NAR) 자료를 인용해 절망적인 보도를 내놨다. 2009년 1/4분기에 거래된 베이지역 주택 중간가격(40만2,000달러)이 2008년 같은 기간(70만1,700달러)에 비해 42.7%나 떨어져 미 전역 메트로폴리탄지역 가운데 4번째로 낙폭이 컸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국의 중간가격은 16만9,000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14%밖에 하락하지 않았다. 다만 09년 1/4분기 베이지역 주택거래량은 08년 1/4분기보다 80.6%나 증가, 폭락에 편승해 사자열풍이 거셌음을 수치로 보여줬다.
작년 11월, AP통신은 데이터퀵 자료를 인용해 베이지역 주택거래와 가격동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며 차압주택이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09년 11월의 베이지역 9개 카운티 주택거래량은 총 6,878채로 08년 11월(5,756채)에 비해 19.5% 증가했고, 중간가격은 38만7,000달러로 전년동기(35만달러) 대비 10.6%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된 주택 중 차압주택 비중은 32.5%로 08년11월의 46.8%보다 14.3%포인트 떨어졌다.
참고할만한 부동산격언
부동산 매매나 투자에 관한 격언은 매우 많다. 그러나 실수요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부동산업계에서 거래활성화 등을 위해 과장하거나 표현의 묘미 자체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현혹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흔히 인용되는 부동산 격언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아라 : 대박심리에 기대어 벼랑끝 전술을 쓰지 말고 오르는 중간에 사서, 내리는 중간에 팔라는 뜻이다. 큰 이익도 큰 손해도 피해 무난한 매매시점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남이 팔 때 사고 남이 살 때 팔아라: 부동산시장도 호황과 불황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순환하므로 남들을 우르르 따라하면 기대수익이 적어진다는 뜻이다.
▷부동산 투자에서는 부동(不動)이 최대의 적이다: 부동산을 산 뒤 장기간 깔고앉아 방치하지 말고 흐름에 따라 사고팔기를 꾸준히 해 재산증식을 하라는 뜻이다.
▷아내와 집은 손볼수록 고와진다: 부동산 관리의 값어치를 지적한 말이다. 평소에 메인테넌스를 잘하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부동산은 (돈이 아니라) 발로 산다: 부지런한 답사를 통해 부동산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계약시 빠진 구석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류나 에이전트의 말만 믿고 사인했다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꼭 새겨둬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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